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성 Oct 22. 2023

지극히 주관적인 타지마할

11시 35분 자이푸르행 기차

기분 전환되게 기차에서 탈출했던 어제 이야기를 다시 써보자. 숙소에 짐을 둘 때는 호텔이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이 때는 추운 밤을 겪기 전이니 당연히 좋다고 생각했지.) 그리고는 바로 타지마할로 갔다. 델리와 가까운 아그라는 타지마할의 도시로 모든 설명이 가능하다. 호텔을 구해도 ‘테라스에서 타지마할이 보이는!’이라는 문구를 가장 많이 쓰고, 식당을 가도 ‘타지마할에서 단 5분 거리의!’라는 홍보를 가장 많이 한다. 길거리 잡화점에서도 역시나 새하얀 타지마할 모양의 조각상, 달력, 엽서, 냉장고 자석이 널려 있고, 거의 모든 도로 표지판에도 타지마할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나 또한 타지마할을 위해 이 도시를 방문했다. 우리 역시 숙소를 타지마할이 잘 보인다는 홍보 문구를 보고 예약했다.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보이는 숙소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숙소 옥상에서도 타지마할이 보였고 타지마할의 입구까지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숙소 바로 옆에 있었는데 타지마할 유적지 전체 크기는 경복궁보다 작은 듯했다. 숙소는 남문이랑 이어졌는데 남문은 입구가 아니라고 쫓아내서 빙 돌아 입구로 갔다. 티켓부터 사야 했는데 줄이 엄청 길었다. 타지마할은 많은 매체에서 소개되었듯이 세계 7대 불가사의이자 인도 대표 랜드마크이자 인도 최고의 건축물이다. 완벽한 대칭을 자랑한다고 소문난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이 건물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인도로 향한다. 물론 인도인들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크리스마스 시즌 명동과 강남의 인파가 매일마다 반복되고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으로 가서 서 있는데 어떤 사람이 자신이 정부 공인 가이드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표 사는 곳이 여기가 아니라면서 알려준다고 따라오라고 했다. 인도에서는 정부 공인 아닌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이 사람 역시 누가 봐도 사기꾼이었다. 관광객이 많은 덕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사기꾼들이다. 사실 사기꾼이라고 해도 별건 없다. 진짜로 타지마할에 “정부 공인 가이드”라는 게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사기꾼이라고 해도 별건 없다. 1000루피를 주고 사설 가이드를 고용하는 것이다. 표도 새치기해서 대신 사 와주고, 안에 들어가면 사진도 잘 찍어주고, 각종 설명도 해주는 사람들이다. 다만 진짜로 돈 가지고 도망가는 사람, 두 시간 둘러볼 타지마할을 10분 설명하고 끝내는 사람 등 질 나쁜 사람들이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시하고 그 사람이 알려준 대로 외국인용 표를 우리가 직접 구매했다. 인당 1300루피의 입장권이라 인도에서 쓴 돈 중 가장 많이 쓴 돈이었다. 1300루피 중 500루피가 세금이란다.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가이드라는 아저씨처럼 새치기로 끼어드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다. 왜 새치기하냐고 하니까 자기네 손님은 VVIP라서 빨리 표 사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가이드북을 들고 서 있었는데 내부에서 가이드북이 불법이라는 어이없는 말을 하는 사기꾼도 있었다.




겨우 표를 손에 쥐고 나니 힘이 빠졌다. 과연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오고, 많은 사기꾼들이 죽치고 있을까 싶었다. 토큰처럼 생긴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니 내/외국인 용 입구가 분리되어 있었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도인들이라 외국인용 입구로 쉽게 들어갔다. 


가방 검사를 마치고 사람들 무리를 따라 희고 거대한 타지마할을 찾아 떠났다. 그리고 드디어 입구에 섰는데 입구부터 웅장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타지마할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거대해 놀랍다. 말로만 듣던 무굴 제국 최고의 자랑이자 보물인 타지마할. 처음 느낀 감정은 파리에서 에펠탑을 봤을 때의 희열과 비슷했다. 이 유명한 것이 내 눈앞에 있다는 감정이자 생각보다 거대해 압도되는 기분.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고 맨 눈으로 타지마할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왜 사람들이 랜드마크를 방문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랜드마크는 그 자체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흰 대리석 덩어리를 섬세하게 조각해 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멋있었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멋있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머리를 휘감았다. 


점점 다가갈수록 멋진 모습에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인도 현지인들의 입에서도 감탄이 쏟아졌다. 사실 외국인보다 인도인들이 더 많았다. 인도의 국보이다 보니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듯했다. 우리끼리 구경하는데 인도인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서 온다. 당연히 타지마할 배경으로 가족사진 찍어달라는 줄 알고 알겠다고 했는데 우리랑 찍자는 뜻이었다. 셀럽이 된 기분이었다. 한 가족만 그런 게 아니라 한 5분에 한 번씩 사진 요청이 들어왔다. 가끔 딸이 BTS 팬이라고 사진 찍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역시 BTS. 인도의 국보급 문화재 앞에서 한국의 국보급 가수를 외치다. 이런 순간이 오다니 감격스럽다.


타지마할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줄이 너무 길어서 기다리다가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들어가지도 않고 그냥 가까이 가기만 하더라도 덧신을 신어야 했다. 보호하기 위해서다. 신발에 덧신을 씌우고 가까이 가서 한 바퀴 돌아봤다. 어마어마한 크기에 네 방면이 모두 똑같이 생긴 이런 문화재가 있다니. 놀랍도록 신기하다. 타지마할 뒤쪽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었고, 수많은 원숭이 가족들이 난간 위아래에 있었다. 추운지 서로 끌어안고 있었다. 귀엽긴 하지만 무서워서 조금 떨어진 채 난간 너머의 강을 보며 잠시 쉬었다. 강 이름은 야무나 강이었다. 말장난이 하고 싶은 강이다. 집 한 채가 외롭게 서 있고 한 노인이 낚시하는 운치 있는 강이다. 타지마할 배경으로 낚시라. 나도 하고 싶었다.


이렇게 멋진 타지마할이었지만 미세먼지만은 아쉬웠다. 수도인 델리와 가깝다 보니 미세먼지 지수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그동안 본 사진 속 타지마할은 하얗고 멋진 모습이 8K TV로 나오는 모습이었다면, 미세먼지 가득 낀 타지마할은 오래된 브라운관 TV로 보는 기분이었다. 신비함은 조금 사라졌지만 웅장함이 압도해서 다행이었다.

이전 10화 추위와 기다림의 연속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