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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학 Jun 19. 2019

사랑에 비겁해지지 않기

조금 불쌍해 보여도 어때

사랑의 시작은 설렘, 기대를 바탕으로 최고의 달달함을 맛볼 수 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이 달콤함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이 중독에서 깨어날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서 가장 쓴 이별을 맛봤을 때뿐이다. 연애 초반에 그렇게 죽을 듯이 붙어 다니며, 서로 사랑한다고 속삭이지만 이별 후에는 죽이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듯 험담을 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오랜 시간 동안 만났던 사람과 남이 되는 일은 익숙하지가 않다. 습관처럼 배어 있는 사람. 행동 하나하나에 그 사람이 보이고 가는 곳곳마다 그대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넘쳐나는데 그것을 모두 잊는다는 것 자체가 많은 고통이 따른다. 사람들은 그 고통을 덜기 위해서 어떠한 방법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것이 그 사람과의 추억이 더럽혀지더라도 말이다.

 

연애의 시작을 남들에게 알리면 많은 축하를 받는다. SNS에 연애 중 표시를 해놓고 좋아요를 받기도 하고, 데이트하며 찍은 사진들을 올려 자랑도 마음껏 해본다.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아름다운 한 쌍의 커플이 되어 괜스레 어깨에 힘도 한껏 들어간다. 그러다가 결국엔 새드엔딩이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던 것만큼 헤어짐에 있어서도 누군가는 흥미를 갖는다. 헤어짐의 이유를 물으면 사람은 결국 방어본능이 발동된다.

 

이별 후, 슬픔에 허덕이고 싶지 않아 친구들을 모으고 갖는 술자리에 누군가 이별의 이유를  묻는다. 이유 설명으로 가장해 여친, 전남친의 흉을 보며 하소연을 하고, 듣는 이들은 그것에 공감하며 같이 욕해준다. 그러므로 자신은 고통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찾는다.

 

“그 사람 진짜 못됐네.”

 

결국 자신이 아낌없이 사랑했던 사람을 나쁘게 만들고 자신은 불쌍한 사람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리고 누군가 더 좋은 사람 소개해 준다며 나타나고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난다. 그렇게 반복 학습되는 연애 활동에서 언젠가 운명의 상대를 만나 결혼을 한다.

 

지금까지가 내가 겪기도 하고 보기도 했던 대표적인 청년들의 연애방식이다. 일명 ‘피해자 코스프레’ 분명 누군가의 잘못이기도 하고 무언가의 문제가 있음에 이별을 맞이하지만 그것의 이유는 대부분 자신에게서보다 상대에게서 찾는 것이다. 나는 절대로 나쁜 사람은 되지 않겠다는 심보다. 한 에세이에서 이런 말이 있었다.

 


공통점을 찾기로 시작해서 차이점 발견으로 끝나는 것이 연애야
–김상현의 기록들 중-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환상 속에 빠진다는 것과 같다. 어떻게든 상대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또 그것을 얻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한다. 같은 곳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사람과 닮고 싶어 하는 마음에 서로의 공통점을 찾는다. 공감하는 것들이 늘어가고 이 사람과 혹시 운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결국 서로를 향한 믿음이 된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원하는 해피엔딩이자 아름다운 소설 같은 사랑이 되지만 인생은 그렇게 드라마처럼 극적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서로가 자라온 환경이 다르니 생각이나 습관의 차이를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는 마음에 목소리를 키워보지만 높아지는 것은 목소리뿐 아니라 서로를 갈라놓는 벽이었다. 결국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이별에 접어든다.

 

연인들의 헤어짐에 있어서 아름다운 마무리는 거의 없다고 본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상황이 닥치는 것이 아닌 이상 보통은 서로 맞지 않는 것을 깨닫고 싸우거나, 어느 한쪽이 포기하거나. 아니면 해서는 안 될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이유가 된다. 끝이 좋지 않는다고 해서 그동안의 시간이 안 좋은 것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행복했던 시절을 뒤로한 채, 누군가의 시선에 나쁘게 보이기 싫다는 이유로 추억을 애써 지운다.

 

아름다운 마무리가 없다고 해서 아름다운 추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사랑에 빠진 순간, 그 누구보다 행복함을 느꼈고 처음으로 바보가 되는 기분을 알았다. 격한 행복함에 오히려 불안함도 느꼈을 내가 단지 다른 사람 눈에 비치는 모습이 나쁜 모습일까 두려워 먼저 추억을 더럽혀버린다.

 

사랑과 이별의 대처에 있어서 적어도 비겁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과거는 과거대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아름다운 당신이 아닌, 아름답게 사랑하던 나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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