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조울증 환자의 이야기
입원해 있는 동안 증상이 많이 좋아졌는지, 들떠있던 K군의 기분도 어느 정도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치의 선생님으로부터 퇴원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K군은 환자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습니다. 마지막 면회 이후로 오랜만에 뵙는 어머니와 함께 퇴원 수속을 마치고 병원 건물을 나섭니다. 바깥공기가 아주 상쾌합니다.
집에 가기 전에 우선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애초에 진료를 권유해서 조울증을 진단받도록 계기를 만들어 준 그 친구입니다. 약속 장소인 카페에 먼저 도착한 K군은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한쪽에서 흘러나오는 배경 음악을 기분 좋게 감상하다가, 다른 좌석 사람들의 대화를 슬쩍 엿듣기도 합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바깥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지냈나, 하는 궁금증이 들어서입니다. 조용한 병동에 비해 이곳은 오감을 자극하는 것들이 많아서 즐겁습니다. 마음속으로 여기저기 참견을 하다 보니, 어느새 친구가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옵니다.
친구는 입원해 있는 동안 K군이 어떻게 지냈는지 묻습니다. 퇴원한 지금은 건강이 돌아온 건지, 기분은 어떤지도 물어봅니다. 보통은 정신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면,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대하거나 조금 멀리할 만도 한데, K군을 대하는 친구의 태도는 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친구가 워낙에 한결같은 성격이라는 것을 K군은 알지만, 너무 태연하게 대하니까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평소와 똑같이 대할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친구가 대답합니다.
“사촌 동생 하나가 조울증이거든. 너 입원하기 전에 하는 모양새를 보니까 걔랑 느낌이 너무 비슷하더라고. 그 녀석은 조울증 앓은 지 벌써 여러 해 됐어. 입원한 적도 몇 번 있었고.”
K군에게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친구가 어떻게 알아챘는지에 대한 의문이 이제야 풀립니다. 사촌 동생에 관해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봤지만, 남의 말을 옮기기 싫어하는 성격인 친구는 대답하기 곤란해합니다.
그래도 친구는 K군에게 앞으로도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하기를 잊지 않습니다. K군은 걱정해 주는 그가 고마워서, 병원에 잘 다니겠다고 다짐합니다. 헤어지기 전, 친구는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 마디 덧붙입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너 아직 기분이 조금 들떠 있는 것 같아. 혹시 모르니까 신경 쓰고 있으라고.”
K군은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지금 정말 건강한 기분인데, 너무 걱정이 지나친 거 아닌가’라며 친구의 우려를 가볍게 여깁니다.
이야기를 마친 두 사람은 겨울 방학이 끝나면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집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잘 다녀왔냐,' 하고 무덤덤한 반응이십니다. 그에 비해 어머니께서는 조금 수선을 떠십니다. ‘괜찮다, 이제부턴 다 잘 될 거다, 뭐든 사람 마음먹기 달렸다’라는 내용의 말씀을 길게 하셨는데, 요지는 K군의 의지로 얼마든지 조울증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다음날부터 K군은 바쁘게 움직입니다. 겨울 방학이 시작하기 직전 입원한 탓에, 학기말에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던 행정 절차들이 남아 있습니다. 한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돌려 안부를 묻습니다. 다음 학기에 듣게 될 전공과목들도 미리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아르바이트도 구해야 합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만큼은 아니지만, K군은 뭔가를 계속하느라 시간이 부족합니다. 조언자 친구가 눈썰미는 정확했습니다. K군의 기분 상태는 아직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입원해 있으면서 쭉 참았던 답답함과 심심함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약 먹는 것을 자꾸 빠뜨립니다. K군은 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이처럼 약을 한 두 번 건너뛴다는 사실도 문제이지만, 약의 중요성과 약을 먹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결과들에 대해 모르는 것도 심각한 일입니다. 약을 빼먹는 이유도 다양합니다. 생각이 많고 머릿속이 복잡하다 보니 약 먹는 것을 잊을 때도 있고, 밤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약을 먹으면 졸음이 온다고 일부러 약을 건너뛰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K군은 약에 대해 소홀해졌고 약 한 두 번쯤 안 먹어도 큰 지장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이거야 뭐, 약 좀 안 먹어도 괜찮은 것 같은데? 어머니 말씀대로 조울증을 의지만으로 극복해 봐야겠다!’
조울증 환자가 임의로 단약, 즉 치료 약물을 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대표적인 세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첫째, 위 이야기에서 K군이 했던 것처럼, 경조증 혹은 조증 상태에 있는 당사자가 스스로 약을 끊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조증일 때 기분이 고양되고 창의성과 생산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현상은 환자인 당사자 입장에서는 아주 기분 좋은 현상입니다. 많은 조울증 환자들이 경조증 시기를 갈망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경조증 상태를 유지하고자, 들뜬 기분을 억제하는 약을 먹지 않으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경조증은 오래 유지되지 않고 조증이나 우울증으로 기분 변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경조증의 장점을 누리겠다는 이유로 약을 끊는 시도는 위험한 도박이며 대개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둘째, 조울증 치료 약물의 부작용 때문입니다. 약의 종류 및 복용하는 환자의 체질에 따라 다양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데, 체중 증가, 탈모, 위장 장애, 손발 떨림, 어지러움 및 메스꺼움, 피부 트러블 등 그 유형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부작용은 감수해야 할 때도 많은데, 조울증 치료가 우선시해야 할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부작용은 환자를 괴롭히고, 특히 외모와 관계있는 부작용은 환자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어서,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약 부작용은 치료 의지를 약하게 해서 치료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치료약의 부작용이 너무 심하다고 약을 끊을 게 아니라, 진료받을 때 주치의와 상담하여 부작용이 적은 대체 약물을 찾아야 합니다.
