타로는 믹스입니다만
어느 핸가 가을, 제법 오래된 기억이긴 한데, 출근길에 낯선 문자를 하나 받았다. 문자를 보낸 이는 입사 시험을 보러 가는 길인 것 같았다.
'불안하다, 두렵다, 이번에도 또 아무 대답이 없으면 어떡하나 ---.'
이런 내용의 문자. 그 말미에 '너의 응원이 필요하다'는 한 줄이 더 있었다.
얼마나 절박할까, 저쪽의 불안과 초조가 내게로 전해져 오는 듯했다. 내게도 비슷한 상황의 자식이 있어 남 얘기 같지도 않았다.
잠시 망설이다 답장을 썼다. '합격을 빈다. 당신을 모르지만 전심으로 응원한다' 이런 내용으로.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운명에서 예외이기 힘들다.
나쁜 일일수록 더. IMF가 우리 가족에게 그랬다. 있는 돈을 모으고 융자를 내서 땅을 사고 건물을 올렸다.
'건물이 완성이 되어 임대를 하면---.'
이런 꿈을 꾸면서.
굳이 도심에 사무실을 두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마니는 건물 꼭대기 층을 자기 공간으로 쓰는 상상을 하며 더 포부가 컸다.
1997년 12월 3일, 건물 준공검사를 받던 날 정부는 IMF 체결을 했다.
우리는 임대계약 해지 통보를 연달아 받았다. 모두 공실이 되었다.
새 장소에서 멋진 출발을 기대하며 계약을 했던 사람들도 두려웠을 것이다.
초유의 사태라, 사업 부도와 가정의 부도를 연일 신문 텔레비전에서 떠들어댔고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부유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우리를 둘러싼 사면은 모두 취약했다.
대책없는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산책길에 합창곡 <고향의 노래>를 우연히 들었다.
노랫말 어디에도 위로의 말은 없었으나 "괜찮다, 괜찮다"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내게도 응원과 위로가 필요한 날이 있었다.
문자 너머의 젊은이도 '그런 날이 있었다' 말할 날이 있을 것이다.
울적한 날 타로를 무릎에 눕히고 등을 보드랍게 쓸어내리면
타로보다 내가 더 좋았다.
녀석의 털에서 나는 샴푸 냄새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