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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뉘 Oct 10. 2024

30년 사랑. 애틋함

30년 사랑. 애틋함

어려서부터 한동네에서 자란 우리들은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사실 오누이 감정이 컸다. 많은 나이 차이도 아닌 단 몇 개월의 차이로 오빠 대접을 받기 원하던 남편과 친구로 대하는 선 머슴 같은 나는 오누이처럼 다투고 놀면서 한동네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골목대장이었던 나는 늘 항상 사고뭉치였고, 말썽꾸러기 삐삐 같았지만, 늘 남편과 함께였기에 든든하였다.

 콧물 질질 흐르면 소매 닦기 바빴던 어린 시절부터, 손수건 차고 초등학교 입학 시절.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늘 항상 내 옆에 있어 주었던 사람. 가족 외에 제일 나하고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

과묵하고 얌전한 남편과 다르게 천방지축이었던 나는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날뛰던 시절.

사랑일 것 같지 않은 남자. 사랑일 수가 없던 남자가 어느 날부터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남편을 소개해 달라고 할 때마다

“선비 같은 00 이가 좋아?”

 말 도 없이 과묵하고 재미없는 남편을 친구들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남편을 졸라서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친구들을 만나주라 하며 반협박식으로 부탁했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딱 한 번 만이다.라는 식으로 나의 부탁을 승낙해 주었다.


 우린 그렇게 학창 시절을 둘도 없는 단짝으로 지냈다. 한 살 많은 남편은 늘 나를 챙겨주기에 바빴다. 약속 장소에 내가 아무리 4~5시간 늦더라도 묵묵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남편이 어느 날부터 남자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삐삐나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약속하면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던 시절.

남편의 어질고 묵묵한 모습에서 이 사람이라면 내 인생을 걸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풋풋하고 어설펐던 감정이 훗날 나의 인생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도 모른 체 스무 살 사랑에 눈이 멀어 우린 결혼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했고 겁이 없었다. 앞뒤 안 가리고 사랑에만 집중했던 시절….

그 어떤 것도 아닌 오로지 사람. 단 한 사람만 보고 인생을 걸었다. 재력이니, 능력이니, 가족관계라든지, 어떤 외부적인 조건이 아닌 사람. 사람을 보고 결혼을 하였다.

다른 친구들처럼 여러 사랑을 경험해 보지도 못했고, 이별 감정도 느껴 보지 못했고, 사랑이 떠난 자리에 다른 사랑이 채워지는 순간도 느껴 보지 못했다. 그냥 이성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이 한 사람이 내 인생의 전부였다. 그 흔한 소개팅 한번 못 해보고 결혼하였지만, 확신이 들었던 것 역시 젊음이라는 무모함일지도 모른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이른 나이에 결혼했지만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처럼 이별하지 않고 우린 30년 넘게 무탈하게 한집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30년. 이 시간이 영화의 필름처럼 한순간으로 순간 삭제할 수는 없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면 우린 이 시간을 참 많이 아끼고  서로를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두근거리는 사랑의 자리에 애틋함이 자리를 잡고, 책임감이 자리 잡고, 의리감이 자리 잡고, 다정함이 자리 잡았지만, 지금의 사랑이 더 좋은 이유는 무슨 이유일까!

30년이라는 시간을 이미 살아왔기에 스무 살로 돌아가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확신하게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거야”라고, 선뜻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후회는 아니다.

너무 이른 결혼에 가정을 꾸리고 책임감이라는 막대한 무게감에 짓눌려 둘 다 청춘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둘은 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구나 가질 수 있어도 이 사랑을 아끼고 지켜 나가기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지를. 그 수많은 시간을 서로에게 얼마나 다정했는지를, 애틋한지를 우리 둘은 안다.

사랑이란 이유로 청춘을 즐기지 못한 대신 나는 이른 나이에 빠른 안정감을 찾았고, 인생의 속도도 남달랐다. 30년 강산도 세 번 바뀔 시간. 이 시간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말 묵묵히 지켜준 남편이 고마울 수가 없다. 어느 날 먼저 잠든 남편의 모습이 왜 이리 애처롭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머리카락은 희끗희끗, 얼굴엔 세월의 주름진 흔적이 보이고 고단한 모습으로 새근새근 잠든 남편의 모습에 울컥하는 나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한다. 스무 살 그때의 설렘 대신 애틋함으로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

애틋함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자신을 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지킬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단순한 혈연관계를 넘어, 서로 영혼의 동반자이다. 남편이 있기에 나는 외롭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얻으면서 살아왔다. 남편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틋함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해치는 행동을 감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상대방으로부터 배우는 법이다. 잘못된 선택을 할 수는 있어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은 만들지 않는 법이다.

 애틋함이라는 단어를 품을 때마다 마치 젖은 손으로 종이를 만지는 듯한 촉촉하고 아련한 감정이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넘어,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정과 걱정, 그리고 소중함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감정이다.


사랑이란 녀석은 스무 살의 설렘의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고, 또 다른 감정들이 자리 잡게 한다. 풋풋한 사랑보다는 깊이 있는 이해와 존중이 자리 잡았고, 두근거림보다는 편안함이 자리 잡았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는 함께 웃고 울며 인생의 많은 풍경을 함께했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때로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함께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단순한 연인을 넘어,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이제 스무 살의 설렘은 추억 속에 남겨두고, 남편을 향한 애틋함이 자리 잡았다. 더 이상 그의 모든 것이 새롭지는 않지만, 그의 작은 습관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의 피곤한 얼굴을 보면 안쓰럽고, 그의 작은 성공에 함께 기뻐한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와 존경이다. 함께 걸어온 길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스무 살의 설렘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했지만, 그 자리에는 더욱 깊고 성숙한 사랑이 자리 잡았다.

어쩌면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젊은 날의 열정적인 사랑도 아름답지만, 오랜 시간 함께하며 쌓아온 깊은 신뢰와 애틋함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진정한 어른다운 사랑!

사랑이란 감정을 책임지고 지켜야 것들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우리들이 어쩜 참 사랑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많은 시간 수많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바라봐 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수 많은 만가지 이유로 남편을 사랑 하지만 이 단 한가지로 나를 실망 시킨적이 없기에 난 남편을 존경한다.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 나아갈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며, 인생의 황혼까지 함께 손을 맞잡고 걸어갈 것이다. 스무 살의 설렘은 없지만, 애틋함과 다정함으로 서로를 바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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