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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n 09. 202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 1


요즘 나의 독서 공간은 병원이다. 가정의나 치과 혹은 비타민 C 요법 같은 자연치료를 받을 때. 오늘처럼 항암을 받으러 가야 할 때도. 세상에 책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약용차 전문 전통중국의료원(TCM) 대기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읽을 때 여기보다 더 알맞은 이미지가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다니는 약용차 클리닉. 2주에 한 번 약차 1병을 받아서 물에 타서 마신다. 가격이 참 착하다. 목표는 암도 착하게 만들자는 것. 독일에서는 이런 곳을 전통중국의료원(TZM)이라 부른다. 담당 의사는 독일 분. 한국의 한의원처럼 맥도 짚고 혀도 살펴보신다. 도시 이름은 그래펠핑 Gräfelfing. 뮌헨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이다. 뮌헨의 서쪽에 있는 작은 도시. 한국의 이미륵 박사 묘지가 있는 곳. 한국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다고. 뮌헨 중앙역에서 S반으로 30분 정도 걸린다. 클리닉은 2층짜리 건물을 통으로 쓰는데 외관보다 실내가 더욱 아름답다. 고풍스럽다. 프루스트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온  같. 곳곳에 걸그림도 아름답다. 이런 그림들방 풍경을 보면 눈과 마음이 즐겁다. 자꾸 봐도 질리지 않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사물에 대한 표현을 되찾을 같은 착각도 든. 프루스트의 '비'처럼. 그래서 옮겨놓는다. 프루스트의 일곱 개의 느낌들.



약용차 전문 전통중국의료원(TCM) 복도.



*


뭔가 유리창에 부딪히는 것 같은 작은 소리가 나더니, 다음에는 위쪽 창문에서 모래 알갱이를 뿌리듯 가볍고 넓게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그 소리가 퍼지고 고르게 되고 리듬을 타고 액체가 되고 울리고 수를 셀 수 없는 보편적인 음악이 되었다. 비였다.**



사랑


한 존재가 어떤 미지의 삶에 참여하고 있어서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그 미지의 삶 속으로 뚫고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랑이 생겨나기 위해 필요한 전부이며, 사랑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



레겐스부르크의 돔 옆 건물 입구.



기쁨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 그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어디서 그것을 포착해야 하는 걸까?



정신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정신 쪽으로 향한다. 정신이 진실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매번 정신은 스스로를 넘어서는 어떤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심각한 불안감을 느낀다. 정신이라는 탐색자는 자기 지식이 아무 소용없는 어두운 고장에서 찾아야만 한다. 찾는다고? 그뿐만이 아니다. 창조해야 한다. 정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오로지 정신만이 실현할 수 있고, 그리하여 자신의 빛 속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과 마주하고 있다.



전통중국의료원(TZM) 입구.



추억


그러다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그 맛은 내가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아주머니 방으로 아침 인사를 갈 때면, 아주머니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 차에 적셔서 주던 마들렌 과자 조각의 맛이었다.



마들렌


그것이 레오니 아주머니가 주던 보리수 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의 맛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아주머니의 방이 있던, 길 쪽으로 난 오래된 회색 집이 무대장치처럼 다가와서는 우리 부모님을 위해 뒤편에 지은 정원 쪽 작은 별채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집과 더불어 온갖 날씨의, 아침부터 저녁때까지의 마을 모습이 떠올랐다. 점심 식사 전에 나를 보내던 광장이며, 심부름하러 가던 거리며, 날씨가 좋은 날이면 지나가곤 하던 오솔길들이 떠올랐다. (...) 이제 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 씨 정원의 꽃들이, 비본 냇가의 수련과 선량한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




레오니 아주머니에게서 삶은 이렇게 늘 똑같이 흘러갔다. 그녀가 짐짓 경멸하는 척하면서도 깊은 애정을 품고 내 작은 일상의 반복이라고 부르는, 그 감미로운 단조로움 속에서 흘러갔다.



전통중국의료원(TZM)의 로비.



내가 가는 슈바빙의 치과 대기실에는 독특한 그림 한 점이 걸려있다. 대기실 소파  맞은편 벽면에 걸린 이 그림은 표면이 검게 칠해져 있고 왼쪽 윗부분과 오른쪽 아랫부분만 환하게 검은 칠을 벗겨냈다. 이런 기법을 뭐라 부르더라? 아이가 어렸을  곧잘 이런 그림책을 가지고 놀았었는데. 우리 삶을 저토록 명징하게 포착작품이 또 있을 싶다. 캄캄한 인생에도 몇 번의 빛나던 순간은 있었겠지. 왼쪽 그림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최고로 행복했던 날 Der glücklichste Tag'! 왜 아니겠는가. 사랑하고 사랑하, 귀한 사랑의 날들. 그럼 오른쪽은? 반대쪽 귀퉁이를 자세히 보지 않은 건 실수다.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과 맞짱 인생의 한 때는 언제일까. ? ? 죽음? 죽음보다 더한 이별? 글쎄다, 그런 이별도 있으려나. '모든 걸 잃어가면서' 당도할 그런 사랑의 종말이. 모르겠고. 사진 희미하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해석해 보시길.

 


슈바빙의 치과 대기실에 걸린 그림.



P.S.

*소제목은 임의로 붙인 것임.

**초록 부분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마르셀 프루스트, 김희영 역, 민음사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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