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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입신고

by 김나현 Aug 29. 2020


동 주민센터 민원 창구에 앉아 있으면서 가장 곤란할 순간은 민원인들이 편법 또는 위법을 상담하려고 할 때다. 그중 가장 많은 질문이 위장 전입, 즉, 실제로 거주하지 않는 곳에 주소를 옮겨 놓는 방법을 묻는 경우다. 그게 불법인 줄 알지만 남들도 다 하니까 나도 하겠다는 사람이 가장 많은 거 같고, 그게 정말 잘못인 줄 모르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정부의 주요 장, 그러니까 장관 청문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골 질문이 위장전입 아닌가. 위장 전입을 질책하고, 그걸 해명하는 과정이 방송으로 생중계되지만 실제 전입 업무를 처리하는 담당자 체감으로는 사람들에게 가짜 전입은 진짜 ‘일도 아닌’ 일이다.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은 아파트에서 가족 간 세대 분리. 이는 업무 편람에 너무 명백하게 나와 있는 사항이다. 가족은 한 세대로 보기 때문에 한 세대가 사는 주거 형태인 아파트에서는 세대 분리가 불가능하다. 그러면 이렇게 되묻는다. 그럼 아직 결혼하지 않은 우리 애는 어떻게 청약을 하나요? 대부분의 세대 분리의 목적은 청약, 세금 문제이다. 하지만 어떤 사정이건 간에 주민등록법에 따라 업무 처리를 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안 된다’는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할 뿐이다.

 * 현행 주민등록 업무 지침에 따라 한 주소지에서 가족 간 세대 분리가 가능한 예외 사유는 해외 거주, 파산 등의 경우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가죽 구성원을 다른 사람 집에 주소를 옮겨 놓는 방법을 선택한다. 이러니 다른 데 주소만 옮겨놓는 경우, 허위 전입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됐다. 얼마나 만연해 있냐면 심지어 이런 민원 상담 전화까지 받았다. “제가 허위 전입을 하려고 하는데요, 친척네 집으로 주소만 옮겨 놓으려 하거든요.” “그러시면 안 됩니다. 본인이 실제 사는 곳에 전입신고를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안내를 하면서 전화기 너머의 사람이 앳된 목소리인걸 봐서 아직 철이 없어 공무원에게 ‘허위’라는 무시무시한 어휘를 선택해서 말하는 게 얼마나 곤란한 일인지를 몰라서 그런 거라 생각하고 싶다. 한숨이 나온다. 사는 게 어려운 세상이다. 내가 사는 곳에 주소를 신고하는 게 맞는데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가며 가짜로 신고해야 더 이득을 볼 수 있는 세상인 건가.     


 이 문제에 대한 내 해결책은 세대, 세대주 개념을 없애버리는 거다. 파격적으로. 세대주에게만 청약 자격을 주니까 가족을 찢어서 다 세대주로 만들려고 하니, 아예 세대주 개념을 없애버리는 거다. 그렇기 하려면 먼저 세대 개념부터 없어져야 한다. 이번 정부 재난 지원금 줄 때로 세대의 개념을 적용해 세대주에게 돈을 줘버리니 별별 문제들이 생겼다. 사이가 좋지 않은 가족은 세대주인 아빠 카드로 재난 지원금이 들어간 게 불만이어서 내 몫을 따로 달라고 민원을 냈다. 이혼 소송 중인 가족도 한 세대로 묶여 버리니 이의신청을 해서 따로 받아내는 수고를 해야 했다. 그러니 ‘세대’라는 개념을 없애고 개인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주소를 신고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거다. 내가 알기론 오래전부터 현장 공무원들이 이런 제안을 해왔고 행자부에서는 가족 간 세대분리 불가로 민원이 넘치다 보니 재작년부터 주민등록법 교육에서 가족 간 세대 분리가 가능한 방향으로 제도 개선 방향을 잡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지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니,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바꿔도 그것 나름의 틈새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게 제도다. 그 안에서 개인은 머리를 써가며 이득을 취하는 방식을 선택하려 할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부하고 머리 쓰는 것까지 뭐라 하고 싶지 않다. 그건 자연스러운 욕망이니까. 다만, 그 방법을 그 제도를 집행하는 공무원과 상담하지 않는 눈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어제도 전입신고로 뭘 하려는 건지 진짜 속내를 숨기고 떠보는 질문만 하는 한 민원인은 앵무새처럼 실제 사는 곳에다 신고해야 한다고 원칙을 반복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 거 참 답답하네. 거기서 그 일 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다 알 거 아니여. 그러니까 내가 여기로 전화해야 물어보는 거지. 그걸 어디 가서 물어봐.” 눈치 없는 사람이 잘못된 건지, 이 제도가 잘못된 건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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