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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Nov 21. 2023

바틱(Batik)을 품어온 뜻

'아름다움'을 이길 수는 없다.

  우붓의 몽키 포레스트 거리는 일반적인 관광지의 상가들과는 조금은 다른 분위기의 상점들이 섞여있는 게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아티스트이자 주인일 것 같은 이가 그렸음 직해 보이는 독특한 분위기의 그림들, 직접 문양을 그려 넣은 티셔츠들, 조각상들 같은 거 말이다. 나처럼 어슬렁거리기로 작정한 여행자가 그런 곳을 지나쳐 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낮의 태양은 뜨거웠지만 가끔씩 쏟아지는 스콜은 더위를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그 거리에서 발견한  작은 코코넛 아이스크림가게에 들러 비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에 펄럭이는 바틱 천들을 보았다. 그것을 보자 '저것들 만큼은 한국에 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닌가. 저 다양한 빛깔과 문양의 천들을 어디에 쓸지 용도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도 희한했다.  가벼운 액세서리도 아니고 아로마 테라피용 향도 아닌 페브릭이라니, 무게가 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그때는 하지 못했다.


   나의 페브릭 사랑(?)은  우붓이 최초가 아니었다. 오래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몇 년간 머물 때에도 비숫한 경험이 있었다. 아직도 소장 중인 그 천을 펼치면 광활한 오색 우주에 별을 뿌려놓은 듯한 신비로운 색감을 자랑한다. 도무지 이걸 어디에 써야 할지 용도를 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비밀은 그 화려함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인도네시아식 '바틱' 기법이란 거였다. 그것을 우붓에 와서야 알아차리게 된 셈이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바틱의 본산지 속으로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다 썩 괜찮은 답 하나를 떠올려본다. 그건 바로 '아름다움을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일 거라는 것이다. 맥락과 논리가 맞지 않는 맥시멀리스트의 핑계라 할지라도 정말이지, 그땐 그런 마음이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바틱 페브릭들의 문양이 비슷해 보이지만 점 하나도 같은 게 없다는 것 또한 맥시멀리스트 여행자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만약 그때 인도네시아 전통 염색기법인 바틱 체험이란 게 있는지 찾아봤다면 좋았을 텐데, 요리와 서핑 프로그램 외에는 정보가 없었다. 하여 좀 더 많은 바틱천들을 보기 위해 선택한 곳은 '우붓 전통 시장'이었다. 호텔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시장에 들어서자, 내 예상대로 수많은 바틱천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침내 나와 인연이 닿은 어느 노점 가게에서 나는 바틱을 털어왔다. 꽤 여러 장을 사 온 것 같은데 정확한 숫자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20장은 족히 넘었으리라.  예상했던 것 보다도 더 더 무거웠다. 당연히 고생길이었다.


  그렇게 공들여 한국으로 들여온 우붓의 바틱천들이 빛을 발한 건  재 오픈 한 '니콜의 흐름 요가 스튜디오'에서였다. 8년을 한 곳에서 운영하던 요가원을 닫고 도시 한 복판, 건물의 작은 공간으로의 이전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마침내 새로 이사한 스튜디오에서의 첫 수련 시간, 나는 이 아름다운 바틱천을 사용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루틴을 만들었다. 70여분의 수련의 맨 마지막 단계인 요가 자세 '사바아사나' 시간이었다. 시간이 흘렀어도 그 수련 시간에 있던 수련생들도 가끔은 기억해 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요가 수련을 안내하는 일은 단순한 행위 이상의 의미를 주는 일이었다. 그 일은 나에게 결코 명예를 주거나, 돈을 벌게 해주진 않았다. 하지만 요가 수련 안내자로 내가 하는 일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 일에 쓰임 받기 위해 우붓의 바틱 천들은 나와 함께 이곳에 왔던 것이었다.

니콜의 흐름 요가 스튜디오의 사바아사나 시간

  그날의 수련에 어울리는 '향과 촛불'을  밝히고 '바틱천을 덮어주는 그 시간'은 수련 안내자로서의 내가 내 수련생들에게 주는 일종의 헌신인 셈이었다. 이기적인 나를 버리고 진심을 담아 나누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도 나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요가수련 안내자로서의 시간 속에서는 조금씩이라도 넓혀지는 그 마음이 소중했다.


  이제는 사진 속에서만 남아있는 공간 '니콜의 흐름 요가 스튜디오'를 꺼내서 본다. 최선을 다했기에 여한이 없는 시간이었다. 공간도, 기억도 아름다웠기에 그걸로 충분한 마음이다. 몇 년째 보관 중인 나의 바틱천들이 무사한지 오늘은 살펴봐야겠다.


    




바틱(인도네시아어: Batik)은 보존 염색 기법 중 하나로 왁스에 저항성을 가진 염료의 성질을 이용, 전체 혹은 일부 천을 염색하는 기법을 뜻한다. '찹'(Tjap)이라는 도장과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왁스를 천에 찍어내거나, 점 혹은 선 모양으로 왁스를 천에 그리고 왁스가 칠해지지 않은 나머지 부분을 염색한 다음, 고온의 물로 왁스를 부분적으로 벗겨내어 순차적으로 염색을 진행하는 단계별 염색 공정을 거친다. 바틱을 만드는 전통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 스리랑카, 필리핀, 나이지리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발견되나, 그중 인도네시아의 바틱 공예문화가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특히 인도네시아 자바 섬 지역에서 형성된 바틱 공예 문화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패턴의 다양성, 기법, 제작 품질 측면에서 가장 발전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2009년 10월, 유네스코는 바틱을 무형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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