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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짝 May 10. 2024

졸음운전

당신의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조울증 환자의 이야기

이야기 셋


자기 의지로 병을 극복해 보겠다며 약을 끊었을 때만 해도 K군은 기분이 조금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약(약을 끊음)한지 두어 주 정도 지나면서 K군의 기분은 이전과는 반대로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정신적인 에너지가 넘쳤는데 이제는 전부 소진해 버린 것처럼 기운이 없습니다. 의욕적으로 계획했음에도 다음 학기를 대비한 공부는 포기했고, 아르바이트도 그만둡니다. 자연스레 도서관에 가거나 아르바이트를 위해 출근하느라 외출하던 일이 줄어들었고, K군의 활동 범위는 완전히 좁아져 급기야는 방에서도 잘 나오지 않게 됩니다. 그래도 식사 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밥을 먹으러 나오긴 하는데, 그때마다 듣게 되는 어머니의 잔소리 때문에 괴롭습니다.


“K야, 이거 다 마음 먹기 달린 거야. 사람이 의지가 약하면 될 일도 안 돼. 밖에 나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좀 그래라.”


이런 어머니의 말씀은 들을 때마다 불편합니다. K군은 자신이 정말 의지가 약해빠진 인간인 것 같아 스스로가 싫어집니다. 하지만 무기력한 느낌만 마음을 무겁게 할 뿐 그놈의 '의지'라고는 한 줌도 생겨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다가는 영영 방구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K군은 그나마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그 친구에게 전화해 봅니다. 사정을 들은 친구는 이번에도 병원에 가 보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리라 예상 못한 것도 아네지만,  병원에 갈 생각만 해도 벌써 지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에 생각나는 것도 아니고,  저번에도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던만큼 한 번 더 그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합니다.


K군은 없는 기운을 쥐어짜서 병원에 갑니다. 평소에는 별로 멀게 느껴지지 않았던 병원 가는 길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K군을 본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K군이 이번에는 상당히 심한 우울증 상태에 들어간 것 같다고 말씀하시고는, 기분 조절에 관련된 약을 처방해 주십니다. 다만 항우울제는 넣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항우울제가 조울증 환자의 조증을 유발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가능하면 쓰지 않으려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K군은 당장 기분이 좋아졌으면 하고 바랐기 때문에 항우울제든 뭐든 즉시 효과가 나타날 약을 넣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이 병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집에 돌아온 후로 며칠 동안 약을 먹었지만 기분은 크게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울감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산책을 하고 충분히 햇볕을 쏘이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 바깥으로 나갈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하루종일 누워 지낼 때도 많고, 수면 시간도 많이 늘어나서 보통 12시간 넘게 잠을 잡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지고 머리속도 안개가 낀 것 같이 느껴집니다. 곧 봄 학기 개강입니다. 어떻게 할지 한참을 고민했지만, 이 상태로는 도저히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한번 더 억지로 에너지를 짜 내어 학과 사무실에 휴학계를 제출하고 옵니다. 집에 돌아오고 난 뒤 완전히 지쳐버린 K군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될까? 나 왜 이렇게 약해진 걸까? 아, 기운 내야 하는데…….’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의지가 약해서일까


우울증에 직접 걸려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환자가 왜 그렇게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하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이론보다 비유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느라 밤을 꼬박 새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떤 남자가 있습니다. 이 남자는 운전을 하고 있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입니다. 갑자기 잠이 쏟아집니다. 남자는 연달아 하품을 하고, 음악을 크게 틀어 봅니다. 창문을 열고 목과 어깨를 펴서 나름 스트레칭도 해 봅니다. 하지만 잠깐 올라갔던 눈꺼풀은 무거워지며 다시 눈이 감깁니다. 깜빡 졸아서 차선을 이탈했다 돌아오기를 몇 번 반복할 때마다 깜짝 놀라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그렇게 놀라고 나서도 잠시 후에는 또 졸음이 밀려옵니다. 아무래도 눈을 좀 붙여야겠다고 생각하는데, 휴게소는 아직도 한참 남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주 위험한 상황입니다.


대개 경험으로 아시겠지만, 이처럼 정신없이 졸릴 때 스스로 잠을 깨는 것은 웬만해서는 하기 힘든 일입니다. ‘잠에서 깨어나라!’라고 명령해야 하는 두뇌 자체가 졸린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잠들려고 하는 뇌가 스스로를 잠에서 깨워야 하는 모순된 상황입니다. 졸린 뇌는 점점 깊은 졸음 속을 헤매다가 결국 잠들어 버리는 게 보통입니다 운전 중에 졸음이 오면 미리 휴게소나 졸음 쉼터에서 짧게라도 잠을 자고 다시 출발해야 하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우울증에 걸린 K군은 졸음운전을 하고 있는 남자와 마찬가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힘든 원리도 졸음운전과 비슷합니다. 다만 여기에는 ‘졸린 뇌’ 대신 ‘무기력한 뇌’가 있습니다. 무기력에 빠진 두뇌가 자체적으로 그 무기력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이유는 졸음운전 상황과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무기력한 뇌는 힘을 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K군이 의지로 우울증을 극복하겠다고 애를 써 봐도, 의지의 원천이 되어야 할 뇌의 에너지가 고갈되었기 때문에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무척 답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울증에 빠진 그대로 생활하는 것은 졸음운전을 하는 것처럼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활동, 인간관계 등이 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울증은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언젠가 저절로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우울증을 방치하면 아주 오랫동안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고, 심지어 더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졸음운전이라는 긴급한 상황에서 최대한 빨리 졸음 쉼터를 찾아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우울증이다 싶으면 지체하지 말고 병원에 방문해 치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약물 치료 외에도 상담 치료가 필요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환자를 잘 이해해 주는 가족이나 지인이 있다면 크게 도움이 됩니다.


