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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l 28. 202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스완네 집 쪽으로 2


브런치 작가이신 Morgen님을 뮌헨에서 만났다. 뮌헨의 시청사 마리엔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헤어질 때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2021. 6월의 이자르 강변 둑길.



나의 지난 브런치 글을 검색하다가 2년 전 유월에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손에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계절 음식이 따로 있듯 책에도 계절 따라 생각나는 책이 있나 보다. 2년 전 독서는 2권에서 멈춘 모양이었다. 3권부터는 깊은 산속 호수처럼  페이지가 깨끗했으니까. 언젠가 구독자이신 즐거운 사라 님이 이런 댓글을 쓰신 적이 다. 항암 때 평소 읽고 싶던 문학책을 실컷 읽었다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가장 훌륭한 항암 치료'였다고.  말씀듣고 놀라면서도 반신반의한 적이 있다. 과연 그럴까. 책이 눈에 들어올까. 숨은 쉬어지고 밥은 넘어갈까. 직접 겪어 보니 다 되더라. 속도가 느리기는 해도.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 인간이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 


암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도 있겠지. 죽음 혹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 같은. 그러니 몸이 좀 아프면 어떤가. 건강할 땐 안 아팠나.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몸이 아니라면 마음이라도 아팠겠지. 삶은 시소 같다. 어디든 무거운 쪽으로 기운다. 균형을 맞추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책을 좋아했더니 산책도 하라며 암이 한쪽에 벽돌 같은 무게를 얹었다. 산책이 과하다 했더 반대쪽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이  손 두 발을 올려주었다. 프루스트 사후에 출간된 '갇힌 여인' 편인 9권과 10권도 독일로 오는 중이다. J언니가 며칠 전에 보내주었다. 책에 대한 이런 애정과 고마운 마음들이 자꾸만 무게를 보태 시소의 위쪽은 당분간 지상으로 내려올 것 같지 않다. 지난 6월은 스완과 오데트의 사랑에 무게 중심을 두고 살았다. 음악과 그림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특히 아름다웠다.



2021. 6월의 이자르 강변의 둑길.



어느 날 극장에서 옛 친구로부터 오데트 드 크레시를 소개받았을 때 물론 그녀가 스완 눈에 아름답게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런 유형의 아름다움에 무관심했고, 아무런 욕망도 느끼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일종의 육체적인 혐오감마저 들었다. (...) 그의 마음에 들기에 옆얼굴은 너무 날카로웠고 피부는 너무 약했으며 광대뼈는 너무 튀어나왔고, 얼굴이 전체적으로 너무 야위었다. 눈은 아름다웠으나 너무 커서 견디다 못해 축 처졌고, 얼굴 나머지 부분을 피로해 보이게 만들어 항상 안색이 좋지 않거나 기분 나빠 보이게 했다.*


지난해 어느 저녁 파티에서 그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연주되는 곡을 들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 그는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의 물질적인 질감밖에 음미하지 못했다. 그러다 가느다랗고 끈질기고 조밀하며 곡을 끌어가는 바이올린의 가냘픈 선율 아래서, 갑자기 피아노의 거대한 물결이 출렁거리며 마치 달빛에 홀려 반음을 내린 연보랏빛 물결처럼, 다양한 형태로 분리되지 않은 채 잔잔하게 부딪히며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을 때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 (...) 그러나 그가 들은 곡이 누구 작품인지를 아무리 해도 알 수가 없었고, 또 손에 악보를 넣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드디어는 그 곡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베르뒤랭 부인 집에서 젊은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시작한 지 몇 분 안 되어, 갑자기 두 소절 사이에 높은음이 길게 이어진 후에, 스완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 공기와도 같은 향기로운 악절이, 마치 그것을 품고 있던 포란기의 신비로움을 감추려는 듯, 음의 장막처럼 길게 뻗은 음향 밑에서 빠져나와 은밀하게 속삭이며 여러 갈래로 나뉘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악절에는 너무도 특별하고 너무도 개인적인 매력이 담겨 있어서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스완은 마치 길에서 보고 반했지만 만날 수 없어 절망하던 사람을 잘 아는 살롱에서 다시 만났을 때처럼 느꼈다. (...) 악절은 행복의 덧없음을 알고 있으며, 그 길을 가르쳐 주는 듯했다. 악절은 그 경쾌한 우아함 속에 회한 뒤에 오는 초연함 같은, 무엇인가 완결된 것을 품고 있었다. 



