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미소를 닮고 싶다
새벽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이면 떨어진 참파카 꽃잎이 흐드러진 길을 걸었다.
남국의 산책길은 충분히 향기로웠다. 나는 모자를 벗어 떨어진 꽃송이들을 주워 담았다. 어느 부지런한 빗질보다 내 발길이 여기 먼저 도착한 게 얼마나 다행인가. 혹시 꽃잎이 상하기라도 할까 봐, 저도 모르게 살뜰해지는 손길이었다.
상아빛과 연 분홍빛을 띤 꽃잎의 두께는 목련과 비슷했고, 꽃송이는 그보다 작아 보였다. 나는 그 향기로운 적요의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
그 꽃나무 아래를 지날 때면 신이 뿌려준 향수의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 들곤 했다.
영원하길 바라는 순간일수록 금세 사라질 걸 잘 알기에 나는 최대한 그 순간에 머물러 있고 싶었다. 코에 바짝 대어 향기를 맡다가, 머리에도 꽃아 보았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버릇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나는 늘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혼자서 잘 노는 사람.
샛노란 은행잎이며, 붉은 단풍잎이며, 떨어져 나뒹구는 가을의 흔적들을 밟고 지나가기가 싫은 사람이었지. 떨어진 잎들이 밟힐 때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람, 쓸데없이 예민한 그런 사람 말이다.
우수수 떨어진 참파카 꽃송이 중 하나를 옆머리에 꽃아도 보았다. 테라스 난간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어쩜 한결같이 그 꽃들은 그 나무에서 떨어진 이후로도 오래오래 향기로웠다.
떨어진 참파카 꽃잎이 다 스러질 때까지 나는 버리지 않았다. 소멸의 순간까지 아름다운 영혼으로 존재했던 꽃잎의 시간을 나는 지켜보았다.
어슬렁거리기로 작정한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로운 시간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내게 주어진 여행자의 시간 중 반이 지나갔다. 어디까지나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