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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Oct 15. 2020

우리 인생의 이야기*

토마스 만의 <마의 산> 2


인생은 샌드위치 같다. 그 속은 나와 당신이 채워야 한다.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오래 걸리든**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어떻게든 완성된다. 시작하기만 한다면. 글쓰기처럼.


아, 나의 마의 산! 7일은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설마 7주나 걸리진 않겠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의 정상에 아직도 못 올랐다. 정상이 뭔가. 다시 산 아래로 내려와 신발끈을 고쳐 매고, 배낭의 무게를 줄이고, 물통의 물을 마시고, 까마득히 먼 산의 정상을 바라보며 서 있을 뿐이다. 그래서 마의 산인. 예전에도 동일한 수순으로 책을 었던 기억이 다. 그래도 이번만은 물러서지 않겠다.    번 도전해 보지도 않고 몸을 돌려 산을 등지고 하산할 수는 없지. 조금 덮어두었다고  줄거리와 주인공의 전사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다시 처음부터 읽기로 한다. 새로 첫 장을 펼치니 머리말부터 새롭다. 전에는 도대뭘 읽은 .


책을 느리게 읽지 않으면 놓치는 것이 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서둘 걸 서둘러야지. 책장 가득 세계문학을 꽂아놓고 마음만 바쁜 것도 문제다. 걸을 때도 한 발자국씩 옮기듯 책도 한 권읽어나갈 수밖에. 시간이 없다고? 그 말이 맞는 줄 알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건 카페에서 알바를 하며 알았다. 요즘은 넘치는 게 시간인데. 내가 남는 시간에 뭘 하더라.. 정답은 나왔다. 마음은 왜 바쁜가. 하는 일도 없으면서 왜 바쁘기만 한가. 왜 잠시도 가만있질 못하는가. 길가에 떨어진 노랗고 빨간 낙엽을 보다가 알았다. 마음을 붙잡아두는 방법이 독서였구나!


수요일은 내게 글을 쓰는 날이다. 쓸 게 있건 없건 한 편을 완성하는 게 목표다. 글감이 있어야 꼭 글이 써지는 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동력이 떨어질 때 이 대목에서 기운을 추스르게 된다. 글은 쓰다 보면 완성되는 것. 시월부터 시작한 카페 일도 비슷하다. 카페 주방에서 내가 만들어야 하는 샌드위치는 빵 종류만큼 다양하다. 처음부터 노트에 빵과 레시피를 하나하나 그리고 썼다. 출근 때는 지하철에서 노트를 보며 복습한다. 빵마다 바르는 소스와 넣는 재료가 다르다. 일을 시작한 지 2. 여전히 작업대 앞에 노트를 펴놓고 있다. 언젠가 노트가 필요 없는 날도 오겠지.


우리 카페에서 사용하는 빵들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긴 바게트, 짧은 바게트, 에 씨앗과 곡물이 빼곡하게 박힌 바게트, 건포도나 올리브가 들어간 빵, 이태리 빵 치아바타, 브렛첼, 토스트 식빵, 통밀빵인 폴콘 브로트, 검은 빵 바우엔 브로트, 부채처럼 넓은 브루스께타용 이태리 빵... 독일의 <정부 빵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독일에는 3,200 종류의 빵이 있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 정백하지 않은 통밀을 사용하고 있다고. 독일빵이 건강식인 이유가 여기에 있겠다. 요즘 우리 아이도 간식 도시락으로 시골풍검은 빵 바우엔 브로트 Bauernbrot를 잘라 버터를 바른 후 살라미나 치즈를 끼워간다. 건강한 게 맛있기도 한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퇴근 시간은 점심 때다. 우리 동네 지하철 계단에서 주워온 낙엽.



