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에는 처음으로 강릉에서 단오를 쇠었다. 1년 전부터 계획한 일이었다. 단오제를 가야겠다고 결심한 건 내가 좋아하는 김혼비 작가가 남편 박태하와 함께 쓴 ‘전국축제자랑’을 읽고 나서였다. 부부는 우리나라 지역 축제 12곳을 다녀오고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 써서 책을 냈다. 서울시 자치구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지역 축제의 이면을 상당 부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 책의 재미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최한다는 축제가 쏟아붓는 예산에 비해 그 경제적 효과를 산출하는 방식이 상당히 모호한데도(방문자 수 산정만 해도 경찰 추정, 주최 측 추정, 구청, 시청 추정이 전부 다르다) 계속 축제를 양산하고 있는 게 의문인 데다, 주민이 주도하는 자생적인 축제라는 건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이고, 대부분 하청업체의 용역으로 이뤄지며, 그나마 열심히 하는 하청 업체에서 갖고 온 새로운 기획들은 공무원 조직을 거치면 그 특유의 조심성과 보수성으로 갈려나가 결국 어디서나 보는 뻔한 축제가 된다는 것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업 담당자가 열약한 환경 속에서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준비해 본들 축제를 축하하러 오신 여러 정치인들과 각종 회장님들(정말 많은 회장님들이 있다. 주민자치위원장, 새마을부녀회장, 통장회장, 자유총연맹회장, 방위협의회장, 청소년지도자협회회장, 어디 어디 노인정 회장, 어느 어느 향우회회장 등등등) 의전에서 작은 실수 하나만 발생하면 능력 없는 직원으로 전락하고, 결국 축제판이라는 게 시장, 구청장, 구의원, 시의원 같은 나라님들이 지역구 주민들과 악수 한 번 더 하게 만들어주는 정치인들 판 깔아주는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축제가 뭐가 재밌다고 책까지 썼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꽤 재밌었다. 축제 내용이 별거 없고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처참해도 그 상황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관점이 마치 블랙코미디 같았다. 지역 축제를 조롱하는 내 마음과 비슷하면서도, 그 안에서 반짝이는 위트와 시니컬한 농담을 떠올리는 게 재미의 포인트였다. 그렇게 낄낄 거리며 읽다 보니 관람자 입장에서 보는 지역축제가 꽤 재밌어 보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내가 지역 축제를 닳고 닳은 공무원의 피곤한 관점으로만 봤던 건 아닐까. 지역 축제에 대한 기억은 근무 인력으로 차출당해 일하느라 소중한 휴일을 빼앗겼다는 억울한 기억밖에 없었다. 한 번도 제대로 즐긴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지역축제 중 한 군데를 가보고 싶었고, 그렇다면 단연, 강릉 단오제였던 것이다.
음력 5월 5일에 세는 단오는 무더운 여름을 맞이하기 전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명절이었다. 임금은 신하에게 단오선이라는 부채를 하사하고, 여자들은 액운을 막기 위해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사람들 수리취떡을 만들어 먹고, 씨름과 그네 타기를 즐겼다. 농경사회에서는 꽤 중요한 행사였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은 단오를 강릉에서는 지역 축제로 승화시켜 유네스코 무형문화재까지 등록하는 데 성공했다. 지역 축제가 이런 거창한 타이틀을 땄다는 것부터 범상치 않은데 더 깊이 들여다보면 축제를 대하는 강릉인들의 진심이 보였다. 우선 정치인들의 지루하고 식상한 인사말씀과 축사가 이어지는 개막식과 폐막식이 없다. 다만 강릉 지역을 돌보는 대관령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신을 맞아들이는 영신제와 신을 보내는 송신제가 있을 뿐이다. 신과 인간이 하나 되는 축제에 걸맞게 온갖 굿이 몇 날며칠 쉬지 않고 이어진다. 그렇다고 요란하게 작두 타고 돼지 피가 난무하는 판타지적 굿이 아닌, 유교제례와 결합한 다소 얌전한 굿이라 관람객 입장에선 김이 빠질 수 있지만, 굿판을 쇼처럼 꾸며 돈을 더 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 고증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더군다나 김혼비의 예전 직장 동료로 고향이 강릉인 사람이 단오를 쇠러 가야 한다면서 연차를 냈다는 말도 진중함을 더했다. 단오제를 빼놓을 수 없는 명절로 여기고 귀향한다는 건 그만큼 지역주민들도 진심이라는 거 아닐까. 주민들이 봉헌한 쌀로 신주를 담그고 신이 깃든 술과 떡을 나눠 먹는다. 그렇다. 강릉 단오제는 하루이틀 후딱 해치우는 양산형 축제가 아니라 장장 8일 동안 이어지는 진짜배기 축제였던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벌써 마음이 기울었지만 결정적으로 내 마음을 이끈 건 신통대길 길놀이였다. 이것은 강릉 시내 중심부의 도로를 막고 21개의 읍, 면, 동 시민들이 모두 쏟아져 나와서 퍼레이드를 선보이는 행사다. 500m 정도 깔짝 걸어놓고 길놀이라고 우기는 여느 다른 축제와 차원이 달랐다. 대략 2.5km의 길을 걸어야 하는데, 이 정도 규모로 하려면 동네 대표단들도 정말 한마음 한뜻으로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만 강릉인들의 마음에 몰입해버리고 말았다. 이 동네 사람들은 이 축제에 진심이구나. 그렇다면 안 볼 수가 없겠군.
