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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Oct 12. 2022

아이의 모국어 이야기


첫째가 미국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생활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제는 영어도 곧잘 한다. 


영어를 알아듣기 시작한 지는 꽤 되었고 이제는 간단한 문장은 어렵지 않게 구사한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단어를 머릿속에 말 그대로 욱여넣는 주입식으로 영어를 배우고 대학생이 되어서야 처음 비행기를 타본 사람으로서 내게 영어는 늘 숙제다. 


영어로 늘 읽고 써도 썩 느는 것 같지 않고 그에 반해 한국어 단어는 급격하게 잊어버리는, 소위 ‘0개 언어’ 단계에 접어드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한다. 


남편도 영어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인데 큰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습득하는 아이를 보면 가끔 부럽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어를 잊어버릴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어린이집을 가면 영어는 어련히 하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그동안 집에서는 대부분 한국어만 사용했다. 


아이가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언어만큼은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또한 언어는 사람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영어를 아무리 잘한다 한들, 모국어가 가지는 뉘앙스를 온전히 전달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한평생을 나고 자랐기에 남편이나 나나 미국에 평생을 산다 해도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지는 못할 거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아이들과 깊이 있게, 그리고 내가 편하게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또 두 가지 언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자산이 될 수 있음에도 한국어가 어눌한 코리언 어메리컨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집에서는 대부분 한국어만 쓰고 한국어로 된 책을 주로 읽어주었다. 


제대로 가르친 적도 없지만 네 살 넘어가던 무렵부터 한국어 책도 곧잘 읽기 시작해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서 아이가 영어로 말을 하면서 자기에게도 영어로 말하라는 거다. 


올 것이 왔다 싶었다. 그래서 준비한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엄마는 한국 사람이고 너도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어로 대화하는 거야.


어린이집에 있는 친구들은 보통 영어 한 가지만 할 수 있는데 온이는 영어도 하고 한국어도 할 수 있지? 그게 정말 어려운 건데 그래서 더 대단한 거야. 


온이는 영어 할 수 있으니까 어린이집에 선생님, 친구들이랑도 대화할 수 있고 한국어 할 수 있으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랑도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잖아. 나중에 사촌언니들 오빠들이 와도 같이 이야기하고 놀 수 있고. 


어떤 언어를 할 수 있으면 그 언어만 하는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데. 


엄마 요즘 아랍어 배우고 있지? 그럼 아랍어만 할 수 있는 사람과도 말할 수 있잖아. 


그리고 온이랑 엄마가 한국말로 하면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듣기 때문에 비밀 이야기도 귓속말로 안 해도 된다? 


“온아 사랑해!” 이렇게 말해도 다른 사람은 못 알아듣는다고.” 


제대로 이해를 한 건지, 엄마의 일장연설이 듣기가 싫은 건지 몰라도 그 이후로 아직까지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방인, 그리고 거기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이주민으로서 어쩌면 계속 당면해야 하는 고민과 긴장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아이들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우리 품을 떠나겠지만, 아이들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를 구분 짓는 경계 혹은 장애물이 언어가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국어(mother tongue)로 아이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싶은, 엄마의 욕심일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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