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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학 Apr 18. 2019

봄을 닮은 너와 나

봄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당신 때문이야

길고 길었던 겨울을 녹이는 봄이 오면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내리는 햇살만 보아도 포근한 게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한다. 움츠려있던 몸이 저절로 펴지고 새로운 생명들이 자신의 아름다운 색을 보이기 위해서 꽃을 피운다. 이 황홀한 순간은 알다시피 매우 찰나의 시간이다. 봄을 즐길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우리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의 여유를 즐기러 바깥으로 발걸음을 내디딘다.

 

봄은 피크닉의 계절이다. 날이 따뜻하고 햇살이 적당한 어느 날, 우리는 구석에 박아두었던 돗자리를 꺼내 도심 속에 숨은 작은 자연을 찾아 떠난다. 그곳에서 흩날리는 꽃잎들과 그것을 보고 신이나 뛰어노는 아이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햇살에 몸을 맡기며 즐긴다. 상상만으로도 겨울의 매서운 추위로 경직됐던 몸이 느슨하게 풀리는 느낌이다.

 

어떤 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우울하고 쌀쌀하더니만 자고 일어나니 언제 그랬었냐는 듯 따뜻한 봄기운이 물씬 나고 있었다. 이번 주말에는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서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은 저 아름답게 비추는 햇살에 그대로 녹아버려 증발해버렸다. 아무런 계획이 없어도 그저 창문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이런 날씨에 집에 있으면 그게 죄야.”

 

토요일 신나게 놀고 일요일은 다음날 출근이 걱정이니 쉬는 데이트하자던 여자 친구의 마음에도 봄바람이 스며들었는지 나들이 욕구가 피어올라왔다. 평소 같으면 가기 싫어서 온갖 핑계를 대느라 골치였겠지만 봄 향기에 취한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이 당장이라도 벚꽃을 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우린 아무런 계획 없이 놀러 가기로 단번에 정했다. 이미 내일 출근이라는 무거운 걱정은 벗어던진 지 오래였다.

 

가깝게 나들이 느낌이 날만한 곳을 한참 고민하다가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지하철을 타고 여의나루 역에 내렸는데 들뜬 마음이 그대로 가라앉아버리는 상황이 우리를 마중했다. SNS 속에서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끽하는 지상의 사람들과는 반대로 지하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날씨가 갑자기 풀리니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우리는 눈치게임에 실패했다며 좌절했다.

 

이상하게 도착을 하긴 했는데 갈 수가 없다. 지상으로 올라왔는데, 공원이 저기 눈앞에 보이는데 나아갈 수가 없다. 근데 또 이상한 게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많은 인파들이 앞으로 나간다고 등 떠미는 바람에 어느샌가 공원에 도착하는 이상 현상이 일어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나오는 길에 배달음식들을 시켜먹으라고 받은 전단지를 한 뭉텅이 손에 쥐고 있었다. 그만큼 정신이 없고 나들이를 제대로 즐기기 전부터 진이 빠지는 상황이 일어난다.

 

“하, 괜히 왔나?”

 

도착과 동시에 후회가 밀려오니 이렇게 허망할 수가 없다. 꽃구경 말고 사람 구경만 하다가 돌아가게 생겼다. 그때 나의 눈앞에 떨어지는 벚꽃 잎 하나.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올리니 꽃잎이 내 손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천천히 피어오르던 후회스러움을 그대로 연한 분홍 잎이 덮어버렸다. 돗자리를 깔고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버스킹 음악소리와 사람들이 나누는 행복한 웃음소리들이 내 귀를 간지럽혔다. 크리스마스 이후로 추위를 피한다고 종일 실내만 있었더니 바깥공기가 이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봄이 온다는 말이 단순히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뀐다는 의미가 아니다. 봄이라는 계절은 많은 것을 들고 우리를 찾아온다. 따뜻한 날씨와 맑은 하늘, 피어나는 아름다운 생명들은 물론이고 소중한 사람과의 가까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심적 여유와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저녁이 짧아지고 밝은 시간이 길어진다. 덕분에 마음까지도 밝게 바뀌는 것은 아닐까. 사람에 치이고 정신없는 이 봄나들이가 나름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함께하는 사람이 나에게 봄과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봄처럼 내 마음에 따뜻하게 내려앉는 사람이 있다. 주변 상황이 어떻든 전혀 상관없이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내 기분을 들뜨게 만드는 사람. 그대를 보면 빨라지는 심장박동이 원동력이라도 되는지 시간의 태엽을 빠르게 감아버린다. 눈 깜빡하면 지나가는 봄과 같이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 또한 빠르게 지나가 헤어질 시간에는 항상 아쉬움이 동반한다.

 

누군가 나에게 포근한 존재가 되어주는 것만큼 든든한 일이 없다.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다면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 자부해도 괜찮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준다면 성공한 인생이다. 자신으로 인해서 누군가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쉼터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지 상상해보면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비록 짧디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을 내게 안겨주는 봄처럼, 나도 너의 삶에 화사한 빛을 비춰줄 수 있는 따뜻한 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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