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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ug 25. 202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1


스완의 사랑은 결실을 맺었고, 주인공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산책길에는 잃어버린 시간과 잃어버린 사랑의 발자국들로 빼곡하다. 팔월이 가기 전에, 스완이여 안녕! 아름다운 스완 부인과도 작별의 인사를.


뮌헨의 거리에서 만난 꽃과 그림.



침내 스완은 오데트와 결혼에 성공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 결혼에 놀랐다.' 화류계 출신에서 스완 부인으로 신분 상승한 오데트는 파리 사교계의 꽃으로 부상한다. 오데트와 스완의 딸, 질베르트를 사랑하는 주인공. 그러나 그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3권은 이렇게 난다. '오래전 질베르트로 인한 슬픔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5월이 되어 낮 12시 15분에서 1시 사이 시각을 어느 해시계 눈금판에서 읽으려고 할 때면, 마치 등나무 넝쿨의 그늘과도 같은 스완 부인의 파라솔 아래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을 회상하는 기쁨은 그 슬픔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3권은 스완 부인의 우아한 자태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듯하다.



6월의 로젠 가르텐 풍경. (작약은 지고 없다.)



갑자기 산책로 모랫길 위로 가장 아름다운 꽃, 정오에만 피는 꽃처럼 화려한 스완 부인이 뒤늦게 천천히 나타나 그녀 주위에 언제나 다른 옷차림의 꽃을 피웠는데, 특히 그녀의 연보랏빛 옷차림이 기억난다. 또 자신의 광휘가 가장 절정에 달하는 순간, 부인은 드레스에 흩뿌린 꽃잎들과 같은 뉘앙스의 커다란 파라솔 실크천을 기다란 꽃가루 위에 들어 올리며 펼쳤다. 모든 수행원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오전에 스완과 스완 부인의 집으로 그녀를 보러 왔거나 길에서 만난 클럽 회원 네댓 명이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화창한 날씨와 아직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태양을 즐기면서, 마치 방금 작품을 완성한 창조자처럼 자신감과 평온함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옷차림이 그들 가운데 가장 우아하다는 걸 확신하면서, 자신을 위해 또 친구들을 위해 자연스럽게, 지나치게 주의를 끌려고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관심하지도 않은 그런 옷차림을 뽐냈다. 작은 리본이 자기 앞에서 가볍게 물결치듯 나부껴도 리본의 존재를 모르지 않는다는 듯이.


자기 집 정원에서 좁은 보폭으로 산책하는 것과도 흡사한 그 고요하고도 한가로운 산책은 집이 가까워졌다는 걸 알려주면서 그녀 주위에 집 안의 상쾌한 그늘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듯했다. (...) 내 눈에는 정원의 꽃과 숲의 꽃보다 그녀의 부드러운 밀짚모자에 달린 꽃이나 드레스의 작은 리본이 더 자연스럽게 5월이라는 계절에서 태어난 듯 보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그리고 마른 꽃 라벤더.



이렇듯 우아한 여인이 이들 존재를 무시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밝고 더 가벼운 천의 드레스를 선택하고, 넓은 깃과 넓은 소맷부리로 목과 손목의 촉촉한 열기를 내보내면서, 마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가장 비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알고 있는 귀부인이 평범한 시골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즐겁게 자신을 낮추며 특별히 그런 날에 어울리는 시골풍 복장을 하는 것과 같은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붓는데도 아침과 봄과 태양은 그리 흡족해하지 않는 듯했다. 스완 부인이 나타나자 나는 즉시 인사를 했고, 그녀는 걸음을 멈추더니 미소를 지으며 "굿 모닝." 하고 말했다.


5월이 되면 사람들은 파리에서 가장 공을 들인 마구와 가장 단정한 제복을 입은 마부가 모는 여덟 걔의 스프링이 달린 커다란 무개 사륜마차에 앉아 따뜻한 야외 공기를 즐기며 흡사 여신인 양 나른하고도 위풍당당하게 지나가는 그녀 모습을 보는 데 익숙했다. 스완 부인이 걷는 모습은, 더욱 이 더위 때문에 느리게 걷는 모습은 어느 호기심 많은 시선에 굴복하거나, 예의범절 규칙을 우아하게 위반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는데, (...) 이처럼 스완 부인과 군중 사이에서 군중은 모든 장벽 중에서도 가장 뛰어넘기 어려운 일종의 부의 장벽을 느꼈다.



6월의 로젠 가르텐에 핀 작약. (지금은 지고 없다.)



훗날 귀족 사회 여인들과 교제하게 된 스완 부인을 포함하는 이 특별 계층은 포부르 생제르맹에 영합하는 처지였으므로 포부르 생제르맹보다는 열등했지만, 거기 속하지 않은 계층보다는 훨씬 신분이 높은 중간 계층이라 할 수 있었는데, 이 계층은 이미 단순한 부자 세계로부터 벗어나, 여전히 부자이면서도 유연성이 있어 어떤 목적이나 예술 사상을 추종하며 돈을 탄력적으로 만들고 시적으로 다듬으면서 미소 지을 줄 아는 계층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고귀한 부의 정상에 있으며 동시에 무르익어 아직 맛깔스러운 여름의 영광스러운 절정에 있던 스완 부인은 당당한 미소를 지으면서 상냥한 모습으로 불로뉴 숲 대로를 걸으며 그 느린 발걸음의 행진 아래로 히파티아마냥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지나가던 젊은이들은 그녀를 초조하게 바라보면서, 막연한 친분으로 인사를 해도 좋은지  어떤지 몰라 망설였다.


매 순간 파라솔이 쏟아붓는 그림자의 투명한 액체와 빛나는 유약 속에서 그녀 얼굴을 알아보고 늦게 달려온 마지막 기사들이, 마치 영화에서처럼 하얀 태양빛이 내리쬐는 길 한복판 위로 말을 타고 달려왔다. 그들은 일반 대중에게도 이름이 잘 알려진 클럽 회원들로 스완 부인의 친한 친구들이었다.



카페 마마스와 뮌헨의 광고판.



비는 내리는데, 오전과 오후 두 번 산책을 나간다. 평일이기도 하고, 날씨 탓도 있고, 갑자기 쌀쌀해져서인지 산책하는 사람이 적다. 그 와중에도 조깅하는 사람들. 그들의 달리기는 멈추지 않는다. 청년들, 중년들, 장년들, 노년들. 달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본다. 체격과 팔다리와 몸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 느리게라도 저 대열에 뛰어들고 싶다가도 눈 때문에라도 안되지, 한다. 의사가 안 된다고 했으니까. 눈 앞에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비문증은 좋아지고 있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어도. 어제는 작고 검은 점들이 보이길래 병원에도 갔다. 이상 무. 오늘은 점들이 보이지 않았다. 책은 읽어도 상관없단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걷고 또 걸으며, 스완이여 안녕! 아름다운 스완 부인에게도 작별을 고하는 팔월.



윈헨의 거리에서 찍은 사진들.



*초록 부분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마르셀 프루스트, 김희영 옮김, 민음사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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