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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Dec 02. 2023

동물농장 이야기

럼피스킨으로 바라본 농장 동물들의 운명 

  '구제역'에 이어 '럼피스킨'이라는 동물 전염병으로 올해도 수 천마리의 소들이 살처분되었다. 예방을 위해 감염되지 않은 소까지 땅에 묻어버리는 이 방식은 아무리 봐도 야만적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달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인간이 가진 어마어마한 권력은 수많은 생명들을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다. 


  언론을 통해 접한 럼피스킨에 대한 정보는 대략 이러했다. 모기 등 흡혈 곤충에 의해 감염되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감염된 소에서는 고열, 피부 결절(혹) 등이 나타난다. 치사율은 10% 이하지만 감염 시 불임, 우유 생산 감소, 유산 등의 증상이 동반된다고 한다.


  농장 동물들에게는 사형선고와도 다름없을 전염병이 아닐 수 없다. 수천수만의 농장 돼지들에 이어 올해는  럼피스킨으로 수많은 소들이 죽어 나갔다. 하지만 대개 이런 종류의 뉴스는 은폐되거나 나온다고 해도 미미하기 그지없다. 인기 있는 방송 프로그램의 협찬은 대부분 육류 사업자들이 하고 있고, 육류 소비가 보편적 가치로 내세워진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선방 중이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당연한 논리라고 해도 그게 싫어서 비건 라이프를 선택한 나는 불편하다. 


  언 땅을 파헤치는 포클레인의 굉음과 엄습해 오는 죽음의 공포, 비탄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그 생명들의 감정이 너무도 생생하게 짐작이 된다. 이것은 슬픔을 넘어서는 재앙이며, 인과응보를 합리적 가치로 생각하는 나로서는 심히 우려가 되는 업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12/2일 자) 한국일보의 동물복지 전문 기자인 고은경 기자의 칼럼이 보태고 뺄 것도 없는 정확하고도 합리적 논조의 기사이기에 전문 중 일부를  소개해본다.  

  사람들은 럼피스킨에 걸린 소를 치료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소를 치료하는 동안 전파될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크다 고 판단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설사 치료한다고 해도 고기, 우유, 가죽을 얻기 위해 길러진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결국 도축뿐이다. 더욱이 사람들은 럼피스킨에 걸렸던 소가 생산한 고기나 우유 소비를 꺼릴 것인데, 농장주 입장에선 굳이 소들을 치료하고 기를 이유가 없다.
  소들의 운명은 생명의 가치보다는 철저하게 경제적 가치에 의해 결정되고 있었다. 럼피스킨에 걸린 소의 우유 생산이 줄고 불임률이 높아진다는 미디어가 전하는 정보가 시민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회의가 들었다. 경제적 가치가 우선되는 동물이 소뿐일까. 축산물을 얻기 위해 길러지는 농장 동물들의 삶은 모두 그러하다.
  닭은 평균 생후 30일 안팎, 돼지는 150~180일 사이, 소는 18~30개월 사이에 도축된다. 이들은 평균 수명의 10분의 1도 채우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데, 이는 투자 대비 가장 효용이 높을 때로 판단돼서다. 축산법의 돼지 사육면적 기준인 마리당 0.8㎡를 초과한 농장의 모습. 밀집 사육환경에서 가축전염병이 발생할 시 피해를 입는 동물들은 더욱 늘어난다. 빨리 죽는 것도 비참하지만 그들이 처한 공장식 밀집 사육 환경은 더 비참하다.
  산란계는 날개를 펴기는커녕 옆으로 움직이기도 힘든 철창 케이지(닭을 가두어 사육하는 철망으로 된 우리)에 갇힌 채 평생 알을 낳는다. 육계는 24시간 켜진 조명 속에서 잠도 자지 못한다. 낮으로 착각하게 해 사료를 더 먹여 살을 빨리 찌워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엄마 돼지는 새끼를 임신하고 수유하는 동안 스톨이라는 철제 우리에 갇혀 살며, 태어난 새끼들은 무마취로 거세를 당하고 꼬리가 잘린다. 농장 동물 현장 조사를 나가는 동물단체 활동가에 따르면 그 동물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 비참해서, 빨리 안락사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라고 했다.
  오죽하면 그러할까. 태생부터 사람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축산업에서 동물복지는 늘 뒷전으로 밀려있다는 걸 럼피스킨 사태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됐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한국일보 라이프

  『동물농장』은 1945년에 출간된 영미문학의 거장인 조지 오웰의 대표작이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의 정치상황을 풍자한 소설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의인화한 돼지들이 주인공이다. 인간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한 혁명을 일으켰지만 성공한 혁명이 어떻게 변질되는지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문득 소설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지금의 인간과 동물들의 입장이 바뀐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우리 인간이 그렇게 착취의 대상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럴수록 더욱더 불편해지는 마음,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부조리한 동물 사육 시스템을 유지할 것인가. 언제까지 죽일 것인가. 인류가 저지르는 이 학살의 몬도가네가 언제쯤이면 멈추어질 것인가. 럼프스킨 전염병이 돌아 수 천 수 만의 소들이 산 채로 죽임 당하는데, 여전히 육식을 부추기는 이 사회의 현실 앞에 한 없이 어두워지는 오늘의 마음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가 비거니즘을 지향해야 할 합리적인 근거는 무수히 많다. 차고도 넘치는 통계와 근거와 수치들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우리의 눈을 가리는 그것은 무엇일까? 무슨 이유로 왜 그러는 것일까? 이쯤에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죽어가는 농장 동물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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