단오제의 정확한 일정이 나오길 두고두고 기다렸다. 일정과 세부 프로그램이 뜨자8일로 잡힌 일정 전부를 휴가로 뺄 수 없으니 꼭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심사숙고 끝에 결정했다. 길놀이를 중심으로 3일간의 계획을 짜고, 두어 달 전에 숙소도 미리 예약했다. 직장동료와 상사에게 휴가계획을 알렸을 때, 단오를 쇠러 간다고?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처음엔 좀 멋쩍었지만, 먼저 축제를 다녀온 선구자 김혼비와 그녀가 전한 강릉인들의 진심에 홀려 있던 나는 이내 당당해졌다. 그래요, 나는 (추석도 아닌, 설도 아닌) 단오를 쇠러 갈 거예요! 그리곤 강릉 단오제를 가보지도 않고 그게 얼마나 대단한 축제인지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파하기에 이르렀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단오가 뭐냐고 물었다가, 창포물에 머리를 감겨주고 드라이로 바로 말려준다는 말에 푸훕, 하고 같이 웃다가는 유네스코 유산이란 말에 자못 진지해지더니 재미있는 축제일 거 같다며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 줬다.
이 정도 기대를 갖고 떠나면 막상 가보니 별로였단 말이 나와야 할 것 같지만, 단오제는 기대만큼 멋진 축제였다. 단오장에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모종의 흥분과 열기로 들떠 있었고, 흥겨운 장단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단오장에 들어서자 마자 일단 시원한 창포물에 머리부터 감으면서 벼르고 있던 단오 의식을 해치웠다. 녹차를 우려낸 것 같은 향이 나는 창포물은 한낮의 열기를 잠재웠던 어린 시절의 등목처럼 시원했다. 머리를 감겨주시는 여사님은 처음에는 내 머릿결이 참 곱다고 칭찬해 주시더니, 내가 그렇지 않다고 진심으로 부정하자, 두피 마사지를 해주면서 두상이 예쁘다고 칭찬해 주는 바람에 (이건 맞는 말이어서 진심으로 좋아했다) 나도 여사님도 어쩜 그리 고우시냐며 부끄러운 칭찬 릴레이가 이어졌다. 어쩌면 옛 여인들은 냇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서로의 머리에 창포물을 부어주면서 이렇게 칭찬을 주고받지 않았을까. ‘네 머릿결 참 좋다’, ‘네 피부는 어쩜 그렇게 하얗고 곱니’ 등등 이런 식의 미담을 나누면 당연히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면서 세로토닌이 활성화되고 결국 더 건강하게 더운 날씨를 보낼 수 있었던 거라고 제멋대로 추측해 버렸다. 머리를 감고 나오니 수리취떡과 신주를 공짜로 나눠주고 있다. 입담뿐만 아니라 인심까지 후하다. 크하, 좋다 좋아!
