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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뉘 Sep 07. 2024

정리-버리는 연습 중

-버리는 연습 중-

정리(국어사전)

흐트러지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함     

나는 버리는 것에는 영 소질이 없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사람이다. 작은 물건을 버리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을 들이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은 사람.

핑계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버리려고 하는 순간! 아 이것 나중에 쓸 일이 분명 있을 텐데, 비싼 물건이어서 아까운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이 물건은 추억이 많으며 이건 친구한테 선물 받은 건데 물건이 돈과 추억으로써 지배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정리의 기술 혹은 지혜가 완전히 꽝인 사람이다.

어떤 이들은 작은 공간에서도 사람의 동선과 가구 배치를 잘 고려해서 여유로운 공간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 같은 경우는 절대 작은 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박 수준으로 쌓아 놓는 스타일로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집. 수박 같은 집이었다.

이런 내가 친구 J 집을 방문하고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J 집을 방문했을 때 제일 놀라운 것은 가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흔한 식탁도, 옷도 텔레비전도 없었다. 거실벽 면에 가족사진과 책꽂이에 약간에 책이 있을 뿐. 이곳이 집인가? 호텔인가? 하고 헷갈릴 정도였다. 펜션도 J 집보다는 물건이 많은 듯했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냐고 묻자 J는 미니멀리즘으로 최소한의 물건만 두고 삶을 이어 나간다고 했다.

옷이 몇 벌 있는지, 가방은 몇 개고, 책은 몇 권이나 있고, 그릇은 몇 개인지 파악하면서 산다고 했다. 통장의 액수는 파악하고 살아도 집안의 물건을 파악하고 살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의 수와 양을 체크하면서 산다고 말하는 내 친구가 너무 부럽고,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물건이 여러 개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전제품 큰 가구들만 빼놓으면 우리 집에 한 개만 있는 물건들은 없다. 기본 두세 가지씩 있고, 특히 나의 물건이 세 식구 물건보다 더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느 날부터 집에 들어설 때부터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현관 복도부터 무엇인가 어수선하고 잔뜩 물건이 뒤죽박죽 쌓여 있고 꽤 넓은 복도 집인데도 많은 짐들이 집안에서부터 흘러넘쳐 나와 복도까지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미로 찾기 하듯 집으로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심각하게 말했다.

“우리 세 사람 신발보다 당신 신발이 더 많은 것 알지? 텀블러가 집에 10개가 넘어? 빵도 안 먹는데 토스트 기계는 왜 이리 많아? 문구점 차릴 거야? 한 해 다이어리 한 권이면 되잖아 지금 굴러다니는 다이어리만 10개는 더 본 것 같은데,”

남편이 하는 말이 백번 맞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 물건을 사고 쌓아 놓는 것일까?

그렇다고 정리 정돈이 잘 되어 물건이 제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건 하나 찾으려고 하면 다 끄집어내야 하고, 물건이 많다 보니 어디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고, 옷 같은 것은 가격표조차 떼지 않은 것이 수두룩하며, 뜯어보지 않은 다이어리조차 엄청 많았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찾다가 못 찾고 결국 또 사고, 이것이 계속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생활이었다.

물건을 사는 순간의 소유욕과 희열감을 행복이라고 착각하던 시간 들은 어느 날부터 이런 물건들이 점점 무거운 짐이 되어 나의 정신세계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병임을 인지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쓰레기 더미 집은 아니어도 손님이 올 경우에만 반짝이는 집에서 나 혼자 있어도 반짝이는 집으로 바꾸고 싶었다. 손님이 올 때면 그 순간 집은 스피드 빠름 빠름이다. 무조건 안 보인 곳으로 집어넣자. 무조건.

 손님이 가고 난 후는 물건이 와르르. 이 생활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후, J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J는 나에게 정리가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다.

모든 물건은 자신만의 자리가 있다고 알려주면서 물건을 사용하고 난 후 제 자리에 갖다 놓는 것이 정리의 핵심이라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 귀찮을지 몰라도 사용한 후 바로 제자리에 갖다 두면 모든 것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그리고 공간을 보기 전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라고 했다. 무엇이 자꾸 물건을 사게 하는지 자신에게 답이 있을 거라고 그 답을 찾아야만 정리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친구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나는 집으로 돌아온 후 객관적으로 나의 공간을 들여다보았다. 한참을 멍하니 공간을 보았다. 그제야 공간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였음을, 나의 마음이 문제였음을 알았다.

나는 나를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면서, 울컥해졌다. 무조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져야만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던 미숙한 사람.

세상 모든 것을 다 나 자신에게 주고 싶었던 사람.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나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친구 말대로 물건 사용 후 제자리에 갖다 놓아도 난 대체로 물건이 많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매일 공간을 정해서 버리기로 했다. 오늘은 책상 정리, 오늘은 신발장 정리, 오늘은 옷장 정리, 오늘은 욕실 정리, 오늘은 거실 정리, 오늘은 오늘은......

버리기 시작하면서 선택과 결정을 하기 시작했고 이런 것들은 나를 전과는 다르게 빠르게 변화시켰다. 삶이 가벼워졌다. 가벼워진 공간만큼 몸과 마음이 치유된 느낌이었다.

공간이 바뀌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 공간이 넓어지기 시작하였고, 비워진 공간 안에서 평안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언제인가 이 비워진 공간도 다른 물건으로 가득 채워지는 순간이 오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버릴 것이 물건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나의 마음속 잡음부터 스트레스 불안 모든 감정들을 버리기 시작하였다. 밖에서 느꼈던 모든 감정을 집 안으로 들어오기 전 대문 밖에서 버리기 시작하였다. 오늘 짜증 났던 감정을 버리자. 오늘 불안한 생각을 버리자. 오늘 느꼈던 온갖 감정들을 버리고 나서야 편안해졌고, 삶의 만족도가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집은 세상에서 제일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이다. 이 공간이 쓰레기 더미라면 나는 과연 편안한 게 맞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공간은 곧 그 사람을 말한다. 아무리 겉으로 명품을 치장하고 있어도 쓰레기 집일 경우 마음은 쓰레기 같을 수밖에 없다. 사람과 공간은 절대로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 현재의 내 집은 완벽한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결핍으로 물건을 사고 쌓아 놓고, 버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버리기를 못했던 그 시절보다는 손톱만큼은 나아졌다. 이제는 버릴 줄 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지금도 버리기 연습 중이지만 그리고 여전히 미숙하게 나를 사랑하지만 완벽함과 부족함 그 중간 언저리쯤 나 자신을 놓아두고 열심히 연습 중이다.

모든 물건이 자기만의 자리가 있듯, 이곳이 나의 자리라면 이곳부터 변화를 시작하는 것이 맞다. 내가 지금 앉아 있는 곳, 내가 지금 잠자리 드는 곳,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나의 몸을 깨끗이 정리하다 보면 다른 세계가 보일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주변을 둘러보아라,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꽃밭인가? 쓰레기인가? 혹시라도 쓰레기라면 그렇다면, 물건이든, 정신이든 버리는 연습을 하면 된다. 멈추지 않고.

 혹시라도 이런 힘조차 기운조차 내기 힘들다면 바로 욕실로 가서 간단히 샤워한 후 따뜻한 커피 한잔 손에 들고 창밖을 보기 바란다. 하늘이 너무 맑아서 눈부시든 혹은 비가 하염없이 내리든 커피를 마시면서 한숨을 쉬기 바란다. 버리기에 가장 기본은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에서 비롯함을 당신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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