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방을 집어던지 그 꼬마는 어떻게 자랐을까
“나 학교 안 갈래!”
이제 막 초등학교에 압학한 7살의 나는 집으로 돌아와 책가방을 집어 던졌다. 오로라 공주가 그려진 네모났고 빨간 책가방이었다. 책가방은 마치 송아지 코에 코뚜레를 건 것처럼, 망아지 등에 안장을 얹은 것처럼 연약한 어깨를 파고들었다. 학교 다니는 길이 멀고 힘들었다. 지도로 재보니 700m 정도의 거리인데 그 당시 힘들다고 생각했던 게 조금 가소롭긴 하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꽤나 심각했다.
비단 학교 다니기 싫다는 아이의 투정이라고만 치부하기엔 꽤나 의미심장한 인생 사건이었다. 작은 몸에 짊어진 책가방은 매일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운명에 대한 항거였다고 해석하면 과장일까. 왜 학교는 하필이면 ‘매일’ 가야 하는 걸까. 학원은 월수금만 가는데. 학교는 왜 월수금 반이 없지. 힘든 나머지 하루 갔다 하루 쉬는 대안까지 생각했더랬다. 엉뚱한 질문이었겠지만 왜 그렇게 안 하는지 정말 궁금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맞춰 생활하고 학교 친구를 사귀는 일은 고역이었다. 아이들은 금세 친구를 사귀고 팔짱을 끼고 다녔지만 나란 아이는 사교활동만큼은 늘 한 발 느렸다. 하지만 이 같잖은 반항이 먹힐 리가 없었고, 아이가 결석을 하면 큰일 나는 줄만 알았던 당시의 어머니는 나를 꾸역꾸역 학교에 보냈다. 그로부터 12년이나 학교를 다니면서 여러번 받은 개근상장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건 나라는 인간은 조직적 생활을 끔찍이도 싫어한다는 것, 하지만 여기서 끝내 벗어날 수 없다는 무기력이었는데 말이다.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고 외친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때긴 하다. 주입식 교육과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입시경쟁에 대한 비판 의식이 싹텄다. 하지만 여기서 다 나아가, 더 근본으로 파고들어, "학교라는 조직 자체가 과연 인간에게 필요한가"를 묻게 됐다. 친구들과 성적이나 진로, 원만한 교우 관계에 대한 고민을 나눴지만 사회 시스템의 존치 같은 어려운 이야기를 나눌 순 없어 스스로를 외딴 섬처럼 여겼다. 나에게 학교는 피노키오를 삼킨 고래의 뱃속 같았다. 피노키오는 제페토 할아버지를 만나 탈출에 성공했지만 내겐 탈출 동지 따윈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모든 인위적인 제도와 조직을 부정하고 아나키즘을 지향하는 학생이자, 인간의 자유를 갉아먹는 제도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회 시스템을 해체하고 나만의 유토피아를 갈망하는 몽상가였다. 누가 내 속을 알면 뭐 이런 4차원적 이상한 아이가 있나 싶지 않았을까, 싶다.
그 이상한 애는 다행히 생존본능은 발달했다. 쉽게 말해, 눈치는 빨랐다. 학교의 질서와 체계에 복종하는 일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걸 일찍이 깨달았다. 공부를 열심히 해 입시에서 성공하겠다는 독한 마음은 전혀 없었다. 다만 모나지 않고 성실한 아이로 그 연옥 같은 교실에서 살아남고자 했다.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가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듯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고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일, 선생님과 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쌓는 일을 그럭저럭 해냈다. 모범생. 이 타이틀이 있어야 무시와 체벌이 난무하는 교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시 책가방을 던지고 싶었던 고등학생 때, 딱 한 번 궤도 이탈을 감행한 적이 있었다. 학교를 가다가 지하철역에서 내려 한강으로 향했다. 무단 결석이었다. 지겨운 역할극은 더 이상 못하겠고, 이대로 학교를 나가면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될지를 궁리하다가, 탁 트인 곳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싶었다. 하지만 경기도 구시가지에 사는 학생에게 한강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다. 지하철에서 문득,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등교 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에 교복을 입은 애가 학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여겨진다는 걸 눈치챘다. 홀가분하게 떠난 여행길이 갑자기 부담스러워졌다. 이렇게 돌아 다닐거였으면 사복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후회했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꾸역꾸역 목표한 한강 둔치까지 왔지만 교복 입은 애가 처량맞게 혼자 앉아 있자니 역시나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는 기운이 느꼈다. 어쩌면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저 내 안의 검열관이 만든 가상의 시선이 나에게 수치심을 주었다는 게 더 진실에 가까웠을지도. 결국 수치심에 굴복하고 학교로 복귀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이룰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을 잡고 버텼다는 것을. 언제든지 여길 떠날 수 있고, 지금과 다르게 살 수 있다고 나를 속였다. 하지만 그날의 짧은 일탈은 지금 나를 억압하는 체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실감하게 해줬다. 학교를 벗어난다 한들, 또 다른 시선과 억압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게 뻔했다. 좀 튀는 행동을 하면 눈치를 받고 구설수에 오르고 오해받을 것이다. 실제로 다 내던지고 야산으로 도망가서 산다 한들 산림무단침입죄로 나를 관리해야 한다는 정부가 있을 것이고, 외국으로 도망가도 대한민국 국적이 따라올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내 안에 이미 나를 재단하는 편견의 시선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파트리크 쥔스킨트의 소설 속 좀머 씨처럼 끊임없이 걸으며 도망다녀야 하는 꼴이다. 하지만 일생을 죽음으로부터 도망친다는 좀머 씨의 저항은 결국 실패할 게 뻔했다.
내 정체성이 사회와 조직에 맞춰 탈색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사회와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생각이 형성된다면, 온전한 나의 생각이란 것은 어쩌면 유니콘 같은 상상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국 다시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올 수밖에. 지금 나란 존재는 대체 무엇인가. 조직의 한 구성원일뿐인가. 딸, 엄마, 아내, 노동자, 친구, 이웃이라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동안 진짜 나는 누구인가. 부여된 역할은 때론 가면을 쓸 것을 요구한다. 가면 속에는 얼굴은 책가방을 던졌던 그때 그 아이 얼굴인 채로 남아있다. 여전히 책가방을 벗어던질 수 있다는 허상 같은 자유를 꿈꾸며 산다는 게 스스로 가여운 순간이 찾아온다.
한 번뿐인 생을 사랑하며 살고자 하는 욕구는 이렇게 탈색되는 자아를 내버려둘 수 없다. 조직의 한 구성원이지만, 한발짝 떨어져 보면 결국 허상의 실체인 조직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도록 생각의 칼날을 매일 벼린다.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 당연한 일이라고 넘어갔던 일에 의문을 갖는 것.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잠깐 멈추고 다시 생각해 보는 것. 지금 내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거듭해서 검증하는 것. 이 생각들이 오늘의 나를 버텨내게 한다. 생각의 우물에서 길어낸 문장들을 차분히 적으며 불안한 감정을 식힌다. 나는 매일 언덕 위로 커다란 돌을 굴려 올려야 했던 시시포스에게,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종이와 펜을 건내며 버텨보자고 한다. 무뎌지지 않게 벼리고 벼린 칼날로 썰어낸 사유의 문장이 나의 궤도를 만들었다. 이탈이란 단어가 길을 벗어난다는 뜻이라면, 자기 길을 스스로 만드는 아웃사이더에게 더 이상의 이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