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감상적 인간이 된다

우리 타로는 믹스입니다만

by 김패티



중국요리 셰프 이연복 씨의 펫로스 증후군 이야기를 들을 때,

나도 노령견 타로를 기르고 있었으면서도 그의 슬픔이 크게 실감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강아지 입양에 얽힌 이야기와 강아지 잃은 슬픔을 이야기 할 때

그가 좀 더 따스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이웃집 까뮈가 갔을 때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까뮈 엄마가 안쓰러웠으나 강아지 죽음 이후를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타로와 산책을 나갈 때 놀이터에 있는 까뮈 엄마를 봤다.

까뮈를 잃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놀이터를 같은 방향으로 뱅뱅 돌고 있는 까뮈 엄마가 다른 때와 달라 보이기는 했으나

운동 중인가 보다 생각했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까뮈 엄마는 펫로스 증후군을 무겁게 앓고 있었던 것 같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려 눈을 감고 앉아있다 주르륵 눈물을 쏟고 말았다.

미용사의 가위질을 몇 번이나 멈추게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버스를 기다리다, 기도문을 암송하다가, 주체하지 못할 슬픔에 휩싸이고 만다.

아무 때나 그런 일이 생긴다.

8월 말 타로가 가고 나서 나는 종종 감상적 인간이 된다.


타로가 길을 가면서 다른 강아지의 흔적에 킁킁 대는 것을 못하게 했다.

'지지, 지지야' 나무라며 목줄을 당겼다.

그것은 우리가 SNS에 출첵하는 것과 비슷한 거라는데,

타로가 산만하다고 생각했다.

'호기심 타로'라고 말은 그럴듯하게 했으나

나는 녀석의 분잡스러운 행동이 종종 못 마땅했다.

한가한 게 타로에게 좋았을 리가 없다.

그러나 나는 타로가 한가하게 엎드려 있는 걸 좋아했다.


타로가 간 이후 일상의 질서에 균열이 생겼다.

루틴이 깨졌기 때문이다.

타로와 함께 했던 그 모든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면서부터다.

타로와 함께 한 일이란 게 대개는 산책인데.

그 시간, 타로와 산책했던 그 시간을 종종 어쩌지 못해 애를 먹는다.

타로 없이 혼자 산책 가는 일이 낯설다.


나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 침대에서 내려올 때 발 밑을 조심한다.

타로가 있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러나 곧 타로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상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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