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선 Jul 06. 2022

명태 대신 오이를 말렸더니

밥도둑이 탄생했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요리를 못하려야 못할 수가 없는 세상. 검색창에 뭐 뭐 '만드는 법'이라  입력하기만 하면 다양한 조리법들이 줄줄이 올라와 있다. 아예 동영상까지 친절하게 소개하는 곳도 있으니 이 보다 더 편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웬일인지 요리를 위해 동영상을 찾아까지 보는 편은 아니다. 때마침 동생이 가져다준 싱싱한 오이 한 박스는 옷걸이에 옷이 아닌 오이가 걸린 다소 특이한 비주얼의 영상 앞으로 나를 안내해줬을 뿐. 이 요리의 시작은 순전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뭐지? 오이를 옷걸이에 걸어?' 덕장에 대롱대롱 명태의 코를 꿰어 말리는 건 봤어도 이런 식으로 오이를 대하는 건 처음 보았다. 대략 샘 네일을 보니 그 맛도 충분히 짐작되는 아는 맛이다. 내 비록 지금 현재는 갱년기(?)에 들어 '귀차니스트 비건의 레시피북'이라는 제목이 자연스레 나올 정도이지만, 살림 경력 수십 년 차이기에 딱 보면 안다. 맛이 있을지 없을지. 그나저나 요리하기가 귀찮아진 상태를 다름 아닌 노화 탓이라 하려니 왠지 좀 부끄럽고 억울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하여 뜬금없지만 '시몬느 드 보부아르'라면 어땠을까 떠올려보기로 한다.

서재에서의 시몬느 드 보브아르


학문으로서 페미니즘의 성서라 할 수 있는 《제2의 성(Le deuxième sexe)》 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을 새삼 곰곰이 들여다보니 요리에 염증이 나기 시작하는 내 의식의 흐름이 단순히 '게을러져서'라는 것과는 다른  해석도 가능해진다.  짐작컨데 보브아르라면 집필과 읽는 것 이외의 것에 자기 시간을 쓰는 일을 무가치하게 여겼을 것 같다. 주부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을 양위하는 일은 눈물겹도록 많은 노동이 동반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물론 작가로서의 시간만을 살았다 해서 지금과 달리 촉망받는 작가로 시인으로 존재했을 거라는 확신 또한 없지만 말이다.


가정을 지켜내는 일이 여성의 본능이자 특질이라 여기도록 주입된 사회 문화적 환경은 여성 작가가 노동을 회피하는 것에 종종 죄의식을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무명, 유명을 떠나 작가로서의 길을 선택한 여성 작가라면 본능적으로 창작의 뮤즈를 자신의 가족만큼이나 소중히 여길 것이다. 요리 얘기하다가 시몬느 드 보부아르 썰을 소환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창작자'로서의 삶만을 살고 싶다는 소망이기도 하다.


예전 같으면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일말의 망설임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가족을 위한 삶이 인생의 최대 가치이며 목표가 아니겠냐며 사회가 원하는 착한 결론(?)을 내리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이걸 두고 요리와 살림이 하기 싫은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냐고 놀려도 굳이 아니라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이렇게 또 한바탕 삼천포로 빠졌다가 본론으로 돌아온다.



결론은 정말이지 너어무 맛있는 간장 절임 오이지가 되더라는 얘기다. 레시피도 아주 간단하다. 하여 이번엔 친절하게 레시피도 소개해보기로 한다. 오이를 널어 말리다 어망과 날카로운 어구에 코가 꿰어 건조되던 명태를 생각했다. 명태의 눈 속에 바다가 보인다고 어느 시인의 시에서 던가 읽은 기억도 난다. 인간에게 잡아 먹히기 위해서의 물고기가 아닌 물살이로서의 존재로 이해했다면 죽은 명태 눈 속에서 바다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는 시인의 눈 속에 있을 것이고, 식용 물고기로서의 명태 눈 속에는 '고통' 만이 존재했을 거라는 게 비건인 내 생각이다. 내 감정 말고 레시피만 소개하고 싶었는데 이번 편은 살짝 어긋난 것 같다. 하지만 뭐 어쩌랴. 내 감정이 물결쳐 누군가를 아프게 한 게 아니라면 여기 이렇게 풀어놓은 들 죄가 될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 이렇게 오늘 하루도 잘 살면 그뿐이지 이 세계를 무사히 건너갈 별 다른 방법이 없지 않겠는가.


       <반건조 간장 오이지 레시피>


1)  오이 10개~15개를 깨끗이 씻어 길게 열십자로 칼집을 내어 굻은 소금 뿌려 2시간가량 절인다.

2) 잘 절여진 오이를 흐르는 물에 슬쩍 헹구어 체에 건져 어느 정도 물기를 빼놓는다.

3) 자 이제 깨끗이 씻은 옷걸이에 물기 빠진 오이를 하나씩 척 척 걸치듯 넌다.(약간 재미있다)

4) 생각보다 오이의 무게가 묵직한데 놀라지만 웬만큼 바람 통하는 곳에 걸어놓는다. (바닥에 물이 떨어질 수 있는데 이걸 감안해 적절히 조치를 해야 한다)

5) 하루 지난 후 물기 날아간 오이들을 저장할 통에 잘라 담은 후 간장물을 붓는다(3등분이 먹기 좋다)

6) 간장 물은 위의 오이 기준으로 진간장 2컵, 설탕 1컵, 식초 1컵, 맛술 1컵으로 해 잘 섞어서 쓰면 된다.

7) 양파를 잘라서 절인 오이 담고 남는 공간에 채워 넣으면 시각적으로도 맛도 좋다.

8) 이 요리법의 본래 영상에는 붉은 고추와 마늘 등을 넣기도 하던데 나는 최소한의 양파를 사용했는데 깔끔하고 좋았다. (양파는 장아찌용 어린 양파를 사용했다)


왼쪽 : 세탁소에서 온 옷걸이에 오이를 끼우는데 생각보다 무겁다. 오른 쪽 : 하루저녁 지나 꾸덕해진 오이를 알맞게 잘라 그릇에 담고 간장을 붓기만 하면 된다.




작가의 이전글 참는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