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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뉘 Oct 03. 2024

연필 한 자루, 기억의 조각

연필 한 자루, 기억의 조각

딸아이 방을 청소하다가 책상 위에 예쁜 상자를 보았다. 다가가 상자를 열어보니, 몽당연필들이 한가득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버리려고 했는데 왠지 못 버리고 계속 상자 안에 모아 두었다는 딸의 몽땅 연필.

딸아이에게 잘했다면서 버리려면 엄마한테 버리라고 하면서 아쉬워하는 딸의 얼굴 뒤로 얼른 냉큼 가져왔다.

얼마나 좋던지 꼭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상자 안에 몽땅 연필을 본 순간!

짧아진 심과 까슬까슬한 나무 표면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딸아이의 몽당연필들을 보니 나의 어린 시절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어린 시절 나는 도시가 아닌 첩첩산중 산골짜기에서 살았다. 마을이라 불릴 정도도 아닌 몇 가구가 살았던 곳. 마을로 향하기 위해서는 한 시간이나 산을 내려야 가야만 했던 곳. 당연히 어떤 문명적인 혜택보다는 자연의 일부분으로 시간을 보냈던 시절.

유독 연필과 예쁜 노트를 늘 갈망하던 어린 계집아이.

핑계일지는 몰라도 허기진 결핍이 50이 넘어선 인생에도 문구류만 보면 환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거리 출몰하기 런던모험에서

-연필 한 자루를 향한 열렬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를 소유하는 것이 지극히 바람직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오후의 차를 마시는 시간과 저녁 식사 시간 사이에 런던을 정처 없이 걷고 싶다는 하나의 목적을 품고 핑계를 대는 순간이다.-

라는 글이 있다.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연필 한 자루에 열렬함과 목마름이 컸던 아이였다.

나는 연필 깎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칼을 쥐고 연필을 돌리며 뾰족한 심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마치 작품을 만드는 듯한 즐거움을 주었다. 친구들이 막 자동 연필깎이가 나와 신기해하면 연필을 깎았던 시절에도 나는 늘 칼로 연필을 깎는 것을 좋아했다. 연필을 깎는 행위는 나에게 뭐랄까 의식 같은 것이었다. 일기를 쓸 때나 글을 쓸 때 나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의식!

새로 깎은 연필로 첫 글자를 쓸 때는 마음이 설레었고, 곱게 쓴 글씨를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필은 점점 짧아졌고, 심은 부러지기 일쑤였다. 짧아지는 연필을 볼 때마다. 어떤 희열감을 느꼈던 어린 계집아이. 무엇이 그리도 뿌듯했던지. 몽당연필은 단순히 연필이 닳아 없어진 모습을 넘어, 나의 성장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서툴렀던 글씨가 몽당연필과 함께 점점 발전해 나갔고,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몽당연필 대신 샤프를 사용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몽당연필을 놓지 못했다. 볼펜 뒤로 몽당연필을 끼어 사용할 때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집중력이 높아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몽당연필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끈기와 인내, 그리고 소중함을 쉽게 버려지는 세상에서 몽당연필은 끝까지 사용해야 할 가치가 있는 존재였다. 마치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버리지 않고 간직해야 할 소중한 것들처럼.

지금도 가끔 서랍 속에서 몽당연필을 발견하곤 한다. 낡고 해진 모습이지만, 그 안에는 나의 소중한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몽당연필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음을 되찾고,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

글쓰기를 유독 좋아했고 특히 연필로 끄적이는 것을 즐겼다. 내가 얼마나 연필을 아끼며 사용했는지.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하게 몰려왔다.

딸아이의 몽당연필들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책상에 앉아 좋아하는 연필을 골라 끄적이곤 했다. 비밀 일기를 쓰기도 하고, 소설을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연필은 나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담는 그릇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고, 더 이상 연필을 자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일상생활에 자리 잡으면서 손 글씨를 쓸 일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딸아이의 몽당연필 상자를 보면서 다시 한번 연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연필은 단순한 필기도구를 넘어, 우리의 꿈과 희망을 담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어린 시절 연필을 쥐고 꿈을 향해 나아갔던 나의 모습이 딸아이에게서도 보였다. 딸아이 역시 연필을 통해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서툴고 어설프게 보여도 딸 나름대로 방향을 잡아가며 자기 꿈을 꾸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딸아이의 몽당연필 상자는 나에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주는 소중한 매개체가 되었다. 몽당연필 하나하나에는 딸아이의 성장과 변화가 담겨 있었고, 나는 그것을 통해 딸아이의 마음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버릴 수 없는 그 따뜻한 마음도. 시간도.

앞으로도 딸아이의 몽당연필 상자는 나에게 따뜻한 추억을 선사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딸아이가 언제나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것이다.

#연필한자루

#기억의조각

#브런치스토리

#마음을반짝이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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