카페에서 일하는 오전 4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근무 시간은 오전 8시지만 언제나 15분 일찍 도착. 근무 첫날 카페 주인장 슈테판이 말했다. 내게 15분은 소중하니 출퇴근 시간표적어두라고. 다 모아서 수당을 계산해 주겠단다. 이런 가게 주인도 흔치 않을 것 같다. 매일 아침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 또한 좋다. 미소로 시작하고 미소로 마무리하는 곳이 일터라니. 매일 출근하지 않는 게 아쉬울 정도다. 카페 운영자답게 흐트러지지 않고 매사에 철두철미한 자세도 놀랍다. 몸도 재빠르고 상황 판단력도 빠를 것 같다. 일과 관련 사소한 지적을 할 때도 무례하지 않다. 이럴 때마다 배운다는 자세로 겸손 모드 유지는 기본.


슈테판과 내가 일하는 작업실 옆 주방 셰프는 아드리아노다. 포르투갈 사람인데 어찌나 온화하고 잖은지! 셰프들이 다혈질에 성격이 급하다고 알고 있는 내 선입견을 완전히 무너뜨린 장본인이다. 첫째 주 아드리아노가 물었다. 여기서 자기들과 일하는 게 어떠냐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최고라고 답해주었다. 한국어로 자신의 이름을 알고 싶어 해서 노트에 써주었더니 사진을 찍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직접 밝힌 놀라운 사실 하나. 사실은 쌍둥이란다. 쌍둥이 남동생은 포르투갈에서 부모님 곁에 산다고. 결혼해서 부모님께 손주도 안겨드려서 자기가 외국에서 싱글로 살고 있어도 마음이 편하다고. 이거 내 얘기 아닌가. 나도 그래! 나도 쌍둥이 맞고, 우리 언니가 엄마랑 한국에 산다고. 우리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파안대소했다.


둘째 주에는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 때문에 감기 기운이 있는 아드리아노에게 집에 있던 생강 엑기스를 나누어주었다. 셰프의 건강은 소중하다. 그는 주 6일을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J언니가 조카 편으로 보내준 소중한 생명수. 괜찮은 동료를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 때문에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아드리아노 왈, 나도 뭔가 너한테 가져다줄게. 흠, 기대해 보겠다. 새로 안 소식인데, 아드리아노가 여자 친구랑 살고 있는 집주인이 한국 사람이란다. 서로 좋은 친구 사이라고. 아드리아노가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교육을 잘 받은 거 같다고. 서로 바빠서 긴 설명을 듣지는 못했다. 가방 끈이 길다는 뜻일까. 교양이 넘친다는 뜻일까. 자세한 건 다음 근무 때 물어봐야지.


다시 <마의 산>. 토마스 만의 이야기는 7년보다 길었을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1912년에 단편으로 먼저 쓰기 시작했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일 년 전인 1913년 7월부터 1915년 8월까지 지금의 장편 마의 산을 쓰기 시작했다. 다시 전쟁이 끝나고 절반 가량을 쓴 후, 1924년 9월에 집필을 마쳤다. 집필 기간만 보면 7년보다 짧고, 시작한 날부터 계산하면 12년이 흘렀다. 토마스 만이 마의 산을 쓴 속도를 생각하다가 든 생각. 우리 인생의 이야기들은 얼마나 걸릴까. 내 인생의 이야기는 언제쯤 완성될까. 인생은 샌드위치 다.  속은 나와 당신이 채워야 한다.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오래 걸리든** 가지만은 확실하다. 어떻게든 완성된다. 시작만 다면. 글쓰기처럼. 



'나는 한스 카스토르프의 이야기를 금방 끝내 버리지 않을 작정이다. 일주일의 7일은 부족할 것이고, 7개월로도 모자랄 것이다. 작가인 내가 이야기에 휩쓸려 가는 동안 지상의 시간이 얼마나 지나가는지를 미리 정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그렇다고 설마 7년이나 걸리지는 않겠지!' (<마의 산> 토마스 만/을유출판사/ 홍성광 역)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바우엔 브로트/폴콘 브로트/카페 앞 가로수길.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따 옴.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따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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