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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Nov 10. 2023

그 많던 카스텔라는 누가 다 먹었을까

첫 번째 사투

 어린 시절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면 엄마가 간식으로 종종 만들어주던 '카스텔라'였다. 

달콤하고 고소하고 폭신폭신한 그 맛은 유년 시절의 행복한 나른함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 중 하나다.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은 노오란 카스텔라. 방 안에서 뒹굴거리며 맡던 향긋한 카스텔라 냄새는 그리운 추억이다.


가끔 그때의 카스텔라 맛이 생각나서 어떻게 만드냐고 물으면 그냥 돈 내고 사다 먹으라고 했다.(엄마, 이렇게 낭만이 없다고... 엄마 T야? 참, T 맞지...) 오븐도 없던 집에서 어떻게 그렇게 노랗고 맛있는 카스텔라를 만들어줬던 것인지 궁금하다. 


어릴 때만 해도 방문판매가 많았다. 일명 방판으로 불렸는데 방판으로 책도 사고, 방판으로 화장품도 사고. 별의 별것을 다 사던 시절이었다. 엄마도 화장품 대리점 소속으로 방판하러 다녔던 적이 있다. 화장품 가방을 메고 가가호호 다니며 화장품도 팔고 수금도 하고 뷰티 사원이 따라다니며 손님들 마사지도 해주고 그랬다. 


그때는 골목에 누가 사는지 다 알고, 애들도 골목에 나와서 놀고, 낮에는 대문 열어놓고 점심 같이 해 먹고 놀던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영업 사원들이 프라이팬도 팔러 다녔는데 주부들 모아놓고 프라이팬으로 할 수 있는 음식을 가르쳐주며 팔았단다. 프라이팬 팔려고 요리 교실까지 열다니. 대단하다. 


알고 보니 엄마의 카스텔라 만드는 실력은 그때 어깨너머로 배웠던 것이다. 엄마는 센스가 좋고 손재주가 뛰어나서 한 번 보면 머릿속에서 설계도가 그려지는 사람이다. 뜨개질도 따로 도안을 보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보면 다 안다. 내가 사진으로만 보여줘도 뚝딱 만들어 준다. 


그런 손재주를 갖고 태어난 엄마도 살림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시골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자랐다. 그러니까 재능은 못 받았어도 노력은 할 수밖에 없던 거다. 문제는 엄마의 레시피를 배우려고 해도 계량된 것이 아니라 배울 수가 없다는 거다. 대부분 엄마가 말해주는 계량이란 '조금', '이만큼', '한 꼬집' 이런 식이다. 그게 대체 몇 스푼이냐고 물으면 그건 모르겠단다.


그래서 계량 없이 대충 만들어 본 카스텔라는 과연 어땠을까? 




재료: 계란 3개, 밀가루, 소금, 설탕 

집에 플라스틱 볼이 달랑 한 개밖에 없어 노른자는 작은 반찬 넣는 플라스틱 그릇에 했다. 크기 차이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 망할 걸 알기 때문에 계란은 3개만 가져와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시킨다. 

노른자에 설탕을 넣는다. '적당히' 넣으면 된다. 계량컵으로 미니 찻잔을 사용했다. 에스프레소 잔 만하다. 그거 한 컵 넣었다. 소금도 두 꼬집 정도 넣는다. 

우유도 한 컵 부어주고 잘 섞어 준다.

밀가루를 한 컵 정도 체 쳐서 섞어 준다. 우리 집에는 당연히 중력분 밖에 없어서 이걸로 했지만 빵 만들 거면 강력분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리고 다 만들고 보니까 밀가루를 더 넣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거품 내느라 팔 빠져서 사진은 못 찍었지만 노른자에 이 난리를 칠 동안 흰자는 뭘 하느냐?

미친 듯이 거품을 내주면 된다. 자동 거품기 없으면 그냥 본인의 팔이 빠질 때까지 거품을 치면 된다. 그러다가 거품이 쫀쫀해져서 마침내 머리 위로 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면 합격.


Tip

흰자 거품에 밀가루까지 섞어준 노른자를 잘 부어주어야 한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기껏 거품 낸 흰자 거품이 가라앉지 않게 노른자를 살살 섞어줘야 한다. 정말 아기 다루듯이 아래서부터 조심히 섞어줘야 한다는 것! 나는 이때 잘 안 섞은 것 같다. 색상이.... 안 예쁘게 나왔다.


