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집 안에는 텅 빈 곳이 생겼다. 주인 없는 엄마의 방문을 열 때마다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온다. 방긋 웃으며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엄마의 미소가 나의 마음을 울린다.
‘좀 더 엄마의 손을 잡아 줄 걸, 좀 더 엄마의 짧은 미소를 한 번이라도 더 볼 걸, 좀 더 내 생활을 줄일걸, 좀 더 좀 더’...... 후회와 미련이 가득한 손으로 엄마의 방문을 열어 본다. 병상에서도 틈틈이 방긋 웃어주던 엄마의 미소가 너무 그립다. 그리움이란 녀석은 아무 때도 예고 없이 닥치는 날벼락같은 것이다. 환하게 웃다가도 나를 시시때때로 울컥하게 만든다. 그리움이 눈물이 되어서 나를 다른 세상에 데려다 놓는다. 마치 그림에서 한 부분을 잘라낸 듯, 완벽했던 일상이 균열을 드러낸다. 그 틈은 처음에는 후회고, 미련이고, 아픔이었다. 엄마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도저히 메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세상은 엄마의 죽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한 사람쯤 죽어 나자빠지더라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아름답고 아무렇지 않게 흘러갔다. 사라지는 건 단 한 사람. 죽은 사람이다. 엄마는 84세라는 시간에서 멈춤었다. 하지만 산 사람은 모든 삶이 흐르듯 나의 시간도 흐르면서 그 틈은 점차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세상과 나와 엄마 사이의 틈!
처음에는 틈을 메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엄마가 즐겨 드시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엄마가 좋아하던 트로트 송대관 님 노래
쨍하면 해 뜰 날 돌아온단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을 나도 모르게 쉴 새 없이 흥얼거리며 엄마와의 추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수록 그리움만 더 쌓여 갔다.
그제야 깨달았다. 틈을 메우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엄마는 영원히 내 곁에 있을 수 없고, 그 빈자리는 영원히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엄마의 부재를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왔다는 것을
엄마의 부재는 여전히 슬프지만, 그 슬픔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져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나에게는 이런 틈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그리움은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나를 더욱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먹먹 감과 무기력을 끌어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의 사랑을 생각한다. 5남매를 품었지만 두 명의 자식을 가슴에 품었고, 남편을 보냈고, 그러면서도 남은 가족들을 위해 세상으로 단 한걸음 발걸음을 옮기셨던 분. 언제나 햇빛을 듬뿍 받고 자라는 나무처럼 늘 햇빛 속에 인생을 데려다 놓으려고 용기를 내셨던 분. 이런 엄마의 삶을 죽음에게 양보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픔과, 슬픔, 때론 먹먹함과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 오지만, 엄마의 노래처럼 쨍하면 해 뜰 날 돌아온단다. 희망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어떻게 이어가며 살아갈지 고민하게 했다. 엄마의 부재를 슬퍼하긴 보다는, 엄마가 남겨준 사랑을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애쓰기보다는 엄마가 가르쳐준 것들을 내 삶에 적용하고, 엄마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진정한 엄마의 사랑을 기억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틈을 통해 나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나 자신을 더욱 깊이 이해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려고 노력 중이다. 공허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듯, 고통 속에서 성장을 발견하듯, 틈은 우리 삶의 일부인 것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이제 틈은 더 이상 공허한 공간이 아니다.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보물 상자이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씨앗을 품은 밭이다. 틈을 통해 피어나는 꽃처럼, 나는 엄마의 사랑을 이어받아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갈 것이다.
말의 영혼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말은 단순히 소리의 집합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담은 그릇이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따라 우리의 말은 달라지고, 그 말은 우리의 행동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