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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Oct 22. 2023

타지마할 해골물과 마시는 맥주

15시 24분 자이푸르행 기차

15시 24분 아직도 기차

기차가 안 멈춘다. 어디까지 갈까. 3층 칸에 짐이랑 같이 있으니 허리가 결린다. 3층이라 허리를 펴지도 못한다. 어제 탄 2층은 편안한 기차였다 확실히. 한 40분 자다가 다시 인터넷 되지도 않는 휴대폰 만지고 책을 보다 일어났는데 아직 도착을 못하고 있다. 원래는 이 시간쯤 도착인데 뭘까 대체 인도에서 기차란.




타지마할에서 감명을 받은 우리는 5시가 넘어가니 배가 고파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해도 저물고 있어서 밖으로 나왔다.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기차에서 도시락 하나 사 먹으려고 기차 안에 온 노점상 아주머니에게 인도 기차 도시락을 하나 샀는데 차갑게 식고 낯선 맛이라 한 입만 먹고 못 먹었었다. 그러니 배가 고픈 게 당연했다. 


타지마할 입구 앞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팔고 있었는데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한국 돈으로 4천 원이 넘는 샌드위치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거의 한국만큼 비쌌다. 카페 옆에서 길거리 짜이 하나 먹었는데 이것도 20루피나 했다. 관광지 주변의 물가는 확실히 비싸다. 한국에 비하면 싸긴 한 건데 그래도 왜인지 비싼 돈 주고 먹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물가 저렴한 인도에서도 돈을 아끼고 싶어 진다. 돌아 나와 저녁 먹을 것을 보는데 Jonney`s Restaurant라는 식당이 눈에 띄었다. 트립 어드바이저 평점도 높고, 멀리 가기 힘들고 보니까 가격도 적당해 보여서 들어갔다. 점원은 우리를 보자마자 한국어로 된 메뉴판과 특식 메뉴판을 주었다. 특식 메뉴는 바로 한식이었다. 한국어로 설명도 잘 되어 있었다. 친해진 여행자가 적어주고 갔는지 어떤 메뉴가 맛있고 뭐가 좋다는 추천도 적혀 있었다. 



대충 추천받아서 양고기 스테이크, 면 요리, 볶음밥 그리고 바나나 라씨를 주문했다. 주문하고 곧이어 바나나 라씨가 먼저 나왔다. 바나나 가루인지 설탕인지 아니면 미숫가루인지 모를 달달한 무언가가 뿌려진 라씨였다. 바나나맛 우유를 요거트에 달달하게 만든 맛인 바나나 라씨를 흡입하듯이 먹고 났는데도 다른 음식들은 서빙되지 않는다. 이제 한계에 다다를 때즈음 드디어 메뉴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양고기 스테이크는 제육이나 편육처럼 얇게 썰어서 특유의 향신료와 피망을 넣어 볶은 양고기볶음이었다. 고기가 맛있어서 밥이랑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은 볶음밥이었다. 우리가 자주 먹던 기름이 굴소스 느낌의 볶음밥이 아니라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야채와 밥을 볶긴 했는데… 잘 모르겠다. 어린 시절 아직 강한 양념을 먹지 못할 때 할머니가 해준 그런 맛이랄까. 면 요리는 치즈가 위에 뿌려져 있는데 치즈의 맛으로 먹어야지 나머지 토마토소스와 향신료의 맛은 너무 옅었다. 우리의 입맛이 너무 자극적인 것을 찾는 것인가 아니면 요리를 실수한 건가 모르겠지만 우선 오랜만에 먹는 밥이라 남기지 못했다.



밥을 먹고 나니 오랜만에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인도에서는 술 마시고 긴장을 놓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한 번도 마시지 못했다. 우리처럼 편의점에서 맥주를 팔면 좋은데, 편의점은 없는 동네고 구멍가게에서도 맥주를 팔지 않았다. 술을 자유롭게 사는 한국에선 상상도 못 하는 일이지만, 종교의 힘이 강한 나라니 그럴 수 있지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술을 팔기는 하는데 리큐르 샵에서 구해야 했다. 숙소 바로 앞에 주류 전문점이 있었지만 보드카, 럼, 위스키, 각종 리큐르 등 수많은 술들 가운데 맥주만 없었다. 술을 엄청 좋아해서 독주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맥주 한 캔이면 충분히 취하는 주량이기에 발길을 돌렸다. 그냥 간단한 과자와 기차 탈 때 먹을 바나나 (는 사실 지금 먹고 있다.)와 오렌지(이건 아까 먹었다.) 그리고 물만 사서 돌아왔다.

 

호텔은 3층짜리인데 옥상이 있었다. 사실 주변에 게스트하우스도 있지만 굳이 3층짜리 작은 호텔로 잡은 건, 바로 이 옥상 때문이었다. 타지마할 바로 옆에 있다 보니 옥상에서 타지마할이 바로 보이는 낭만적인 풍경이 유혹해 나도 모르게 이곳으로 예약을 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신다는 엄청난 기회를 놓치기 싫어 간절히 맥주를 찾아다닌 것이었다.


