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아그라 행 기차 안
12월 27일 12시 46분 바라나시 게스트하우스
바라나시에서 마지막 날이다. 오늘 드디어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로 떠난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인도 대륙 기차 이동의 대 서막의 시작이다.
21시 14분 바라나시 -> 아그라 기차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달린다. 오늘 글 좀 미리 쓸 껄. 하루종일 바쁘게 돌아다녔더리 일기가 밀렸다. 아침에 눈뜨고 씻고 난 이후 기차 시간이 좀 많이 남은 탓에 숙소에 짐을 맡겨 두고 돌아다녔다. 오늘은 바라나시 힌두 대학교 구경을 목표로 했다. 과연 이곳 대학생들은 자기 앞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솔직히 큰 차이는 없을 듯 하다. 고민은 20대들이 가지는 당연한 시대의 십자가니까.
숙소에서 나와서 큰 길목으로 걸어가는데 빠니보틀 유튜브에서 영화를 봤다던 영화관이 나왔다. 가서 하나 볼까 망설였는데 우선 배는 고프니 건물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영화관 안으로 들어간 어제는 이제 가장 먼저 도미노피자가 눈에 띄었다. 건물이 영화관이라기 보다는 쇼핑센터 같아 보였다. 그 안에 이제 영화관도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낮인데도 오픈한 상점이 많지는 않았지만 마트, 옷가게, 은행 정도는 문을 열고 있었다. 5층까지 가니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 있었다.
비싸 보이기에 그냥 갈까 고민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바라나시 최고급 레스토랑도 한 번 가보고 싶기도 했고, 어제 돈을 생각보다 많이 쓰지 않아서 큰 마음 먹고 왔다. 그래봐야 한국에서 먹는 가격이랑 비슷한데 왜 항상 여행만 오면 돈을 더 아끼고 싶은 마음이 들까. 어차피 쓰는 돈인데 아껴서 무엇하리. 오전이라 아직 영업을 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들어왔으니 금방 준비해준다고 했다. 책 읽으며 기다리다보니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티베트식 만두지만 네팔 만두라고 생각하던 모모, 양고기가 들어간 커리, 그리고 난 하나 이렇게 주문했다. 또 다시 주문한 다음에 시간이 오래 지나니 이번엔 서빙이 시작되었다. 홀 총 책임자가 한 어린 소년을 데리고 왔다. 아마 일을 처음 배우는지 홀 책임자가 우리에게 물을 따라주는걸 보고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온 음식을 서빙하는데 소년이 몸을 움직일때마다 자꾸 뭐라 말하며 자세를 교정해주고 있었다. 외국인이니까 한 번 서빙하면서 교육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듯 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대화하고 있지만 알아듣는 묘한 기분이다.
소년이 서빙해준 음식은 꽤 맛있었다. 칠리 맛이 나는 소스와 함께 먹어보니 독특한 맛이었다. 고수가 올라간 모모이기에 처음에는 살짝 거부감이 들었지만 오히려 강한 향의 소스 사이에 고수는 기이하게도 입에 맞았다. 그냥 만두와는 조금 다른 독특하게 맛있는 기분이다. 커리는 그냥 커리였다. 양고기가 쫄깃하고 맛있지 다른 큰 차이는 없었다.
천천히 먹고 나서 잠시 식당에서 쉬는 동안 화장실을 찾아 잠시 나갔다 왔는데 옥상이 있었다. 잠시 바깥 풍경을 보는데 이 건물이 바라나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같아 보였다. 어지럽게 흩어진 도시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복잡한 도시 속 살아가는 사람들. 글쎄 사실 인도에 대해 약간 무서운 것이 원래 있었지만, 저 안에 잠시 발 담구고 와 보니 그런건 없었다. 서울에 사는 우리나 여기 사는 저들이나 그냥 똑같은 사람이다. 그 안에 사기꾼도 있고, 범죄자도 있고, 착한 사람들도 있고, 일을 배우는 사람들도 있고. 같은 지구 안에 평범한 사람들이다. 물론 그래도 어제 돈 가져가려 했던 환전 사기꾼은 좀 짜증났었지만. 아 거기에 치안에 따른 차이도 있고, 법이나 도덕 관념에 따른 차이도 있지. 뭐 그럼 다른건가? 아닌가? 글쎄 모르겠다. 나의 안전과 새로운 경험 사이에서 스스로가 선택해야지. 나는 이제 새로운 경험이 더 끌려서 선택했고,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위해 스스로 조심하는 거고. 무엇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지 모르니까 긴장을 풀지는 않지만, 온 것에 대해 후회는 없어야지.
풍경 구경까지 마치고 이제 사람들이 버글거리던 바라나시의 중심지 고돌리아를 통과해 가트 주변으로 갔다. 이제 이 근방의 길은 다 알겠다. 솔직히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 이 순간이다. 낯선 도시나 나라에 왔지만 몇 번 길을 걸어다니면서 그 근방의 지도를 머리속에 집어 넣는 일. 오사카에서 일주일동안 있었을때도 마치 현지인이 된 듯 지도 보지 않고 라멘집이나 역으로 찾아갈 때 쾌감이 있었다. 여기서도 그렇다. 복잡해 보이는 골목과 골목 사이지만 아 여기가 여기지 하면서 머리 속에 지도가 그려지는 순간이 여행에서 가장 흥미롭고 즐겁다. 어제 철수네 한 번에 왔을 때 친구가 여기 어떻게 한 번에 왔냐고 놀랐던 것처럼 혼자 신이 난다.
