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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뉘 Sep 21. 2024

빗방울만큼의 행복


빗줄기가 창을 때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흐릿한 창밖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는 어떤 모습일지 잠시 상상해 본다.

예전의 나는 비 오는 날이면 왠지 모를 우울감에 휩싸였다. 눅눅한 습기와 흐릿한 세상이 마음마저 축 처지게 했다. 특히 우산을 쓰고 빗길을 걸어야 할 때면 더욱 그랬다. 무거운 우산이 어깨를 짓누르는 듯하고, 빗방울이 옷에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내 마음을 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전 그 사건 이후로 비 내리는 날이 좋아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나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퇴근길은 흥건히 젖은 도로와 함께 왠지 모르게 어수선했다.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우산이 있어서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았지만, 순간 너무 놀랐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빨간색 풍선이었다. 풍선에는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고, 꼬리 부분에는 작은 메모가 달려 있었다.

메모에는 "우리의 첫 키스를 축하해!"라는 다소 엉뚱한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풍선의 주인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어떤 커플이 실수로 풍선을 놓친 것 같았다.

풍선을 손에 든 채 나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혹시 이 풍선의 주인을 만날 수 있을까? 만약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상상으로 주변을 걸어 다녔지만 끝내 풍선 주인은 만날 수가 없었다. 이날 이후로 나는 비 오는 날이 싫지 않았다. 똑같이 내리는 비인데, 왜 누군가는 우울해하고 누군가는 행복해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떤 이에게 비는 쓸쓸함과 고독의 상징이다. 흐릿한 세상처럼 앞날이 보이지 않고, 눅눅한 습기는 마음마저 축 처지게 만든다. 빗소리는 그들의 외로움을 더욱 부각하고, 빗방울은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느껴진다.

반면 어떤 이에게 비는 설렘과 로맨스의 시작이다. 빗소리에 맞춰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창밖을 배경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빗길을 함께 걸으며 우산을 나눠 쓰는 순간은 그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왜 비 오는 날이면 항상 우울했을까? 빗소리에 귀 기울이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때 나는 비가 내리는 날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 오는 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 빗소리를 배경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것. 우산을 쓰고 혼자만의 산책을 즐기는 것.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행복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 나를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비는 자연의 현상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안에 각자의 의미를 부여한다. 비가 내리는 날, 누군가는 슬픔을 느끼고 누군가는 행복을 느낀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가 아니라,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비 오는 날, 나는 더 이상 우울해하지 않는다. 빗방울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만의 세상을 만든다. 비는 나에게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맞춰 나의 마음도 새롭게 피어난다.

이제 비가 오는 날이며 나는 우산을 쓰고 산책한다. 처음에는 습한 날씨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잠시 후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투명한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마치 자연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곡 같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온해진다.

길가의 나무들은 빗방울을 머금고 더욱 싱그러워 보인다. 잎사귀들은 빗방울 무게에 살짝 흔들리며 반짝인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풀잎들이 내는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그 순간 나는 비가 주는 선물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해맑은 날에는 맡을 수 없었던 풀잎들의 향기가 오감을 자극한다.

빗속을 걸으며 나는 많은 생각에 잠긴다.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기도 한다. 빗소리는 나의 마음을 정화해 주고,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

비 오는 날 걸으면서 하는 생각은 생각에 날개가 있어 막 날아다녀서 좋다. 심각하지 않아서 좋다. 생각하고 흩어지기를 반복해서 좋다.

이제 비 오는 날이면 나는 더 이상 우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산을 챙겨 나가 산책을 즐긴다. 빗방울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비 오는 날은 나에게 특별한 선물이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걷는 것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나만의 작은 행복을 찾는 시간 여행의 순간이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은 웅덩이에 비친 나의 모습은 빗줄기에 흔들리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한 편의 판타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잠시 웅덩이를 응시한다. 순간 나는 영화의 여주인공 되어서 이 시간을 걷고 있다. 마음이 몽실몽실 해진다. 떨어지는 빗방울만큼 행복감이 몰려온다. 순간 나무숲 건너 건물들을 올려다본다.

비에 젖은 도시는 평소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빗방울에 젖은 건물들은 더욱 고풍스럽게 느껴졌고, 조명은 빗줄기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빗방울이 굵어지자 투명한 우산 위로 빗소리가 경쾌하게 쏟아진다. 마치 작은 드럼 연주대 위에서 빗방울들이 춤을 추는 듯하다. 촉촉하게 젖은 아스팔트 길을 뒤로하고, 나는 오래된 나무들이 늘어선 흙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무들은 마치 빗줄기에 몸을 맡긴 채 깊은 명상에 빠진 듯하다. 잎사귀들은 빗방울 무게에 잠시 몸을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든다. 그 모습이 마치 빗줄기를 맞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여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발밑에는 낙엽들이 빗물을 머금고 반짝인다. 마치 작은 보석들이 흙길 위에 뿌려진 듯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낙엽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정적을 깨고 나의 존재를 알린다.

우산을 살짝 기울여 하늘을 올려다본다. 빗줄기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하늘은 짙은 회색빛이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과 번잡함을 씻어내려는 듯, 빗줄기는 끊임없이 내려온다.

나무 아래를 걸으며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마음은 평화로워진다. 빗소리와 함께 걷는 이 순간, 나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나무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자, 빗소리와 새소리만이 고요한 정적을 깬다. 눈을 감고 빗소리에 집중해 본다. 마치 자장가를 듣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빗소리가 없다면 이 풍경이 허전하게 느껴질 것 같다.

나무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나는 많은 생각을 한다. 오늘 하루 내가 느꼈던 무수히 많았던 감정들은 하나하나 천천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정화하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를 준다.

무수히 내리는 빗방울만큼 희망을 품고, 용기를 갖고,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 비 오는 날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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