한편 K군처럼 조증 후에 우울증을 겪는 것은, 조울증 환자에게 드문 현상이 아닙니다. 두뇌 관점에서 보면 조증 상태에서 소모해버리고 고갈된 에너지를 다시 채워야 하는데, 우울기는 그렇게 하기 위한 일종의 휴식 기간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증 이후엔 우울증이 온다,라는 식의 패턴이 흔히 나타나는 만큼 경조증이나 조증 단계일 때부터 미리 우울증에 단단히 대비해야 안정된 기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했던 처음부터 K군은 큰 실수를 하나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약을 끊었다는 점입니다. 약을 조절해 나가며 최종적으로 완전히 약을 끊을 수 있을지를 정하는 것은 반드시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야 합니다. 의사의 처방을 무시해 버리면, 지금까지 진행했던 치료 과정이 엉망이 될 수 있고, 다시 제 궤도에 올리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K군이 퇴원할 때 처방받은 조울증 약은 지나치게 빠른 기분 변화를 방지하고 기분이 정상 상태에 연착륙하는 데에 주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K군의 기분이 급격하게 가라앉은 원인은 임의로 단약을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과적으로 자기 실수로 힘든 상황을 만들긴 했지만, 친구의 조언대로 다시 병원을 찾은 건 올바른 결정이었습니다. 타이밍은 놓쳤지만 그래도 약을 먹기 시작했으니, K군의 기분도 다시 나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다만 조울증 치료 약물에 대한 반응성은 사람마다 다르고, 약이 효과를 보이려면 어느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약을 먹자마자 바로 효과가 나타나면 좋겠지만, K군은 아마도 한동안 우울증 증상을 견뎌야 할 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잠시 용어 구분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조울증 환자인 K군이 겪고 있는 우울증은 우리가 평소에 많이 들었던 일반적인 우울증과 차이가 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전자를 ‘양극성 우울증’, 후자를 ‘주요우울장애(단극성 우울증)’이라고 따로 부릅니다. 보통 사람들이 우울증이라 부르는 것은 우울증의 증상만 나타나는 '주요우울장애'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양극성 우울증과 단극성 우울증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양쪽 증상이 서로 비슷해서 전문가도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많고, 실제로 오진도 종종 일어납니다. 조울증의 첫 발병이 양극성 우울증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조울증 초기에 우울증으로 잘못 진단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조울증 증상을 우울증으로 판단해서 항우울제를 처방했다가 경조증이나 조증으로 튀는 바람에 뒤늦게 조울증으로 진단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이런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양극성 우울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조증(또는 경조증)과 짝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양극성 우울증은 조울증의 일부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다만 이 책에서는 주로 양극성 우울증을 다루기 때문에, 편의상 ‘양극성’이란 말을 빼고 ‘우울증’이라고 쓰겠습니다.


다시 K군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조울증의 증상 중에서 아무래도 겉으로 나타나는 조증의 특성이 인상적이다 보니까, 조울증의 그림자 격인 우울증에 대해서는 보통 잘 모르거나 관심이 적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울기에 치료 과정을 잘 유지하고 가족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환자에게 있어 삶의 질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K군의 어머니는 이 병이 의지의 문제라른 생각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머니 본인이 의지와 생활력이 강한 성격이고, 항상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자신의 입장에서 K군을 보면 속터질 만도 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정신력으로 병을 이겨내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아들이 정신 병원에 다닌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합니다.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태도, 그리고 저절로 우울증에서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K군의 막연한 기대는 이 글에서 설명한 졸음운전의 비유와는 완전히 어긋나는 생각입니다. 정말로 졸릴 때는 잠을 자야 합니다. 휴게소에서 어느 정도 쉬고 나서도, 무사히 집에 돌아온 다음에는 푹 자 줘야 합니다. 잠이 부족한 상태를 충분히 회복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우울증에 빠졌을 때도 즉시 필요한 치료 약물을 먹고 그 밖의 도움도 있어야 하겠지만, 지친 뇌가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답답한 시간을 참고 견디려면 환자 당사자에게도,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인내심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푹 자고 나면 아침 햇살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게 되는 것처럼, 우울증도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어둠이 밀려가듯 사라지는 때가 옵니다.


하지만 K군은 자신의 우울증에서 헤어나지 못해 괴롭고 조급합니다. 늘 바쁜 어머니는 K군이 병원에 잘 다니는지, 약은 잘 먹는지 별로 신경을 쓰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K군이 아프다는 사실 자체도 인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울증 치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내심도, 관심도 모두 부족합니다. K군의 우울증은 처음 경험하는 사건이라 가족들의 대응은 서툴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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