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 아그라 기차
12월 29일 아그라 출발, 자이푸르 도착 기차 10시
아그라에서 자이푸르로 떠나는 기차다. 오늘 새벽에 눈을 떴는데 너무 추웠다. 자다가 손이 얼었다. 혹한기 하는 기분이었다. 화장실 문도 반 열리고, 난방은 찾을 수 없었고, 발도 시렸다. 찬 공기가 스쳐갈 때마다 깼다. 평소 인도 날씨는 같은 북반구라고 하더라도 한국에 비해 10도 이상은 높다.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라는 도시의 12월 평균 기온도 낮에는 23도, 밤이라고 해봐야 8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이다. 하지만 오늘 밤은 왜 이리도 추운지. 건물 자체도 난방보다는 냉방을 위한 설비를 갖추다 보니 넓은 창문, 시원한 벽돌 벽으로 건축되어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를 가던, 호텔을 가던 에어컨이나 선풍기는 대부분 설치되어 있었지만, 난로나 온풍기가 설치된 곳은 없었다. 우리가 묵던 호텔 역시 방을 데울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다 못해 문이라도 잘 닫히면 좋으련만 시원하게 뚫린 창문을 억지로 막아 봐도 칼바람은 방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난방은 찾을 수 없고, 손발은 차가워지고, 두꺼운 이불로도 서늘한 기운이 침투하니 제대로 된 잠을 잘 수 없었다.
추워서 잠을 못 자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100년 만의 추위에 겹쳐 미세먼지 역시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되더라도 추운 시베리아 기단이 내려오면 사라지니 추운 날 = 미세먼지 적은 날이라는 비공인 공식이 있었지만, 오히려 인도는 그 반대였다. 델리부터 바라나시, 아그라까지 어디를 가도 진한 안개처럼 내려앉던 미세먼지는 강추위에 더욱 기승을 부렸다.
바로 모닥불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도 미세먼지가 심한 인도지만, 날이 추워지니 사람들이 보온 강구를 위해 길거리 어디서나 불을 때고 있었다. 길 건너 짜이집 앞에도, 횡단보도 옆에도, 식당 앞에도, 시장 입구에도 모닥불이 있었다. 나무로 된 땔감만 가지고 와서 불을 붙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탈 수 있는 각종 쓰레기들을 모조리 긁어모아 태우니 그 재로 인해 미세먼지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 환경 호르몬이나 유해 물질보다 당장 추위에서 버텨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온갖 쓰레기를 한데 모아 태우니 공기가 맑아질 수 없던 것이었다. 추위와 미세먼지라는 이중고가 우리의 밤을 방해했다.
아침 6시에 기차가 출발해서 새벽 4시 반에 알람을 해 두었는데 추워서 알람소리 듣기도 전에 깼다. 그런데 기차가 2시간 연착되었다고 앱에 떴길래 다행이라 생각하고 다시 6시까지 잤다. 그리고 또 한 시간 더 연착되어 최종적으로 9시 15분까지 시간이 남았다. 기차 연착이 고마운 건 처음이다.
8시에 일어나 얼어 있는 몸을 깨우며 간신히 짐을 쌌다. 원래는 아침으로 라면 하나 먹고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밥은커녕 따듯한 커피만 두 잔 마셨다. 얼죽아도 여기서 아이스 먹으면 죽는다. 9시가 되어서 릭샤를 타고 기차역으로 출발했다. 호텔 앞에서 역까지 100만 주면 된다고 했는데 릭샤 기사가 200 부르길래 호텔에 이르려고 했더니 100 오케이를 외치고 출발했다.
그런데 기차역 가는 길에 혹시 몰라 친구 휴대폰으로 기차 출발 시간을 확인했는데 기차 시간이 당겨져 출발한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아침부터 너무 미적거렸나 후회되었다. 돈을 조금 더 주고 버스를 타고 떠나야 하나 싶었다. 그래도 일단 역으로 출발했으니 기차역으로 릭샤는 그대로 갔다. 도착해서 혹시 몰라 전광판을 보는데 전광판에 우리 기차가 적혀 있었다.
우리꺼다! 하고 소리치고 뛰어가니 기차를 탈 수는 있었다. 이제는 모바일 어플에 있는 내용도 믿지 못하겠다. 뛰어가면서 두 개의 폐 한가득 미세먼지를 마시니 기차에 오르자마자 기침을 멈출 수 없었다. 담배 5대를 연속으로 핀 것처럼 기관지가 너무 아팠다. 그래도 타서 다행이었다.
이번에도 침대칸이었는데, 3층이었다. 힘들어서 팔다리 부들거리며 겨우 올라가니 바로 기차는 출발했다. 아슬아슬했다. 어제 탄 기차보다 조금 저렴한 3등석이라 그런지 큰 배낭을 둘 공간이 없어서 아슬아슬하게 걸쳐두고 떠났다. 4시간 정도만 더 가면 된다.
11시 35분 아직 기차
기차는 멈추지 않는다. 안 멈추고 계속 가서 자이푸르 직행으로 갔으면 좋겠다. 왜 비행기는 한 번에 가는데 기차는 멈추지 깔깔. 살려주세요. 그제부터 몇 시간째 기차에만 있는 기분이다. 예전에 유럽에서 23시간 버스 탔던 생각이 난다. 몬테네그로 코토르에서 출발해서 알바니아 티라나, 그리고 그리스 파트라스까지. 태양의 후예 하나 보고 떠났는데 지금은 무엇을 보고 떠난 여행인 것인가. 빠니보틀 때문인가 싶다. 나는 여기에 왜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