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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느 Nov 27. 2023

Day 1

나는 다전입니다 (1)

1:17:26

7’00’’/KM

10.5KM


페이스, 페이스를 되찾아야 해. 다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1시간 동안 달린 경로가 노란 형광색 선으로 나타났다. 그 아래로 큼직한 크기의 숫자들이 나열돼 있었다. 그것은 다전의 달리기 속도를 뜻했다. 러닝 앱을 통해 측정한 평균 속도는 1km당 7분. 일반인의 체력으로써는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다. 물론 다전도 그걸 알았다. 하지만 지난주보다 숫자의 크기가 작아지질 않았다는 사실이 언짢았다.


자꾸만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다전은 양손을 무릎에 얹고 허리를 살짝 굽혔다. 트랙 위에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러면 순식간에 종아리로 피로가 몰려 다리가 뻣뻣하게 뭉칠 터였다. 집으로 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돌아가는 경로는 계산하지 않고 무작정 달린 탓이었다. 


아, 씨. 진짜 개 힘드네. 목을 따라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다전이 중얼거렸다. 오늘 저녁을 너무 무겁게 먹었나. 혹시라도 숫자를 잘못 본 건 아닐지 하는 기대감으로 핸드폰 화면을 다시 바라보았으나, 기록은 그대로였다. 아오, 모르겠다! 어두컴컴한 트랙 위에서 홀로 밝게 빛나던 화면이 이내 툭, 꺼졌다. 다전은 굽혔던 허리를 폈다.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겠다고 전력 질주한 탓일까. 침을 삼킬 때마다 어딘가 속에서 녹슨 쇠 특유의 냄새가 올라왔다. 그래도 숨은 어느 정도 고르게 쉴 수 있게 됐다. 호흡이 안정적으로 돌아오니 마냥 고통스러웠던 감정은 사라지고, 앞으로 어떻게 달리면 좋을지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다전은 천천히, 그리고 크게 팔로 원을 그리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목표로 삼은 10km를 뛴 것까진 좋았으나, 기록이 나아지진 않았다. 밥을 먹었기 때문에 몸이 무거웠다는 건 스스로 생각해도 핑계였다. 저녁을 먹고 뛰었다면 더더욱 힘이 나야지.


속도를 더욱 내려면 어떡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지난주의 나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도대체 무얼 해야. 팔을 돌리고 손목을 돌리는 스트레칭으로 넘어갈 때쯤, 그러니까 별생각 없이 몸을 풀어주자, 낮의 일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가벼운 준비운동으로 몸을 실컷 풀고 대기선에 섰을 때, 출발을 위해 몸을 살짝 낮췄을 때, 그제야 풀어진 운동화 끈을 발견한 것처럼 예상치 못하게 자신을 당황케 하고 마는 유형의 것이었다. 손목과 발목을 동시에 돌리던 다전의 행동이 느릿해졌다. 김 팀장이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그의 말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을 떨치려고 애썼다. 지나갑니다! 트랙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다전의 옆으로 러닝 크루 한 무리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들이 지나가면서 만들어 낸 바람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팀장의 목소리도 그와 함께 흩어졌다. 고요한 사위를 느끼며 다전은 스트레칭을 마저 해냈고, 집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대로변을 따라 심어진 가로수들이 바람결에 따라 흔들렸다. 무성한 잎과 가지가 이리저리 날리는 모습을 보며 걷다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제멋대로 흔들리는 나무였다면, 차라리. 나를 가만히 뒀을까. 아니면 더욱 쥐고 비틀었을까.


(7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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