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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뉘 Sep 19. 2024

만약이라는......

까슬까슬한 햇살이 뺨을 간지럽히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함께 공원에 나섰다. 친구는 어려서부터 아빠한테 자전거를 배워서 자전거로 통학하던 절친이었는데 어찌나 자전거 타는 모습이 자유롭게 행복해 보이는지 친구한테 자전거를 배우고 싶다고 가르쳐 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하여 마련한 시간이었다. 휘청거리는 나의 두 발을 붙잡아주던 친구의 따스한 미소가 생각난다. 자전거 안장에 앉아 허공을 헛발질하던 나는 친구의 손길을 놓치는 순간마다 균형을 잃고 쓰러지곤 했다. “손 놓지 마, 자전거 잡고 있지’를 연발하며 나는 친구에게 무던히도 꽉 잡고 있으라고 말했지만 나는 매번 넘어져 흙 묻은 무릎을 쓸며 일어났다. 나는 기필코 자전거를 타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였다. 친구는 넘어지는 나를 일으켜 세우며

"괜찮아,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면 돼. 넘어지는 거 무서워하며 자전거 못 타"

그때 친구의 말이 마치 넘어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찬 바람과 같았다. 겁에 질린 마음을 다잡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처음에는 두 발이 자꾸 헛돌았지만, 격려와 함께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의 헛발질이 차츰 페달에 적응이 되고 자전거를 타는 순간 나는 진정한 자유의 바람을 느꼈다. 바람 냄새가 마치 나를 미지의 세상으로 이끌어 가는 것만 같았다. 뒤돌아 생각해 보며 그 시절 자전거를 배우는 과정은 마치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같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서툴고 어색했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친구의 따뜻한 손길은 마치 인생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과 같았고, 격려는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스스로 두 발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듯한 벅찬 감동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인생이라는 자전거를 타고 나아가는 데에는 누구나 넘어지고 부딪히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용기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라는 것을.

학창 시절 자전거 타기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친구의 우정과 격려는 지금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따뜻한 온기로 남아 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자전거만 보면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햇살이 쏟아지던 교실 창가에 기대앉아, 친구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까르르 웃음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던 우리들의 수다 삼매경은 지루한 수업 시간을 흥미진진한 드라마로 만들어 주었다.

점심시간, 운동장 벤치에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꿈에 관해 이야기하던 우리는 마치 세상을 다 알고 있는 듯 당당했다. 먼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슴이 벅찼고,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함께 하굣길을 걸으며 손을 맞잡았던 기억은 지금도 나를 웃음 짓게 한다.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을 보며 감탄하고,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그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시험 기간에는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공부했고, 실패를 경험할 때는 서로를 위로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이런 친구가 어느 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휴거 사건 때문이었다.

특정 종교 집단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고 신자들이 하늘로 들려 올라간다는 예언을 바탕으로 일어났다. 이 예언은 많은 신자들을 현혹하였고, 일부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예언된 날을 기다리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던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하늘로 올라가야 하니 공부도 할 필요 없고 학교에도 갈 필요도 없다고 하였다. 나도 얼른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자신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의 나는 이런 사실들을 믿는 친구의 믿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없이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친구의 믿음을 무조건 반대했고 끝내 싸우고 헤어진 상태로 그날을 맞이했다.

그리고 예언된 날이 지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많은 신자가 좌절하고 자살하였다.

나의 친구도 이후 삶을 마감하였다. 내가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날의 모든 감각을 기억한다. 처음 들었던 생각은 미안함이었다. 친구와 나의 믿음이 다를지언정 끝까지 친구 곁에 있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단절과 절교가 아닌 끝까지 친구의 손을 놓지 말아야 해야 했다. 끝까지 친구의 아픔을 이해했어야 했다. 꼴좋다. 내 말이 맞지?라는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지 말았어야 했다. 친구한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었어야 했다. 끝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 주었어야 했다. 어설픈 위로라도 해주어야 했었다. 무방비 상태로 친구를 혼자 남겨 두지 말았어야 했다.

마지막 순간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를 생각하니 친구 곁에 머물러 주지 못한 나 자신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던지

친구를 보내면서 평생 우정 이란 단어를 갖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감하였다.

친구는 나에게 많은 시간을 용기를 주며 곁에 있어 주었는데 나의 미숙한 행동은 친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하니 자책감이 들어 숨이 쉬어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만일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나는 친구에게 꼭 해 주고 싶던 말이 있다.

자전거를 가르쳐 주며 친구가 했던 말들을 꼭 돌려주고 싶다.

친구가 살아 있을 때 두 손을 잡아 주며 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후회스러워 많은 날들을 괴로워했던 시간 들이었다.

그 시간으로 되돌아간다면 나는 꼭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괜찮아,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면 돼. 넘어지는 거 무서워하지 마! 아무것도 아니야 살아만 있다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어 시간이 더디게 가도 내가 네 곁에 꼭 함께할게”

문득 오늘따라 해맑게 웃던 친구의 미소가 유달리 보고 싶은 계절이다.

#만일이라는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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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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