물과 과자만으로 만족해야지 어쩌겠나 싶어서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가니 스텝 한 명이 와서 맥주 마실 거냐 물어봤다. 그래서 당연히 마신다고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개당 250루피, 한국돈 4천 원을 달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인데 우리가 구할 방법은 없으니 맥주 가게까지 왔다 갔다 하는 비용이라 치고 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더니 맥주를 구하러 스텝이 떠났다. 여기에 있는 거 주는 게 아니라 직접 자기가 사러 가는 거였다.


직원은 어울리지 않게 우리에게 윙크를 건네고는 털털거리는 구식 오토바이를 타고 소음과 함께 떠났다. 금방 온다는 말을 믿고 우리는 옥상에서 보이는 타지마할을 구경하고 있었다. 은은하게 깔린 미세먼지 덕분에 타지마할은 훨씬 작게 보였다. 아까 본 것보다 약간의 감흥이 떨어진다. 생각보다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낭만 하나 챙겼다고 치고 맥주가 오기를 기다렸다. 날은 추운데 20분을 기다려도 맥주가 오지 않았다. 멀긴 멀구나 우리가 사러 갈 수는 없었겠다 생각하고 4천 원이 아깝지 않았다. 추위가 슬슬 발가락의 감각을 없애려고 할 때쯤이 되니 드디어 맥주 사러 간 스탭이 도착했다.



고맙다고 하고 돈을 주고 맥주를 마시려고 하는데 팁을 주면 안 되냐고 부탁했다. 날씨는 매우 춥고, 자기는 라이선스 없어서 (맥주를 사려면 라이선스가 필요한 건가?) 빌렸고 또 멀었고 하면서 말을 하길래 알겠다고 하고 주머니에 있는 루피를 좀 줬다. 그러고 나니 이번엔 제페니스 리스펙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인도에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많은가 보다. 여기 말고도 종종 곤니치와를 듣곤 했으니 말이다. 태원준 작가의 <딱 하루만 평범했으면>에서도 일본인이 휩쓸고 간 인도에 한국인이 휩쓸고 있다고 했는데 딱 맞는 거 같다. 한국인이라고 정정해 주고 다시 맥주를 마시려 하는데 이번에는 뭐가 필요한지 또 우물쭈물 거리며 우리 곁에 다가왔다. 뭐가 또 필요한 건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담배였다. 그러니 한 모금하고 나서 한국 담배 예찬을 쏟아냈다. 인도 담배는 텁텁한데 한국 담배는 뭐가 좋느니, 이렇게 좋은 담배는 처음이라니 라는 속사포 같은 찬양에 웃음만 나왔다.


알고 보니 인도 담배 가격은 일반인에게는 비쌌다. 담배 한 값에 300루피, 우리 돈으로 4500원 내외로 한국에서의 가격과 비슷했다. 한국 담배도 한국인에게 비싼데, 인도 물가를 고려한다면 일반인들이 선뜻 담배를 사기 힘들었다. 우리가 마시는 맥주보다 담배 한 값이 더 비싼 셈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흡연자는 많아서 세계 2위 담배 소비국이라고 한다. 그러니 팁만큼이나 담배를 원하는 것이었다.


릭샤나 택시에서 내려서 담배를 꺼내면 꼭 팁으로 돈을 달라는 말 대신 담배 한 대만 줄 수 있냐는 기사들이 넘쳐났고, 길을 잃은 듯 서성거리면 꼭 자기가 길을 찾아주겠다는 현지인들이 나타나 대신 담배 한 대를 얻어갔다. 어디서나 담배를 입에 물면 수염이 덥수룩한 어른들이 무섭게 다가와 담배를 요청하곤 했다. 


 낯선 장소의 낯선 사람들이 무섭기도 하니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담배와 돈이 아까워져서 그다음부터는 나도 속임수를 쓰곤 했다. 바로 빈 곽에 당장 다음에 필 담배 한 개씩만 넣어두는 것이었다. 그리곤 그 담배를 태우고 누군가 달라고 요청하면 그 곽을 보여주면서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야 타지마할을 보며 맥주를 마시는 낭만을 즐길 수 있었는데, 낭만은 일렬의 과정 속에 조금 사라지고 그냥 맥주 마시며 쉬는 기분만 들었다. 킹피셔라는 인도의 맥주였는데 나름 괜찮았다. 하지만 친구는 카스보다도 별로란다. 마시면서 앞으로 여행 이야기를 조금 나누면서 타지마할을 슬쩍 바라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뭐랄까 돔이 이전보다 확실히 다른 기분? 저게 사실 타지마할이 아니라 모스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구글을 켜서 이 호텔에서 찍은 다른 사진들을 보는데 세상에 마상에 진짜로 우리가 보던 건 모스크고 미세먼지가 너무 자욱해서 타지마할은커녕 타지마할을 비추는 조명조차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영화 미스트도 아니고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 먼지를 아까 기차 타기 직전에 뛰면서 다 마신 거였다. 상황이 웃기니 허탈하게 킬킬대며 맥주 마시고 방으로 내려왔다. 타지마할 해골물을 마신 기분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낭만에 젖어 감수성 풍부한 저녁이었는데 그때부턴 웃기기만 했다.


마시고 내려와서 샤워하는데 찬 물 밖에 나오지 않았다. 덜 차가운 물과 찬물뿐이었다. 그래도 이 추운 날 찬물로 샤워하고 나오니 춥지 않았다. 1박 2일에서 겨울에 입수하면 이런 기분인가. 진짜 신기하게도 반팔 입고 밖에 나가도 안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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