음... 이건 분명히 카스텔라 반죽 맞다. 적당한 크기의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지 않고 열기로 익혀주는 거라 프라이팬을 달군 후, 그 위에 양은 도시락이나 스텐 찜기가 있다면 가장 베스트지만 집에 있는 게 없어서 스텐 삼발이 위에 종이 포일을 깔고 부어줬다. 


프라이팬 뚜껑이 없어 적당히 크기 맞는 다른 프라이팬으로 뚜껑으로 덮어줬다. 약한 불에 은근히 10분 정도 쪄줬는데... 아니다. 15분이 적당하다. 불을 끄고 뚜껑을 덮은 채로 5분쯤 뜸을 들인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주면 짠!

이렇게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카스텔라의 꿈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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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젓가락을 찔러본다. 그 바람에 생긴 인격... 만들어 준 김에 입도 만들어 줬다. 근데 왜 갑자기 이렇게 늙었는지... 쭈글쭈글하다. 마치 인간의 인생과도 같다. 한 순간 부풀어 오르다가 순식간에 사그라들다 못해 쪼그라드는 삶이라니. 그래도 웃고 있으니 웃는 얼굴에 침은 못 뱉겠다.

근데 너무 힘들어 보여서... 더는 못 보겠다.

단칼에 잘랐다. 가는 길이 그리 힘들진 않았을 거다. 그는 좋은 카스텔라였다. 겉은 쭈글거렸어도 안은 촉촉했거든.(너무 촉촉해서 5분 정도 더 찐 건 비밀)

그래도 종이 포일에 잘 눌어붙어 제법 카스텔라 '티'는 났다. 

무슨 자신감으로 엄마한테 이거 엄마가 어렸을 때 해주던 카스텔라랑 꽤 비슷하지 않아 했더니 엄마가 웃어 줬다. 그럼 됐지... 뭐.


맛에 대한 나의 평가는 별점 5점 만점에 2점이다.

★★☆☆☆


맛이 아예 없진 않은데 그렇다고 있지도 않다. 우유 비린 맛도 나는 것 같고, 엄마한테 뭐가 부족하냐고 물어보니 그냥 웃기만 한다. 엄마는 먹어줬지만 동생은 당연히 먹지 않았다. 놀랍게도 만든 카스텔라 대부분을 내가 다 먹어 치웠다. 사실 꽤 맛있었어...(역시 미각이 없는 걸까) 




아쉬운 마음이 들어 플라스틱 볼, 알뜰 주걱, 강력분 밀가루까지 사 와서 다시 만들었다. 거품 치는 게 가장 힘들다. 거품기 하나 살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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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짠!!!

생각보다 근사하게 나왔다. 첫 번째와 비교해서 너무 잘 만든 거 아니야? 나 이러다가 파티시에 되는 거 아닌가? 응? 이번엔 커다란 프라이팬 안에 원형 프라이팬을 넣고 익혔다.

15분 익히고 5분 뜸을 들인 후 열어보니 밑이 약간 탔지만 안에는 잘 익었다. 마치 피자 카스텔라 같다. 

그 맛은?? 존맛탱!!!!!!!!!!!!

그 옛날 엄마가 해준 기억 속 카스텔라 맛과 비슷하다. 이번엔 엄마도 먹어보고 맛있다고 해줬다. 솔직히 2/3는 내가 다 먹은 것 같다. 요리하는 사람들은 질려서 자기가 만든 음식 안 먹는다는데 나는 아니다. 너무 맛있어서 내가 다 먹었다. 


맛에 대한 나의 평가는 별점 5점 만점에 4점이다.

★★★★☆


너무 후한가? 근데 원래 나는 관심과 응원을 해줘야 더 잘하는 사람이라 나라도 나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다만 다음에도 이런 맛을 내리란 보장은 없다. 요리에 있어 계량이 중요한 게 그거 아닌가? 일정한 맛을 내기 위해서. 결국 요리 잘하는 사람이란 맛에 대한 일관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저 '많이', '조금', '이만큼'의 엄마표 계량의 세계에서 조금씩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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