감자전으로 배를 채우고 저녁 8시에 시작하는 신통대길 길놀이를 기다렸다. 길놀이는 대관령국사여성황사에서부터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신의 신위와 신목을 강릉 남대천 단오장에 마련된 임시 가설 제단으로 모셔가는 영신행차 뒤에 이어지지는 대규모 퍼레이드 행사다. 21개 읍·면·동 주민들과 강릉의 기관, 단체, 학교를 포함해 바다 건너 제주도 해녀들까지(?) 참석한다. 장장 2시간 30분 동안 이어지는데 주최 측에서는 이 행렬의 콘셉트를 ‘참가자들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고 정한 것인지 테마도 음악도 그야말로 예측불가 제멋대로였다. 그 카오스 속에서 꽹과리와 태평소가 아드레날린을 쫙 끌어올리고, 장구와 북소리는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전통악기 사이로 전혀 이질감 없이 파고드는 뽕짝 메들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길바닥에서 아무렇지 않게 엉덩이를 흔들고 어깨춤을 쳐도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신들린 꽹과리 연주에 결국 정신줄을 놓고 어깨춤을 추는 나를 보고는 극내향인 남편은 순간 저만치 떨어져서 모른 척을 했다가, 무슨 어깨춤 감염병이 퍼진 것 마냥 옆에 있던 여자애도 흔들고 있고, 다른 쪽에 있던 아줌마들도 마주 보고 춤추는 걸 보고는 공포에 질려 체념했다고 한다.
그리고 감히 미천한 나의 언어로 설명할 수조차 없는 혼돈의 퍼포먼스! 아아, 나는 내가 본걸 10분의 1도 이 글에 옮길 자신이 없다. 먼 옛날 원시의 강원도에서의 수렵생활을 모티브로 한 멧돼지 사냥 퍼포먼스에서는 어설픈 연기를 하는 창을 든 사람들과 멧돼지 인형이 등장하고, 뒤이은 팀은 하얀 깃털이 달린 날개옷과 부리가 달린 탈을 쓰고 날갯짓을 하며 등장한다. 아마 그 마을은 학 관련 전설이 있는 것 같은데 커다란 날개옷이 감당이 안 돼 학처럼 우아하게 걷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게 안타까웠다. 바다 마을이라 그런지 형형색색의 그럴싸한 용 인형이 여러 번 출몰해 그 위용을 드러냈지만, 일출 마을의 특색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주황색 태양 모형은 한쪽이 어설프게 찌그러져 있어 태양인지 호박 보석인지 대체 뭔지 계속 궁금증을 야기했다. 하늘색 빛깔의 전통 유생 의상과 검은 갓을 쓴 할아버지들이 뉘엿뉘엿 걷고 있다가 돌연 턱시도를 입은 할아버지 신사들이 나타나 손을 흔들었다. 엄숙한 분위기를 내뿜는 브라스 밴드가 왼발 오른발 발맞춰 행진하더니 느닷없이 ‘해변으로 가요!’ 음악이 흐르며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 강릉 해수욕장 앞 나이트클럽에 온 것처럼 경박하게 몸을 흔들었다. 주문진읍에서는 불을 밝힌 거대한 오징어잡이 배를 이끌고 나와 관람객들에게 마른오징어를 투척하고, 커피거리에서 나온 바리스타들은 행진하는 수레에서 일개미처럼 정신없이 에스프레소를 추출해서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이 무질서의 아마추어리즘이 기가 막힐 정도로 키치적 예술미를 담고 있어 혹시 주최 측의 기획 의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살짝 들 때쯤 행렬의 끄트머리에 따라오는 중·고등학생쯤 되는 아이의 뿌루퉁한 표정과 어기적거리는 발걸음을 보고는 그 의심을 거두고야 말았다. 아마 행렬의 앞쪽에 서 있는 엄마를 따라온 아이이지 않았을까. 동네 사람들이 다 나오는 행사인데 우리가 아니면 누가 나가겠냐는 극성스러운 엄마의 성화를 못 이겨 이 아이마저 참가해야만 했던, 그러니까 주민들이 이렇게라도 나서지 않으면 안 될 퍼레이드였던 것이다.
