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직원 이야기
작성일 2024년 3월 12일
위 둘 중 누가 적임자로 보이나요?ㅎㅎ 이게 바로 제 마음
공석인 매니저를 뽑으려고 세 명의 고배를 마시고 있던 중, 든든한 회계 직원이 그만둔다는 얘기를 듣고 좌절을 하면 모든게 무너진다는 현실을 깨닫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회계 직원을 뽑기로 했다.
남은 시간은 약 한 달, 회계 직원을 먼저 뽑아서 인수인계를 해 놓고, 다시 매니저를 뽑아야 한다. 몇 명의 회계와 매니저 직원을 같이 면접을 보았다.
수없이 면접을 보면서, 나름 사람에 대해 그리고 다른 회사의 시스템, 환경등 많은 것을 배우면서 내 안에 데이터가 축적되고 정리되는 것을 본다. 그럼에도 경험이 쌓여가도 그 사람이 정말 우리 회사에 잘 맞고, 잘 할 수 있을지는 이력서를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이름은 다낙.
면접이 시작되었다. 이력서를 훑어보고 있는데, 이 직원이 웃으면서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최선을 다할게요." 그러는 것이다. 그 모습에서 "어? 이제까지 수없는 면접을 보면서 이렇게 얘기했던 직원이 있었나?"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시작되었다. 외국인 사장과 함께 작은 피트니스 센터에서 회계 일을 했다고 한다. 대화 가운데 호기심 가득하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고 순수한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예산 규모가 작고 회계 시스템을 써보지 않은 것이 걸렸지만 젊고 배우려고 하는 의지, 기본 이상은 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의 몹쓸 예감을 다시 의지하며 채용을 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회계 직원을 빨리 뽑게 되어 불행중 다행이라 여기며 회계 인수인계는 기존 직원에게 맡기고 나는 매니저 일에 몰두했다. 회사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그동안 회사 주인으로서의 태만과 부주의를 깊이 반성하며 여러가지 문제를 발견하며 해결책을 찾는 시간들을 정신없이 치열하게 보냈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임을 확실히 느꼈다.
매니저를 뽑아서 한계에 부딪혀 분노와 한숨을 뿜어대다가 회계가 또 그만둔다고 하니 갑자기 차분 모드로 정신을 가다듬으며 차근차근 생존모드로 돌아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회계 직원이 구해져서 갑자기 이전보다 더 깊은 안도감과 여유를 갖게 되었는데 이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기준점이 어디냐에 따라 스트레스와 만족을 얻는 지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매니저의 부재 속에 내가 홀로 모든 회사의 상황을 돌아보면서, 이 시간이 나에게 너무나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동안 매니저가 홀로 일을 하면서 느꼈을 부담과 어려움, 막막함, 때로는 갈 길을 몰라 무료하고 나태하게 지냈을 낭비된 시간을 오롯이 느끼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매니저를 교육하기 위한 핵심 내용을 만들어가는 시간이라고 느끼며 감사했다.
매순간 직원들이 잘못 하고 있는 부분들을 지적하고 메모하면서 머릿속에서 매뉴얼을 정리해가고 직원 미팅 시간에 공지했다. 서류 양식도 더 실용적으로 만들고 내부 메신저 그룹을 좀 더 다양화해서 종류별 공유 내용을 세분화했다.
기존 회계 직원에게 인수인계를 일임을 하고 나는 상대적으로 편한 마음으로 매니저의 일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새 회계 직원을 스케치 해나갔고 내 스케치 속도나 내용이 더욱 빠르고 업그레이드 되는 것을 느꼈다.
첫째날, 기존 직원 리소가 회사 업무의 핵심내용을 인수인계를 했다. 리소는 전문가답게 엄청 빠르고 간결하게 업무에 대해 설명했고 나는 내심 경험이 적은 새로운 직원이 이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과 의심, 바램의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다음날 아침.
