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짝 Apr 29. 2024

K군을 소개합니다

당신의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조울증 환자의 이야기

K군과 조울증


K군은 이공계 대학에 재학 중인 평범한 1학년 남학생입니다. 원래는 말수가 적고, 성격상 모르는 사람과 사귀는 것을 어려워해서 인간관계가 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형적인 1형 양극성 장애[1] 증상을 보이고 있는데, 아직은 자신이 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가족들이나 친구들처럼 오랫동안 그를 잘 알던 사람들은, K군의 모습이 이전과는 뭔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그들 또한 그것이 조울증 때문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합니다. ‘많이 밝아지고 적극적이 되었네’라든지,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 보이는데’라고 여길 뿐입니다. K군 스스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내면의 변화를, 이유는 모르는 채 기분 좋은 혼란을 경험하는 중입니다.


그야말로 최근의 K군은 주체 못 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쳐 보입니다. 온갖 일들을 열정적으로 하느라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동아리 활동을 서너 개씩 하면서, 술자리 모임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해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가능한 최대 학점을 꽉 채울 정도로 수강 신청을 했고,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는 데에도 열심입니다. 이러다 보니 하루에 두세 시간도 못 잘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K군은 요즘에 기분이 아주 좋은 이유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서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지금 K군의 상태는 아주 심각합니다. 전문가가 봤다면 조울증 증상 중 '조증기'의 전형적인 행동이라 말했을 패턴들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데도, 이런 여러 위험 신호들을 그와 주변 사람들은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만 환자 본인과 주변 사람들이 조울증에 대해 알지 못하면,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합니다.


앞으로 K군은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고, 여러 조울증 증상을 거치게 됩니다. 우리는 K군이 조울증을 겪어 가는 모습을 단계별로, 구체적으로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K군의 행동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짐작하는 그의 속마음과, 당사자인 K군의 실제 생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차이 때문에 조울증 환자의 주변 사람들이 조울증을 더욱 어렵게 느끼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K군이 특정 증상을 보일 때 그의 행동과 내면을 함께 다뤄 보려고 합니다. 즉, '조울증 환자 당사자가 느끼는 조울증'에 관해 설명할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K군이 조울증을 겪는 과정을 따라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 여정에서 독자 여러분들은 때로는 흥미로울 내용을 만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불편함을 느끼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여행을 무사히 끝내고 나면,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이 있을지도 모르는 조울증 환자들이 보이는 신호를 알아채고, 또 그들이 하는 행동과 생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타인을 이해하는 하나의 관점을 확장한다면, 이 또한 작지 않은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대상이 조울증 환자라면 말입니다.


이런저런 기대를 품고, 이제 출발합니다.

 



[1] 양극성 장애는 1형과 2형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1형의 경우 조증 증상이 분명히 나타나는 반면, 2형은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조울증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2] 환자 스스로 병이 있으며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 ‘병식(insight)’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