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휴대폰이 울려댔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그렇게도 잠잠하더니 평일 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금요일부터 사람들 눈에 맴도는 빛은 휴대폰 불빛인지 주말을 향한 희망의 번뜩임인지는 알 수 없었다. 딱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암묵적인 룰이 되어 당연하게 “오늘 뭐하냐?”, “오늘 만날 거지?” 묻는다. 물론 예전의 나였으면 무조건 오케이를 외쳤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여기저기 전화하며 저 질문을 하는 당사자가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평일 마지막 날의 밤은 깊어져 가지만 그들은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주말이면 무조건 술자리를 가졌고 기본적으로 평일에 두 번에서 세 번은 열심히 놀았던 때가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나는 친구가 너무 좋았고 그 안에서 자유를 찾은 기분을 받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자유의 탈을 쓴 도피였지만. 그런 시간은 나에게 사랑이 찾아오는 순간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다. 그 후로 나는 친구들의 연락이 오면 가장하는 말이 “안 돼.”가 되었다. “맨날 여자 친구랑만 있냐?” 결국 친구들의 불만이 빗발쳤다. 평일은 바쁘고 주말은 당연하게도 연인과 함께하는 시간만으로도 부족했다. 계획 없이 술만 먹고 숙취로 하루를 버리던 무의미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어떻게 해야 알차게 보낼 수 있는가를 걱정하며 고심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데이트를 하는 토요일만 되면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잠에서 깨어 들어 올리는 눈꺼풀은 가볍고 대충 집어 입던 옷들 속에서 무엇을 입을지 한참을 고민한다. 평일 내내 미루던 면도가 귀찮지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들뜬다. 항상 만나는 장소에서 걸어오는 애인의 모습이 너무나 발랄하다. 아마 나와 같은 아침을 맞이하고 나오는 길일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와 꽉 안고서 잠시 서로의 온기를 느껴본다. 그저 아무 말 없어도 느껴지는 것들, 포근하고…따듯하고… 편안하고… 이 가슴 벅차오를 만큼의 감정은 어떻다고 정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다. 굳이 비슷한 예를 들자면, 명절 동안 시골에 다녀오고 막 집에 들어온 기분이랄까. 무거웠던 몸을 딱딱한 거실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워 외치는 “아! 역시 집이 가장 편해.”같은 느낌. 나에게 꼭 돌아와야 할 집과 같은 사람이다. 집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을 뜻하지만 쉽게 말하면 결국엔 내가 돌아가야 하는 자리를 말한다. 내가 어디를 얼마 큼의 시간 동안 돌아다니든, 무슨 일을 하던지 겪던지 해도 결국에 집으로 돌아온다. 나에게 연인이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나를 온전히 나답게 만들어주고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곳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옆자리였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이 혹은 그곳이 곧 집이 된다. 관객이 없는 연극은 그 힘을 잃고 청중이 없는 가수의 노래는 그 감동을 전달할 수 없다. 학생이 없는 선생은 아무런 가르침을 줄 수 없듯이 그들에게 집은 학교, 무대가 아닌 그들을 바라봐 주는 사람들이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내가 제기능을 할 수 있도록,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원동력이 되어주고 때로는 쉼터가 되어주는 집은 몸이 아닌 마음으로 찾는 것이다. 나도 과연 당신에게 집과 같은 사람이 되었을까. 힘든 일상 속에서 잠시라도 지친 당신을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앞으로 다가올 기나긴 여행의 길목에 나아는 힘의 원천이며 언제든 편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마련된 작은 휴식처가 바로 내가 될 수 있기를 늘 노력하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