2021. 6월 뮌헨의 로젠 가르텐.



스완은 그녀가 보고 싶어 하던 판화를 가져갔다. 그녀는 약간 몸이 불편했다. 중국산 연보랏빛 크레이프 가운을 입고, 화려하게 수 놓인 천 자락을 외투처럼 가슴 위로 여미면서 그를 맞이했다. 그의 곁에 서서 풀어 내린 머리카락을 두 뺨을 따라 길게 드리우고, 피로하지 않게 판화 쪽으로 몸을 기울이려고 가볍게 춤추는 듯한 자세로 한쪽 다리를 구부리고는, 생기가 없을 때 종종 그러듯 머리를 기울이며 피로하고도 침울한 커다란 눈으로 판화를 바라보는 그녀 모습은, 얼마나 시스티나 성당 벽화 속 이드로의 딸 제포라 얼굴과 흡사했는지, 스완은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가 얼마 전부터 느낀 이 충만된 인상은 비록 음악에 대한 사랑과 함께 오긴 했지만 그의 그림에 대한 취향까지도 풍요롭게 해 주었기 때문에, 오데트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그 이름이 (...) 보티첼리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린-의 제포라와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기쁨은 더욱 깊어지면서 그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스완은 이제 오데트의 얼굴을 두 뺨이 지닌 아름다움의 가치나, 언젠가 그녀를 포옹하면 자신의 입술로 느낄 살갗의 부드러움에 따라 평가하지 않고, (...) 그녀와 같은 유형이 명료하고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녀 초상화 중 하나로 생각했다.


"뱅퇴유 소나타 소악절이구나, 듣지 말자!"라고 말하기도 전에, 오데트가 그를 좋아했던 시절의 모든 추억들이, 그때까지 그의 존재 가장 깊은 곳에 보이지 않도록 간직해 왔던 모든 추억들이, 사랑하던 시간의 그 갑작스러운 빛에 속아 사랑이 돌아온 줄 알고 잠에서 깨어나 날개를 치며 올라와서는 현재 그의 불행 따위는 아랑곳없이 잊어버렸던 행복의 후렴구를 미친 듯이 노래했다. (...) 그는 그 정도로 끝나리라고 생각했지, 사랑의 고통을 알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2021. 6월 산책길에서 만난 양귀비꽃.



사랑은 변해간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스완에게 모든 것이었던 오데트의 존재, 오데트란 풍경, 오데트와의 대화도. 스완이 오데트의 집에 담배 케이스를 두고 왔을 때, '왜 당신 마음도 두고 가지 않으셨나요. 마음이라면 돌려드리지 않았을 텐데' 라던 오데트의 달콤한 속삭임도. 오데트가 사랑한 스완의 모습도. 돈에 대한 무관심, 누구에게나 친절한 태도, 그리고 그의 자상함. 그러나 이런 미덕도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감탄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사랑의 허무함과 스완의 절망. 그에 대한 오데트의 감정이 결코 되살아나지 않으리란 것을, 또 행복에 대한 그의 희망 역시 더 이상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어느 저녁처럼. (안타까워 마시라. 스완은 3권에서 오데트와 결혼한다.)


브런치 작가이신 Morgen님을 뮌헨에서 만났다. 뮌헨의 시청사 마리엔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헤어질 때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직접 만든 노트도 선물로 주고 셨다. 감사한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했다. 알아주시리라 믿는다. 7월의 어느 날엔 동네를 산책하다가 길모퉁이 어느 가게 앞에서 꿈에도 그리던 능소화를 보았다. 화분에 심은 능소화. 독일어로는 이름도 모르는 능소화. 얼마나 그리웠던지 첫눈에 가슴속 깊이 들어와 앉기던 꽃. 독일에는 없는 줄 알고 실망하고 또 실망하능소화를. 능소화에는 스완을 슬프게 하던 오데트의 목소리가 있다. "전 언제라도 당신을 볼 수 있어요. 전 언제나 시간이 있어요." 그 후로 그녀는 전혀 시간이 없었다. 스완의 삶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까지도. 그럼에도 스완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행복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불행하지 않다'. 우리도 그렇다. 이런 책이 우리 곁에 머물러 는 한.



2021. 7월 동네 산책 때 발견한 능소화. 내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올리게 하는 꽃!


*초록 부분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마르셀 프루스트, 김희영 옮김, 민음사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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