이들의 종착지는 도로 끝에 곱게 깔아놓은 레드카펫이다. 오랫동안 걷고, 웃고, 인사하고, 춤추고, 커다란 깃대를 흔들고, 마른오징어를 던지고, 가기 싫단 애들까지 데리고 다니느라 땀에 흠뻑 젖은 사람들이 마지막 힘을 짜내는 곳이다. 행렬의 마지막 팀은 강릉시청 공무원 200명이었다. 한복을 입고 다 함께 ‘강릉시민의 노래’를 합창하더니 2절쯤에서 율동까지 곁들이자 나는 그만 뭉클해져 버리고 말았다. 이 축제의 총괄 실무자 자리는 아마 행정직 6급 승진 자리겠지. 너무 힘들어서 아무도 안 앉으려는 자리여서 이번만 고생하면 승진시켜 주겠다는 조직의 논리에 어쩔 수 없이 영혼을 갈아 넣었겠지. 비단 그 사업 담당자 한 명만 힘들었을까. 모든 시청 부서에서 후원처를 찾고 관련 행사를 분담해 준비했을 것이다. 각 읍·면·동사무소에서는 주민들을 모아서 퍼레이드를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했을 것이다. 동네의 온갖 회장님들을 대접해서 이 많은 주민들을 결집시켰을 것이다. 더구나 최근 지역 축제의 바가지요금 문제라는 변수에 얼마나 골치를 겪었을까. 단오장 먹거리 코너는 감자전 1만 2천 원, 소고기국밥 1만 원, 삼겹살바비큐 4만 원으로 대부분 가격이 합리적이고 통일되어 있었는데, 축제 시간도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이렇게 맞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반대와 난관을 겪었을까. 그들의 고충이 눈앞에 주마등 스치듯 지나가면서 그동안 지역 축제를 무시해 온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고 이들이 열창하는 노래를 함께 하고 싶어 휴대폰으로 ‘강릉시민의 노래’ 가사를 찾아보고 있는데, 200명의 떼창을 뒤에 두고 사람들이 주섬주섬 자리를 뜨길래 무슨 일인가 의아했다. 알고 보니 뒤이어 바로 이어지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한 명당자리를 찾아 건너편 다리로 넘어가기 위해 빨리 자리를 떠난 것이었다. 아아, 나는 더 감동하고 말았다. 불꽃놀이 때문에 관객들이 떠날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마지막 순서를 택했을 공무원들의 희생이라니. 전장에서 동료를 구하기 위해 후방을 맡아주는 숭고한 정신에 그저 감탄만 나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숨은 공로자들의 무대를 나는 홀로 응원했다.
합창이 끝나고 드디어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불꽃은 지상의 흥겨움을 하늘에 있는 신에게 헌정하는 기도 같았다. 지금 신이 깃들어다는 이 도시에서 간절히 소원을 빌어본다. 신이여, 보우하사. 이번 단오제의 주제인 ‘보우하사’가 새삼 기도문의 아멘을 닮았다. 거대한 하늘 아래 지상에 발붙인 나는 한낱 작고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이 계시처럼 다가오고 기도는 점점 숭고해진다. 신이여, 보우하사. 우리를 보호하고 도와주소서. 축제가 끝난 지상의 인간들이 다시 일상을 버틸 수 있도록 지켜주소서. 이 여름의 땀방울이 훗날 노력한 만큼 수확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힘들어도 서로를 믿고 도우며 고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피소서. 그런데 제가 말이죠, 세계평화와 인류애만 기도할 수 있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한낱 세속의 인간인지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제 소원을 말해보자면......
단오제를 마치고 돌아오니, 그러니까 명절에 걸맞은 제의적 행위를 하고 돌아오니 비로소 봄에서 여름을 통과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단오를 신나게 즐기고 돌아오니 본격적으로 무더위를 견딜 기운이 났던 것이다. 떡과 술을 배부르게 먹고, 머리를 정갈하게 감고,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어우러져 신명 나게 어깨춤을 추고, 지상에 내려온 신에게 원 없이 소원을 빌었다. 지금은 잃어버린 명절이지만 나의 옛 조상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했을 여름의 입구. 인간은 부지런히 자신의 몫의 일을 하다가 계절의 문 앞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음 문을 열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런 의례를 통해 자연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신성을 받아들였기에 사람 사이에서 우쭐대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갈 줄 알았다. 명절날마다 다 차려진 차례상앞에서 잘하지도 못하는 절이나 올렸던 나는 처음으로 가장 명절다운 명절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년에도 단오를 쇠러 강릉에 갈 것이다. 이번에는 강릉 시민의 노래를 좀 예습해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