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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Nov 03. 2023

신이 내게 주지 않은 한 스푼

프롤로그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요리 역시 마찬가지다. 요리는 재능의 영역이다. 신이 만들 때 한 스푼 넣어줘야 할 수 있는 신의 영역인 셈이다. 물론 재능이 없어도 미친 듯 연습하고 노력하면 얼추 따라 할 수는 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나한테는 이 두 가지 모두 없었다. 요리에 대한 재능을 받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요리에 대한 노력을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나란 사람이 원래 그렇게 타고 태어났다. 청소하는 게 너무 싫어서 울면서 청소기 돌린 적이 있을 정도로 청소, 빨래, 요리를 비롯한 살림에는 전혀 관심도 재능도 없었다.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이렇게 다를까 싶을 정도로 동생은 달랐다. 어려서부터 엄마 옆에 딱 붙어서 뭐라도 하려고 했고, 특히 음식 할 때면 엄마 옆에서 이런저런 참견을 하며 엄마를 귀찮게 했다. 그래서 동생은 함께 자랐어도 자신만의 미각이 발달했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강했고, 아무리 진미라고 해도 자기 입맛에 안 맞으면 절대 먹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만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하기 시작했고 커서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에도 토를 다는 바람에 엄마랑 티격태격하기 일쑤였다.


그에 반해 나는 '미각'자체가 아예 없다. 재료 원형 그대로 보이는 것 말곤(닭발, 개불, 곤충 요리 등) 웬만하면 다 먹는다. 한 마디로 해주는 대로, 주는 대로 아무런 타박 없이 먹는다. 그게 바로 이 나이 먹고도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는 비결이다.(하하. 자랑이다... 참.) 울 엄마는 실험정신(?)이 강해서 냉장고에 남아도는 온갖 반찬들을 섞어서 요상한 요리들을 해줄 때가 있는데 어떤 맛이 나도 그냥 먹는다. 물론 동생은 한 번 먹고 냉장고로 들어간 음식은 거들떠도 안 본다. 


그래서 사실 상한 맛을 잘 모른다... 웬만한 음식들은 그저 목구멍으로 넘겨 하루의 일용할 양식으로 만드는 편이라 상한 맛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예 심한 악취가 나거나 한눈에 보기에도 상한 음식이라면 모를까 약간 맛이 변질되기 시작한 음식들은 놀랍게도 100%의 확률로 알지 못하고 그냥 먹을 때가 많다. 


요리와 맛에 대해 알지 못하니 솔직히 맛집 탐방하는 것에도 흥미가 없다. 줄 서서 먹는 것은 내가 원해서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맛집이라고 해서 가니 와! 맛있다! 하는 거지. 이걸 왜 줄 서서 먹는 건지 알지 못하겠다. 요리와 맛을 모르니 당연히 요리에 쓰이는 재료에 대한 이해도도 적다. 


예전에 동생과 소고기를 먹으러 갔을 때 먹다 말고 동생이 킥킥거려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 "어떤 부위가 맛있는지, 지금 먹고 있는 게 뭔지도 모르지?"라고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자신은 맛있는 부위 먹고 나한테는 질긴 부위를 주는데도 그저 모르고 먹으니 웃은 거였다. 


그렇다. 나는 요리 재료 잘 아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회도 그저 광어, 우럭만 알 뿐 회라고 하니 먹지 그게 무슨 생선이고 무슨 부위인지 알지 못한다.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나는 요리에 노력을 하느니 차라리 굶거나 배달음식, 외식을 한다. 오래전 베트남에 파견근무 나가 3개월 살 때 그곳 직원과 마트에 가서 가장 먼저 샀던 게 빵이었다. 직원이 쌀은 안 사냐고 묻길래 "저 보러 밥을 해 먹으라고요?"라고 되물었던 일화가 있다. 


그리고 3개월 동안 모든 게 다 갖춰져 있던 아파트에서 나는 단 한 번도 밥을 해 먹지 않았다. 가스 불은 오로지 벤탄 시장에서 산 쥐포를 구워 먹을 때와 한국에서 가져 온 라면 끓여 먹을 때만 썼다. 그때 알았다. 나란 사람은 어떤 상황이 와도 요리를 하지 않겠구나. 


엄마 말은 틀렸다. 지금까지 울 엄마는 "사람은 다 닥치면 하게 되어 있어. 안 해서 그렇지. 잘할 거야."라는 말로 나한테 면죄부를 줬었다. 하지만 닥쳐도 안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어딜 가도 나는 자처해서 설거지 담당이 되었다. 설거지가 좋아서 그랬을까. 뭐라도 해야 하니 그나마 가장 쉬운 걸 선택한 셈이다. 


근데 왜 지금에 와서 요리냐고?

나이가 들면서 후회하는 것 3가지가 있는데(3가지만 있는 건 아니다) 첫 번째는 운전하지 않은 것(지금은 할 생각이 없다), 두 번째는 운동하지 않은 것(지금은 살기 위해 하는데 전혀 진전이 없다), 세 번째가 요리를 비롯해 살림에 노력을 쏟지 않은 것이다. 


엄마나 동생 없이 혼자 밥을 먹을 때면 대충 포장음식을 사 오거나 자연스럽게 배달앱을 켜는 내가 싫어졌다. 가족이 평생 내 옆에 있어주는 것도 아닐뿐더러 더 늦기 전에 나를 위해 요리 하는 습관을 들여보려고 한다. 습관이란 무서워서 한 번 형성되면 바꾸기 힘들다. 그만큼 새로운 습관 들이기도 힘들다.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다. 예전에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이것은 요리를 어떻게 하면 잘하는가가 아니라, 요리 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파란만장한 요리사투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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