가트에는 이제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어제는 확실히 일식이라 사람이 많아서 그랬던거였다. 철수네 카페를 이정표 삼고 바바라씨로 곧장 떠났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그리고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라씨 전문점이다. 마치 아바타의 칼라처럼 네이버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 듯한 우리는 이미 한국인 가득한 라씨집 안으로 들어갔다. 벽에 낙서들도 한국어고, 증명사진부터 갖가지 명함도 붙어 있었다. 일종의 바라나시 사랑방이랄까. 이제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으로 한 번에 어디 같이 갈 사람 이런 식으로 구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일종의 오픈채팅방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몇 없는 한국인들끼리 모이고 뭉쳐서 위험도 피하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즐거운 추억도 만드는 그런 장소인 셈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제 같이 배를 탔던 아버지와 아들도 있었고, 커플, 30대 누나들 두 분도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어디 숙소에서 머무는지가 주된 화제였다. 나이가 좀 있으신 아버지와 아들은 5성급 호텔에서 잤는데 꽤 저렴해서 놀랐고, 우리는 두명 합쳐서 3천원정도 되는 숙소라고 하니 괜찮냐고 다들 놀랐다. 글쎄요, 오래 인도에 있으려면 어쩔 수 없어서요… 취직하고 돈 많이 벌면 나도 5성급 가고 싶지.
조금 시간이 지나니 라씨가 드디어 나왔다. 요거트와 요구르트 중간의 맛이 나는 그런 독특한 라씨였는데 괜찮았다. 플레인 라씨 위에는 커드 라는 생크림인가 치즈인가 무언가 올라갔다. 먹으면서 이제 힌두 대학교 구경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논의하고 있었는데, 30대의 누나 두 분이 자기들도 골목 구경 가려했으니 같이 가자고 이야기를 했다. 인도에서 첫 여행 동행이 시작되었다. 라씨를 다 먹고 힌두대학으로 출발했다. 알고보니 이분들은 인도철학과 출신이었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사원이 나오면 숨은 힌두교의 상징을 발견하고 사진 찍으며 설명해주었다. 어제 우리가 잠시 걷던 길과 같은 길이었기에 길 찾는건 어렵지 않았지만, 이렇게 많은 정보가 있는 지 모르고 그냥 걸었었다.
길목마다 숨어있는 조각, 부조, 사원 등을 하나씩 설명해주니 가이드가 생긴 기분이었다.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인다. 너무 많이 알면 새로움이 없지만, 적당히 아는 건 여행을 더 깊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조금은 후회했다. 인도에 대해 조금은 공부하고 올껄. 너무 아무것도 아는거 없이 왔다.
골목이 끝나고 아씨 가트 쪽으로 이동한다음에 지도에서 가라는 대로 갔더니 길이 사라졌다. 강변의 흙길을 따라 걷는 수 밖에 없었다. 가면서 다시 온전한 길 위로 올라왔는데 풍경이 조금 달라졌다. 아마 빈촌이 아닐까 싶었다. 어제에 비해 날씨가 좋아 해도 떠서 가트 주변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는데 어제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빈촌인줄도 몰랐다. 아이들은 크리켓을 하고 있고, 소와 염소가 가득하고, 개는 쓰다듬어 달라고 오니 평범한 인도의 골목인줄 알았다. 그런데 센트 라비다스 스마락 공원을 지나니 본격적으로 쓰러져가는 건물들이 나타났다.
하수구가 강물로 바로 들어가며 악취가 나기 시작했고, 곳곳에 피우는 모닥불에는 나무가 아닌 쓰레기만 타고 있었다. 바라나시 공항에서 처음 바라나시 시내 쪽으로 오는 길에 봤던 그런 모습이랑 비슷했다. 자세히 보니 조금 더 심한 가난이 있긴 했다. 건물 천장에는 벽이 아닌 비닐이 있었고 그것도 부족한지 그냥 나무 사이에 비닐로 대충 텐트같이 쳐 두고 사는 가족들도 있었다. 처음 느끼는 기분이 들었다. 두려움과 동정심이 동시에 들었다. 사람이 넷이라 크게 무섭지는 않았지만 어느 나라나 빈촌에 대한 편견같은 것이 있지 않은가. 방금 전에 가트 주변에는 웅장한 건물들과 부티나는 사람들이 있다가 여기를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이런걸 관광처럼 보면서 돌아다녀도 되나 싶은 생각부터 신기하기도 했다. 사실 어린 시절 동네에 있던 판자집을 보던 기억이 돌아오기도 했다. 서울 인구를 감당하지 못해 난립하던 건물 사이에 있던 판자집.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땐 그런 곳도 있었지. 근데 그때는 동정이나 두려움이 없었다. 어려서 그랬을까. 그냥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집 하나로만 생각했었다.
무겁고 복잡하고 신기한 기분을 안고 걷다보니 엇 하는 순간에 대학에 도착했다. 대학교 교정에서 사진 한 장을 찍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대학교 안을 구경하지 못하고 바로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조심히 여행하라는 인사만 서로 나누고 나서 우리는 오토 릭샤를 타고 돌아왔다.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100루피 밖에 안나왔다. 숙소 근처 고돌리아에서 내려서 숙소까지 걸어갔다. 가는 길에 길거리 짜이를 처음 시도해봤다. 인도 차인 짜이는 원래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간 맛이 나야 하는데, 여기는 생강 맛이 너무 강했다. 숙소에서 시계를 다시 보니 그렇게 시간이 빠듯하지 않은 덕분에 한 시간 정도 쉬다가 이제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