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시간과 비례하지 않아
인간의 3대 욕구 식욕, 수면욕, 성욕. 이것의 갈구는 나의 자발적 선택이 아닌 본능이다. 욕구라는 주제를 단지 세 가지로 간추려 간단해 보이도록 말은 했지만 사실 꽤나 더 많은 것을 관여한다. 식욕으로 예를 들자면 살기 위해서 우리는 음식을 섭취해야 하고 적당한 영양소를 공급받아야 생활이 가능하다. 단지 먹는 행위만을 하면 된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점으로 보면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저 먹고 배만 채우면 되는데 우리는 왜 유명한 맛집을 선호하며, 지역의 특산물을 찾고, 시기에 맞는 제철음식을 구매하는가. 어차피 먹는 음식, 보다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음미하며 주변의 사람들과 그 맛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것까지가 어쩌면 우리의 식욕의 관할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성욕 또한 그렇다. 이성과 접촉하기를 바라는 욕망이라 정의를 내리지만 어쩌면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는 것. 이 사람을 생각하며 밤을 지새우는 것까지도 성욕이라 본다. 대표적인 행위 외에도 꽤나 사소한 것들까지 생각해보고 정의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랑은 떼어놓을 수 없는 짝꿍이다. 서로 아주 가깝게 존재하기에 어쩌면 글자까지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이기주 작가의 작품 <언어의 온도>에서도 사람과 삶, 그리고 사랑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는 글이 나오기도 했다.
이 이야기가 나온 계기는 바로 영화 <그날의 분위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원나잇을 갈망하는 남자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 남자는 여자를 설득하고 여자는 결국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대충 정리하면 이런 내용인데 여기서 요점은 원나잇이다.
처음 보는 사람과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사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말은 아니다. 사랑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러냐며 눈살을 찌푸리곤 하지만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쩌면 잠자리라는 것 자체의 인식이 조금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메리칸 스타일!”
이렇게 외치며, 단지 이 사람과 내가 마음이 맞고 뜻이 통한다면 하룻밤 정도는 보내도 괜찮다, 혹은 하룻밤을 보냄으로써 이 사람을 더 자세하게 알아가고 싶다. 그러다 아니다 싶으면 다음날 쿨하게 헤어지면 되니까 부담도 없다. 여기까지가 요즘 기우는 추세인 듯하다.(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단지 개인적으로 원나잇의 이미지가 좋지 않을 뿐,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다고도 느낀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가가 자신을 어필하고 마음을 전달하는 용기는 사실 박수를 쳐줄만하다. 더군다나 지극히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더더욱 크게 쳐줘야 한다.
영화에서 말해주고 싶은 것 또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원나잇의 단면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연을 찾는 것 말이다. 우리는 결국 사랑을 찾는 인생이다. 운명의 짝은 어딘가 존재한다 생각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진정한 사랑을 기다리거나 찾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첫눈에 반했다는 감정은 잘 모르지만 누군가를 보고 첫눈에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정말로 인연이란 것이 존재할 것만 같다. 나의 순간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남이라는 영역에 과감하게 발을 들여놓는 것. 그것은 정말 용감한 전사가 되는 일이다.
아주 오랫동안 연애를 했던 커플이 한순간에 헤어지고, 다른 사랑을 만나 결혼해 행복한 인생을 보낸다. 평생 갈 것만 같던 사랑이 끝나는 것도 앞으로 사랑 따위 없을 거라 다짐했던 나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는 것 또한 인연이다.
“원나잇을 했다고?”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다른 사람을 만나?”
주변의 시선은 절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내 인연의 존재를 부정하고 알지 못한다. 나에게 어떤 사람이 오고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는데 다른 그 누가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스쳐가는 많은 인연들 틈에서 손에 잡힐 수 있도록 계속해서 팔을 휘젓는 노력만을 할 뿐이다.
순간의 판단이 때로 평생의 경험과 맞먹는다.
O.W. 홈스
장래나 진로를 결정하는 판단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사랑을 하기 위한 삶이다. 인연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쟁취하는 것은 순간의 판단이다. 누군가를 오래 만나고 아는 것은 중요치가 않다. 처음 본 사람은 절대 인연이 아닐 수도 없거니와 오래 교재 한다고 그 사람이 내 삶의 짝이라고 확정 지을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결정에 따라오는 결과가 결코 좋을 수만은 없다. 좋은 인연이 있으면 나쁜 인연도 있는 법. 내가 선택의 기로에서 방향을 정하고 걸어갔다면 그것은 온전히 결정한 나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 길의 끝에 있는 것이 사랑일지 실패일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것이 풀기 힘든 숙제가 된다 해도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인연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그 끝에 선물이 놓여 있다고 확신하며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