셋째, 조울증 환자 스스로 병을 인정하지 않을 때입니다. 이 경우 약을 신뢰하지 않거나 아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조울증 치료를 받던 환자라도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면 병식이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는데, 이럴 때는 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조울증에 대해 잘 알고 정신과에 익숙한 환자들조차 약물 치료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정신 질환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 모습이 바로 K군 어머니와 같은 태도입니다. 조울증을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은 조울증을 일종의 ‘마음의 병’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병이니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즉, ‘마음의 병이니 의지로 나을 수 있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사실 ‘마음의 병’이라는 말 자체는 굉장히 잘 만들어진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 질환에 관해 말할 때, ‘정신병’이라는 어휘에서 느껴지던 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 내고 순화시킨 훌륭한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 표현에는 한계도 있습니다. 정신 질환의 무겁고 어두운 면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려고 할 때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마음’이란 수식어 때문에 조울증을 '마음의 병'이라고 하면 이것이 신체적인 병이 아닌, 정서적인 병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을 통해 우리는 마음이 두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병이 생겼다는 것은, 실은 그 마음을 담고 있는 두뇌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조울증은 ‘뇌 질환’, 곧 생물학적인 질환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조울증과 뇌 질환을 연결 지어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조울증이란 용어에는 마음, 감정, 정신, 심리학 등 복잡한 개념이 함께 따라온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두뇌에서 조울증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뇌과학이 몹시 난해하고 생소한 분야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설명이 길어졌지만, 여기에서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조울증을 ‘마음의 병’과 ‘뇌 질환’ 중 어느 쪽으로 바라볼 것인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둘 다 완전히 틀리다고도, 맞다고도 하기 힘든 표현입니다만, 저는 뇌 질환의 관점으로 보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그 편이 조울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울증이라는 병에서 정서적인 면보다 생물학적인 측면을 강조하게 되면, 실질적인 이득도 있습니다. 조울증이라는 병의 특성상 환자와 가족 사이에 감정적인 충돌이 있기 쉬운데, 이 병이 신체적인 것이며 생물학적인 원인 때문에 생기는 질병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정서적인 고통을 줄이고 담담하게 인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조울증이 발병한 원인이 환자 본인만의 탓이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이기 쉬워집니다. K군의 뇌에 문제가 생긴 것이 그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조울증의 증상으로 벌인 일들에 대해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피해를 받을 수 있고 그 사실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조울증 환자는 ‘아픈’ 것이고, 아픈 것 자체가 당사자의 잘못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조울증이 뇌 질환이라는 관점을 받아들이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약물이 중요하다는 점을 납득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조울증 치료 약물은 뇌 안에서 일어나는 신경전달물질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주된 원리로, 조울증을 일으키는 고장 난 뇌에 직접 작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울증을 치료할 때 약물 치료가 기본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울증을 ‘마음의 병’으로 보는 편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정서적인 접근이 필요한 경우입니다. 주변 사람들 중 K군의 행동을 볼 때 그의 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보통은 K군의 표정과 말, 행동으로부터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추측하게 됩니다. 조울증을 ‘마음의 병’이라는 시각으로 보게 된다면, 우리는 조울증 환자를 덜 분석적으로, 그리고 좀 더 정서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을 가진 인간 대 인간으로 조울증 당사자에게 다가가기가 조금은 수월해집니다. 그리하여 K군과 같이 유별난 조울증 환자 역시 다채로운 마음을 가진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합니다.
결론적으로 조울증을 마음의 병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뇌 질환으로 볼 것인지는 각자의 생각과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전망으로는, 뇌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조울증의 뇌 질환적 측면이 더욱 강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어느 한쪽 관점이 옳다, 하고 결론짓기에는 현실적으로 복잡한 면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정서적으로 지나체게 치우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K군의 어머니처럼 조울증이 마음의 병이라는 쪽에 생각이 쏠려 있으면 조울증의 치료 방법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조울증에서 회복되는 것이 의지 혹은 정신력의 문제라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오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미 생물학적으로 균형이 무너진 뇌에서 강한 의지가 생기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얼마간의 의지가 있다 해도 그것이 조울증 환자의 뇌를 건강하게 만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정말로 필요한 의지는 ‘제대로 치료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번에 K군이 약을 먹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도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어서입니다. 저에게는 안타깝고도 익숙한 모습입니다. 조울증 환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이기 때문입니다. 조울증이 처음인 K군은 지금, 가지 않으면 좋았을 길에 들어서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