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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Mar 30. 2020

너는 여행이 아니라 도피하는 것뿐이야.

도망가는 사람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너는 여행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도피하는 것뿐이야.


 두 달 간의 여행을 다녀오고 난 이후였다. 술에 취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한국에서 다시 삶을 이어간 지 채 몇 달도 되지 않을 때였다. 여행의 여운이 끝나갈 무렵이고 학교에 다시 복학하기 전이었다. 다시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고, 매일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인데, 공부를 하지도 않으면서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집에 있는 데도, 집에 가고 싶을 거야. 이 말만큼 심정을 잘 표현하는 말이 있었을까. 집에 있어도 안정감은 찾을 수 없었고, 알 수 없는 무거운 마음이 짓눌렀다. 그래서 나는 다시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고 결국 친구는 나에게 저런 말을 던졌다.


 친구의 말은 내 정곡을 찔렀다. 사회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에 나는 너무 나약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라는 말에는 “하고 싶은 것이 없는데요.”라는 말이 나왔고, “잘하는 것을 하세요.”라는 말에는 “잘하는 것이 없는데요.”라는 말이 나왔다.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사람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학벌을 요구하고, 스펙을 요구하고, 대외활동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아파트를, 차를, 결혼을 요구해 왔다. 이 모든 과정을 반드시 하라고 바로 옆에서 소리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눈초리가 있는 기분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나씩 밟아가는 절차를 따르지 않는 나는 사회에서 도태되는 기분을 버릴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껏 내가 떠난 여행들은 도피가 맞았다. 수능을 보고 떠난 첫 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보며 견문을 넓히기 위해 떠난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대학 생활이 두렵고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도망간 것이었다. 학교가 모든 책임을 져 주던 청소년에서 벗어나 성인으로 모든 선택에 책임이 생긴 것이다. 그 책임이 두려워 도망갔다. 두 달간의 장기여행은 사회로 나가기 두려운 마음 때문이었다. 남들처럼 빨리 졸업하고 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사회로 뛰어들어야 했지만, 무책임하게 떠났다. 처음 사회생활을 할 때도 길에 대한 고민을 겪었다. 그리고 지쳐서 떠난 여행에서 결국 도망을 택했다.



 

당연히 무작정 도망친 여행지에 파랑새는 없었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도망친 여행지에서 귀인을 만나거나 새로운 도전을 한다.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이 조언을 주기도 하고, 여행을 통해 엄청난 깨달음을 얻고 귀국한 다음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달라진 삶을 산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먹고, 구경하고, 잠들었다.


도착한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 보았지만 나를 바꿀 만큼의 큰 자극은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 집을 떠나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날들을 반복했다. 의미 없는 도망 뿐이었을까. 


도망치듯 떠난 여행에도 의미는 있었다. 도망은 내가 상대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났을 때 일어난다. 강한 물리적인 힘을 보고도 도망가지만 견디기 힘든 아픔, 이별의 슬픔, 혹은 거대한 사회가 주는 불행을 보고도 도망간다. 나는 그 도망의 종착지를 여행으로 삼고 숨어들었다. 강한 적을 마주치면 도망가라는 격언을 그대로 따랐다. 유리만큼 연약했던 내 정신은 압박을 만나면 부서질 듯 아팠기에 떠났다.


자신을 가로막는 벽이나 두려움을 만나면 몸소 부딪치며 깨뜨려 넘어서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처럼 하다 넘어져서 아픈 기억밖에 없었다. 수 차례의 실패로 그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먼저 피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피하는 것이 끝은 아니었다. 결국 어떻게든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두려움이 가득해 피하고만 싶어도 공부를, 사회 생활을, 인간 관계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만 여행으로, 이 모든 것을 피해 도망친 여행으로 나는 그 압박을 고뇌하고 견딜 방향을 찾은 것 뿐이었다. 나를 감싸던 모든 삶과 사회를 떠나 생각할 시간을 번 덕분이었다. 결국 나는 나를 기다려줄 시간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삶에 수 많은 방향이 있듯이 나의 방향도 다르게 펼쳐졌을 뿐이었다. 파랑새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라 여행이 파랑새였다.


다행인 점은 도망쳐 떠났던 여행이라도 나의 감정은 진실되었다는 것이다. 도망이라고 해도 여행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생기는 감정은 어쩔 수 없다. 공항에 도착해 분주히 캐리어나 배낭을 지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어느새 짝사랑 상대가 말을 건 듯 가슴이 두근거린다. 공항 문이 열리면서 들어오는 아주 옅은 바다 냄새와 공항 특유의 냄새 때문에 괜히 한 번 숨을 크게 쉬어 본다. 그리고 비행기에 타서 육중한 기계가 움직이는 진동은 몇 번이나 마주해도 설레는 감정을 준다. 그리고 처음 목적지에 도착하면 약간의 긴장감이 생기지만 그곳에서 삼일 정도만 지내면 생기는 도시의 안정감은 따듯한 솜털 같은 기분이다.


 언제나 존재했지만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느끼기 힘든 감정들이었다. 새로움과 색다름, 그리고 두근거림. 누군가는 여행을 가지 않고 이런 감정을 느끼기 쉬울 수 있어도, 적어도 나는 떠나야만 느껴졌다. 이런 기분들은 여행으로 도망쳐 온 나에게 온전히 새로운 기운을 몰아주었다. 그리고 이 감정이 나의 무기가 되었다. 도피로 나를 기다린 모든 시간은 내 방패가 되었고, 신선한 감정들은 강한 두려움을 상대하기 위한 나만의 무기가 되었다. 이로써 다시 맞설 힘이 생긴 셈이었다. 


어찌 보면 친구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나는 도피하고 싶어서 떠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도피라는 단어가 가진 감정적인 기운에 이를 부정했었다. 다만 내 정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피했을 뿐이었다. 소설이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처럼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잠시 몸을 숨겼다. 소설 속 도망과 달리 다행히 여행은 결국 돌아올 집이라는 목적지가 있었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으로 그 압박을 대비할 준비를 마쳤고, 그게 나의 여행이자 도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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