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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Nov 01. 2020

목적지에 닿아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다

여행은 또다른 나와의 만남이다.

 매년 해외 여행자 수는 급증했고, 수백만을 넘어 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해외로 떠났다. 코로나로 해외로 떠나는 길이 막힌 시국에도 우리는 여전히 여행을 갈망한다. 해외로 나가지 못한다면 국내로 여행을 떠난다. 코로나 사태만 진정된다면 다시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떠날 것이 분명하다. 나를 포함한 이 방랑벽에 걸린 사람들은 언제나 집을 떠나 돌아다니는 행위를 멈추지 못한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그 이유에도 가지각색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문화를 즐기기 위해 떠난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의식주를 벗어나 새로운 자극을 바란다. 다양한 음식, 새로운 문화, 혹은 엄청난 풍경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자극이 좋기 때문이다. 혹은 따분한 일상을 벗어나 쉬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현실의 지친 삶을 잠시 내려 두고 여행지에는 존재하지 않는 일상의 권태와 피로를 지우기 위해서다. 누구는 새로운 만남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마치 영화 <비포 선라이즈>처럼. 혹은 이 사회나 지금의 삶에서 도망치고 싶어 해외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실을 벗어나 눈을 돌려 잠시라도 행복한 꿈을 꾸기 위해서가 아닐까. 


물론 모든 여행이 단편적인 감정의 여정일 리는 없다. 휴가를 받아 떠나는 여행일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복잡한 감정들이 섞여 있다. “그냥 떠나고 싶다.”라고 툭 던지는 짧은 문장이지만, 많은 이유가 숨어 있다. 나 역시 하나로 꼽을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을 안고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의 추억이 삶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혹은 삶에 주어진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를 뽑아 보자면 여행을 하며 정형화되지 않은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나는 나라는 인격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을뿐더러 사람들이 고정하는 나의 이미지에 내가 얽매이게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빵틀처럼 찍어낸 내 이미지의 가면을 명함처럼 건네는 기분이다. 학교에서는 성실한 학생이었고, 회사에서는 일은 잘 못 하지만 무언가는 하는 직원으로, 친구에게는 착하지만, 말수는 적은 아이로. 모난 돌 깍듯이 다양한 감정들을 갈고 숨겼다. 동시에 나는 누구인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은 던지지 않게 된다. 남들이 보는 시선대로 내가 맞춰 움직이는 기분이다. 그러다 보니 내 시선도 시야도 좁아졌다.


하지만 여행은 이런 나를 밖으로 끌어내고 나의 가면을 벗긴다. 그리면 온전한 나를 마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를 감싸던 삶과 사회를 떠나 있는 동안 내 민낯을 마주한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가 진정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었다. 말 수가 없는 나였지만 한 방에 6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오랜 여행 동무처럼 정겹게 이야기도 하고, 화려한 축제 속 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아닌 듯 새로운 기분으로 타인을 대할 수도 있다. 거꾸로 친한 사람들이 생기더라도 원한다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남에게 끌려 다니기 보다 나 스스로에 대해 주도적으로 바뀐 덕분이다. 다시 말하면 ‘눈치’를 보지 않고 삶의 선택권을 내가 가진다. 그리고 완전한 객관적 시선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혹은 한국 사회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던 나와 세상을 조금 더 풍부하게 바라볼 수 있다. 내 안에 나 스스로 감춰두었던 나를 꺼내고 이런 나를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물론 여행으로 삶이 급작스럽게 바뀌지도 않는다. 변화는 순간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스며들 듯 찾아온다. 여행을 하며 나와 대면한 나에 대한 질문들이 조금씩 알게 모르게 나를 새롭게 만들었을 뿐이다. 여행이 내 인생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어떤 길을 걸어가는 중인지, 걸어가야 하는 지 생각할 시간을 준 셈이었다. 


 앤드류 매튜스는 ‘목적지에 닿아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라고 말했다. 나 역시 여행이라는 이야기의 결말만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무슨 활동을 하며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기 위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여행은 길 위에서 어떤 나를 만나는지 생각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었다. 여행으로 외롭고 힘든 삶에서 도피하는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했고,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들을 만나보았고, 나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며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걸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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