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용법대로 티백 우려 보기
한국 차 브랜딩의 고급화, 그리고 대중화에 한몫 단단히 기여했다 생각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오설록이다.
그 이전의 한국차는, 정확히 하자면 대중화된 한국차는 현미가 없으면 큰일 나는 티백들, 현미녹차, 현미보리차 등등등, 현미의 구수한 맛이 다른 맛을 다 사로잡아버려 맛을 느낄 수 없는 그런 차들이 대다수이지 않을까. 아, 물론 이건 편협한 나의 생각이다. 예전에 수국차 사고 싶어서 알아볼 때마다 티백은 현미수국차밖에 없어서 화가 났던 기억이 있거든, 껄껄.
아무튼, 어느샌가 오설록에서 이름도 너무나도 한국스럽게 예쁜 차들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차에 대한 설명도 시적이고 패키지 디자인도 정말 고와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한 그런 브랜딩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지인에게서 오설록 티세트를 선물 받았다. 정말 패키지가 고급스럽고 예쁘고 귀한 티세트.
사실 넌지시 오설록 티 맛있다던데라며 가족에게 흘렸더니 녹차만 보내줘서 아쉬움이 가득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티가 가득한 이 티세트가 내게는 너무 귀했다. 물론 녹차는 정말 정말 맛있게 마셨다.
티백은 보통 회사에서 마시는터라 머그에 담아 3분 정도 우리는 편인데, 오설록의 패키지가 예뻐 유심히 살펴보다 보니 음용법이 조금 달랐다. 특히, 차마다 우리는 시간과 권장하는 물 온도까지 다르더라.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티백 하나에 권고하는 물양이 150ml라는 것.
물 온도는 후발효차는 90도 녹차는 70도로, 물 용량은 150ml, 그리고 1.5~2분. 가장 충격적인 것은 물 용량이다. 150ml라니. 아니, 이것은 두세 모금이면 끝나는 양 아닌가요? 무엇보다도 머그잔은 보통 300ml부터 시작하지 않나요? 깜짝 놀라 집에 있는 머그잔들의 용량을 계량컵으로 재봤다. 대부분 300~500ml의 컵들이며 가장 작은 물컵도 250ml의 용량이었다.
당연히 물 용량 상관없이 2분을 우려도 될 테지만, 회사에서 알려주는 설명서는 연구팀에서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한 후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처음은 그대로 따라 해본다. 그래서 급하게 작은 용량의 컵을 찾아봤는데 다행히 예전에 티라미수를 먹고 남은 유리병, 작은 컵 모양이라 한번 우린 티백을 담는 그릇으로 쓰고 있던 유리병을 찾았다. 용량도 150ml, 너는 이제 병이 아니라 컵이다.
이렇게 보니 150ml는 딱 종이컵의 용량인 듯한데, 저 용량만을 마셔야 한다는 게 안타깝다. 물론 여러 번 우릴 예정이지만, 보통 세 번째 우릴 때부턴 맛이나 향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물 온도는 보통 다른 그릇에 담을 때마다 온도가 약 10도 정도 떨어진다는 것으로 감을 잡아 포트에서 팔팔 끓인 후 보온병으로 옮겨 담았다. 그리고 컵에 물을 먼저 담아 온도를 대충 맞춘 후 티백을 넣고 2분 타이머. 도전한 티는 후발효차인 제주 삼다 영귤티.
정말 티백 하나만 쏙 들어가는 용량이라니. 내 회사 머그는 큰 컵이니 아마 450~500ml 사이즈일 텐데 그러면 티백 3개를 한 번에 우려야하는건가라는 생각에 괜히 웃음이 나왔다.
오, 그런데 한 입 마시고 생각이 바뀌었다.
정말 맛과 향이 풍부했다.
수색이야 당연히 진하겠지만, 한 입 마셔보니 뭐랄까, 정말 알짜배기 그 자체라고 할까. 농축된 맛이 느껴져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내 착각이겠지만 물의 농도도 다르 느낌, 그동안 마신 차는 찻잎이 빠진 물이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무언가가 달랐다. 설마 내가 지금까지 티백을 잘 못 마신 것인가 싶어 깜짝 놀라 다른 브랜드들의 티백도 살펴봤는데(포트넘메이슨, TWG) 보통 물 용량은 제한이 없는 게 맞았다. 심지어 우리는 시간에 대한 설명도 없는 티백도 있었다.(TEAVANA)
용량이 적기에 금방 마셔버렸고, 당연히 한 번으론 아쉬워 두 번째 우렸는데 첫 번째보다는 덜했지만 그래도 훌륭했다. 하지만 세 번째부터는 맹탕. 수색부터가 달라 2분을 훌쩍 넘겼음에도 이미 다 빠져버린 것인지 수색이 진해지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티백 용량자체가 적으니 한계가 있는 듯. 딱 두 번까지만 우려먹기에 괜찮은 듯싶었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설명서. 추천 음용법 그대로 시도해 보는 것은 역시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역시 용량이 너무 적어서 회사에서는 2, 3개를 한 번에 우려봐야 할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티백 1개로 4분 우리는 건? 오래 우리는 건 그다지 추천하지 않지만 어차피 2번 우리니 괜찮지 않을까? 이건 나중에 회사에서 도전해 봐야겠다.
녹차는 물 온도가 70도에 1.5분만 우리라고 나와 있으니 나중에 도전할 때 숙우와 컵을 옮겨담으며 온도를 맞춘 후 꼭 도전해 봐야겠다.
역시 설명서는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