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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짝 Jun 01. 2024

사느냐, 죽느냐

당신의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조울증 환자의 이야기

(*주의: 이 글은 자살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주제를 불편하게 여기시는 분들은 넘겨주세요.)


이야기 아홉


K군의 깊은 우울증은 쉽게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주로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것도 변함이 없습니다. 점심 무렵에야 잠에서 깨긴 하지만, 눈을 감은 채로 그대로 누워서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에 몸을 맡깁니다. 여전히 반추 사고 때문에 많이 괴로워합니다. 주로 조증 때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부끄러워하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는 패턴입니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K군은 자주 죄책감에 빠지고 우울증은 더 심해집니다. 게다가 만약에 다시 조증 상태가 되기라도 하면, 예전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 행동을 반복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절망스러운 심정이 됩니다. 부끄러움과 후회는 자존감을 더 이상 낮아질 곳이 없을 정도로 바닥까지 내팽개칩니다. 긍정적인 생각의 실마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보니 K군은 지금 온통 부정적인 기분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깊고 캄캄한 내면으로부터 가장 어두운 생각이 스멀스멀 생겨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과거에 자신이 벌인 일을 해결하거나 현재 처한 암울한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뿐입니다. 절벽 끝에 몰린 것 같은 느낌에 압도당한 K군은, 이제 자살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희망을 찾지 못하는 그에게, 자살은 모든 것을 마무리 짓는 최종 해결책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K군도 자살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자살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강제 종료시킬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K군에게 자살은 해결책처럼 ‘느껴지고’ 그 생각에 집착하게 됩니다. 마음이 완전히 지친 그에게는 다만 이 고통을 끝내버릴 하나의 선택지가 간절히 필요할 뿐입니다.


K군은 과거 자해나 자살 시도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고민은 진지합니다. 오랜만에 새로운 생각을 한다는 것이 자살에 관한 것입니다. 침대에 웅크린 채 머릿속으로 죽는 방법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스스로 죽는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죽고 싶은 마음은 진심인데도 실제로 자살을 실행할 일을 상상하면 무섭습니다. 홀로 죽어 있을 자신의 모습도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남아 있어서 정말로 죽고 싶은 것이 맞는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자살에 성공하더라도 되도록 민폐는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 봐도 남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적어도 죽어 있을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는 발견하고, 수습해야 합니다. 그것부터가 민폐입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친구가 마음에 걸립니다. K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이 받을 충격과 슬픔, 자책 등을 떠올리니까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그러다가도 마음의 고통이 그런 생각들을 흐릿하게 만듭니다. 다시 자살하는 여러 가지 실행 방법을 계속 생각해 봅니다. 가능한 방법, 불가능한 방법, 남에게 피해가 많이 가는 방법, 피해를 적게 주는 방법 등등. 기력이 없는 상태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무척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한번 자살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게 됩니다.


스스로 죽을 생각을 하고 있지만 자살이 모든 문제를 끝맺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이상한 느낌도 있습니다. K군은 자살하는 방법과 장소에 관해 수없이 고민한 끝에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방법까지 생각해 냅니다. 하지만 차마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는 못합니다. 죽고 싶은데 죽는 순간을 생각하면 겁이 납니다. 자살했을 때 가족과 지인들이 받을 충격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힘들 정도로 우울증이 심한 상태인 것도 자살을 어렵게 합니다. 자살을 실행할 만한 기운이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우울증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게 됐지만, 정작 그 우울증이 자살을 방해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K군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천만다행이지만, 이번 일을 통해 자괴감이 더 심해져 괴롭습니다.


‘나는 내 목숨 하나도 내 맘대로 못 하는구나. 진짜 한심하다…….’




조울증과 자살


이번 이야기에서 K군은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해, 그것도 자살에 대한 생각을 계속합니다. 무겁고 민감한 주제이긴 하지만, 굳이 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보통은 자살의 정신병리적인 원인으로 우울증을 제일 먼저 떠올리기가 쉽지만, 조울증 역시 자살과 상당히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뉴스 등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중 자살률 1위를 유지한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특히 10~30대 사망 원인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자살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경우 자살률은 훨씬 심각합니다. 조울증 환자의 25~50%가 자살을 시도하고, 전체 조울증 환자의 10~15%는 결국 자살로 삶을 끝낸다고 합니다(박원명 등, 양극성 장애: 조울병의 이해와 치료). 이처럼 수치상으로 봐도 자살이라는 문제는 조울증에 관해 논의할 때 배제하고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조울증에서 자살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춰 보게 되면, 이 병은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가 갈리는 특성을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조울증 환자가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뉴스를 통해 종종 접해도, 환자가 스스로의 생명까지 위험하게 하는 자해의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은 일반인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흔히 조울증을 당뇨병에 비유하곤 합니다. 하지만 조울증의 자살 시도와 자살률이 이 정도로 높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조울증을 암과 같은 병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조울증 환자와 가족들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이런 식의 생각이 필요하다고 여긴 때도 있었습니다. 조울증을 치료받지 않는 경우에는 자살률이 더 높아집니다. 그만큼 조울증 당사자에게 자살은 현실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자살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자살자의 가족이나 지인 등 남겨진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라고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은 채, 죄책감마저 짊어져야 합니다.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존스홉킨스의대 정신과 교수이며 본인 또한 조울증 환자입니다)의 책 <자살의 이해>에 따르면, 인생에서 겪게 되는 심각한 사건들은 자살을 촉진할 수는 있어도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살면서 사람들은 대개 그런 어려운 일들을 겪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대개 정신병리학적인 속성, 특히 우울증이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조울증의 경우, 조증에서 우울증에 접어드는 시기에 종종 나타나는 혼재성 상태가 가장 자살 위험이 높은 정신병리 상태 중 하나이며, 우울증이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일 때 자살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또한 알코올과 약물 남용이 자살률을 높인다는 점도 자살과 조울증이 깊게 관련되어 있다는 또 다른 근거입니다. 조울증 환자는 알코올과 약물 남용 사례가 일반인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흔히 자살자들이 무책임하고(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이 없고) 삶에 대한 의지를 무시한다고(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고) 여겨 그들을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자살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자살자는 이미 이러한 것들을 합리적으로 고려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무너진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K군처럼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심정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원래 어려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정신적 탈진 상태에 있는 K군보다는, 마음에 여유가 있는 쪽에서 이해하려고 애써 보는 편이 조금은 더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이해는커녕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K군 같은 경우는 아주 위험한 상황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도 소통이 안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은 K군이 방구석에서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고 있습니다. 만약 K군이 결단할 수 있는 에너지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우울증이 회복되는 것으로 보이는 시기에 그 에너지로 충동을 실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더 늦기 전에 K군의 부모님이 그를 설득해서 병원 진료를 다시 받도록 해야 하고, K군의 우울증과 자살 사고 등을 주치의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지쳐 버린 그를 어떻게 병원에 데려가느냐 하는 것은 여전히 큰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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