새 직원 다낙은 너무 초췌한 모습으로 출근을 했는데 다른 사람인줄 알고 깜짝 놀랠 정도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몸이 아프다고 했다. 약을 안먹었다고 해서 약을 챙겨줬다. 점심 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 쉬는데, 많이 아픈것 같은데 이 정도로 아픈데 조퇴를 하지 않고 버티는 모습을 보면서 이 직원의 내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틀, 삼일을 엄청 아프고 초췌한 모습으로 꿋꿋이 잘 버티며 일을 배우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또 다른 반전이 있었는데, 일이 많은데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같이 칼퇴를 하더라. 그러려니 하면서 어느덧 3주의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기존 회계 직원, 리소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인수인계를 다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새 직원 다낙이 자기 업무가 많아서 뜬금없이 월말보고를 못하겠다고 한다. 세무사를 시키면 얼마밖에 안든다고 하는데, 그 금액은 자기 월급의 반 정도의 금액이었다. 내부 직원이 하루 이틀이면 할 수 있는 월말 보고를 월급의 반을 추가로 더 주고 회사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는 외부 세무사에 맡길 사장이 어디 있을까?
기가 막혔다. 매일같이 칼퇴근을 하면서 자기 업무가 많아서 월별보고를 못하겠고, 돈은 얼마밖에 안하니 외부 세무사한테 맡기라고? 모든 업무가 처음인데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는 온데간데 없어보이고 말하는게 너무 당돌하다 싶었다. 게다가 오늘은 기존 직원 리소의 마지막 날인데.
급히 새 회계 직원을 미팅룸으로 불러서 얘기를 했다.
"솔직히 내가 너를 처음에 좋게 보았고 아픈데도 꿋꿋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잘 하겠구나 싶었어. 그런데 매일같이 칼퇴근을 하면서 일이 많아서 다 못하겠다고 다른 회사에 일을 맡기라는 것은 내가 이해하기가 어렵다. 우리 회사에서 하는 일이 처음해보는 거라서 시간이 필요할텐데 이제까지 이런 직원은 처음이야. 우리는 월별보고를 할 수 있는 직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너가 이 일을 할 수 없다면 난 다른 직원을 뽑아야 할 것 같아. 생각해 보고 오늘 결정해주렴."
나는 또다시 수렁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번에도 아니구나, 다시 회계 직원을 뽑아야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윗층 내 방 침대에 쓰러졌다.
곧 다낙이 문자가 왔다. 사실은 자기가 투잡을 하고 있어서 칼퇴를 했다고 하면서 일을 하면 월별보고를 하겠다고 했다.
누워서 우리 회사 업무를 봐주는 세무사 대표에게 문자를 보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한가지 여쭤볼게 있는데, 투잡을 하는 직원이 있다면 허락하실건지요?"
바로 답이 왔다.
"안녕하세요. 일을 잘 하면 괜찮다고 봅니다. 자기 일을 다 끝내고 가는지 보세요."
그래서 다시 미팅룸으로 다낙을 불러서 이야기를 했다.
"이런 이야기는 네가 미리 처음부터 허락을 구했어야 했고, 대부분의 회사는 투잡을 허용하지 않는거 너도 알지? 우리 회사도 투잡을 허용하지 않아. 하지만 오늘이 리소의 마지막날이고 내가 당장 내일부터 새로운 직원을 뽑을수가 없어서, 일단 허락을 할게. 내가 약속하는 것은, 네가 칼퇴를 할 수 있도록 일을 잘 분배하고 네 일을 도와줄게. 지금 하는 일이 처음에는 잘 모르니까 시간이 걸려도 나중에는 빨리 쉽게 할 수 있을거야. 다만 네가 이렇게 일하면서 아침에 자주 늦거나 같은 실수가 반복되거나 일을 끝마치지 못하면 우리 회사에서는 일을 더 할 수 없을거야. 근데 이제야 네가 왜 칼퇴를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고 나도 예전에 한국에서 일 할 때 투잡을 해서 너의 생활을 이해하고 인간적으로는 응원하지만 사장으로서의 내 입장과 기준을 너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어."
내 말에 다낙은 동의를 했고 고맙다고 하며 일어섰다.
휴... 이렇게 또 급한 불을 끄고 새로운 회계 직원을 데리고 살림을 꾸려가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