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이 기성품이 아니듯

타로는 믹스입니다만

by 김패티



타로가 우리와 함께 산 지 16년이나 되었지만 타로 이야기를 따로 기록하거나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일상에 이런저런 타로 이야기를 하는 정도였다.

심지어 타로 키우기는 내가 원하는 일도 아니었다.

기왕 기르려면 이름 있는 품종이라도 데려오지, 이런 불평도 했으니까.


타로가 우리 집에 왔던 날을 기억한다.

제 살던 곳, 어미와 형제들을 떠나서 겪는 불안을 낑낑거리던.

온전히 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걸 녀석은 빨리 알아차린 것 같았다.

무력하고 작은 생명이 나에게 온전히 기댄다는 것, 언제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보았더라.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를 내 몸 안에서 270일이나 키웠으면서도

아이가 세상에 온 순간부터 사랑이 샘물처럼 솟지는 않았다.

내가 짐작하고 있는 ‘모성애’는 기성품이 아니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식상한 이 표현, 그때의 감정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표현할 말이 있을까.

타로가 왔을 때도 그랬다.

타로가 우리 집에 온 일은 느닷없었다.

그대로 돌려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기왕 왔으니 하루만 데리고 있어보자 했다.

아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어린 강아지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던 거다.

자신들이야말로 이 여린 생명을 돌볼 최적임자라고 이미 판단한 듯했다.

그 자리에서 이름도 지어 받았다.


“타로.”


이름을 갖는 순간 새로운 존재가 된다.

그렇게 나도 생각이 바뀌었다. 바꾸고 싶어졌다.


사랑은 기성품이 아니었기에 만들어 가면서 두텁게 쌓여갔다.

날이 갈수록 우리는 녀석과 특별한 관계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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