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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l 10. 2022

빈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빈에서 폰이 깨지고 한 달


빈에서는 뭐 먹지, 를 쓰던 2주 전 토요일이었다. 빈에서 떨어뜨려 액정이 깨진 폰에서 노트북으로 사진을 몇 개씩 옮겨와 빈 여행기를 계속 쓰다가 2주만에 먹통. 사진 없이 빈의 음식 이야기를 올릴 수는 없었다. 3주 안에 온다던 갤럭시 폰은 4주 만에 도착. 그리하여 오늘부터 새 폰과 출발. 과장을 좀 보태자면, 인생을 새로 로그인한 기분이었다!


빈 구시가지의 로컬 레스토랑 <오펜로흐>. 비엔나 슈니츨과 굴라쉬(둘째줄) 마지막 줄 첫번째는 타펠 슈피츠. 고기는 어디 가고..


원래부터 미식가는 아니었다. 암에 걸리고 나서도 암에 좋다는 음식만 찾아먹지도 않았다. 워낙에 음식 자체에 관심이 없어서? 뭐 그렇다고 치자. 요리 자체가 스트레스였다고 하는 편이 겠다. 요리가 스트레스인 주부라니, 일단 자격 미달이다. 그러던 내가 변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할 리야 있나. 요리에 왜 이렇게 관심이 없을까. 심사숙고한 결과다. 나라고 맛있는 음식이 싫을 리가 있나. 내가 만든 음식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받는 스트레스가 커서 남편과 아이에게 미안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도전해봤다. 유튜브로 요리 배우기. 계기는 다림질이었다. 남편의 셔츠를 다려주다 유튜브로 먼저 공부해보았다. 몇 개를 섭렵하니 다림질에도 나름의 순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생각보다 쉬웠다. 다림질에 익숙해지자 든 생각. 그럼 요리도 가능하려나? 결과는 요리가 쉬워졌어요, 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담이 없어졌다. 요리에도 일종의 공식이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


그러다 빈에 갔다. 요리에 관심이 생기자 여행의 목표도 달라졌다. 빈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궁금했다. 지금까지 없던 일이었다. 이런 적극적인 자세에 가장 감동한 건 남편. 우리 남편의 미덕 중 하나다. 뭐든 적극적인 걸 좋아한다. 가이드북 노릇을 톡톡히 했던 노시내의 <빈을 소개합니다> (2013)에 소개된 곳 중에서 몇 곳을 골랐다. 첫날 저녁엔 올드 타운의 조금 비싼 로컬 레스토랑 중 한 군데를 가보기로 했다. <레스토랑 오펜로흐 Ofenloch>. 올드 타운 중에서도 관광객이 가는 곳보다 현지인 고객이 많고, 맛으로 승부하며 전통음식을 성공적으로 고급화시킨 곳이라고. 거기 말고도, 저자의 빈 토박이 지인들이 추천했다는 곳은 다음과 같다. 20세기 초반의 분위기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고, 변함없이 꾸준한 메뉴로 빈 시민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곳으로 라인탈러 Reinthaler, 바임 착 Beim Czaak, 가스트 하우스 푸들 Gasthaus Pfudl. 그리고 응용 미술관(MAK) 안의 외스터라이허 임 막 Österreicher im MAK. 빈에 가실 분들은 참고하시길.  


그래서 빈에서는 대체 무엇을 먹었냐고? 빈에 가면 꼭 먹어야 할 3대 전통요리가 있다. 나도 이번에 알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된장찌개, 김치찌개, 순두부에 해당한다니 느낌이 팍 오시리라 믿는다. 뮌헨에 오시면 두툼한 돼지 뒷다리살을 오븐에 구운 학센 슈바인(Hacksen Schwein)과 바이스 비어 (Weißbier), 굵고 흰 소시지를 세트로 먹어야 제맛이듯이, 빈에서는 우선 비너 슈니츨(Wiener Schnitzel/22,70유로). 돈가스는 빈이 원산지다. 여기에 비엔나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반드시 송아지 고기에, 맑은 버터기름에 튀기고, 튀기기 전 고기를 망치로 두드려 펴서 종잇장처럼 얇아야 한다고. 두번째 메뉴는 굴라쉬(Gulasch/22,70유로). 원래 굴라쉬는 헝가리가 원산지지만 오스트리아는 양대 세계대전 이전 오스트리아-헝가리를 합친 합스부르크 제국이었다. 빈은 600년 합스부르크 왕조의 수도. 위 책에서 읽은 굴라쉬에 대한 오스트리아 속담 하나를 소개하자면 '다시 데워서 맛있는 건 굴라쉬뿐.'이라나. 마지막으로 타펠 슈피츠(Tafelspitz/24,70유로). 우리나라의 갈비탕 느낌이랄까. 항아리 수제비처럼 작고 둥근 항아리에 담겨 나온다. 부드러운 소고기를 건져먹고 국물까지 싹싹 비웠더니 젊은 웨이터가 조금 놀라더라는. 아니 그럼 이런 진국건데기만 건져먹고 남기나?


참고로, 이 레스토랑에서 먹은 3인 기준 저녁 식사비는 99,10유로. 영수증 목록 끝에 Gedeck-Cover, 일명 수저와 테이블 세팅비가 1인당 3.30유로 총 9,90유로가 계산되어 있었다. 영수증 맨 아래엔 이런 글귀도 크게 새겨져 있고. 팁은 포함 안 됨! 10유로나 빼놓고 팁을 요구하는 저 당당함도 밉지는 않지만 팁은 5유로만 주는 걸로. 서비스로 나와야 할 빵에도 가격이 매겨져 있길래. 빈의 중심지 올드 타운 레스토랑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맛은 어땠냐고? 다행히도 훌륭했다! 메인 메뉴 셋 다. 아쉬웠던 건 굴라쉬가 수프가 아니고 고기로만 나왔다는 것. 다음날 로컬 카페 하벨카에서 작은 항아리에 담겨 나오는 전통적인 굴라쉬 수프를 먹었는데 최고였다! 겨울에 다시 와서 먹어보고 싶을 만큼. 첫날 최고 메뉴는 뭐니 뭐니 해도 비엔나 슈니츨. 또 하나 놀라운 발견은 오스트리아 맥주였다. 무슨 맥주가 그리 맛있나! 미안한데 독일 맥주는 저리 가라,였다. 책에서 소개한 3대 후식도 소개해보자. 두툼한 오스트리아식 애플파이 아펠 슈트루델 (Apfelstrudel). 잼을 넣고 반으로 접거나 둘둘 말아 나오는 팬케이크 팔라트 싱켄 (Palatschinken). 두툼하게 부친 팬케이크를 부침개처럼 뒤집개로 잘라 하얀 가루 설탕을 솔솔 뿌린 카이저 슈만 (Kaiserschmarrn). 이번에 빈에서는 아펠 슈트루델만 먹고 왔다. 아펠 슈트루델은 독일에서도 쉽게 사 먹을 수 있다.


<카페 하벨카>. 둘째줄 가운데는 아펠 슈트루델. 셋째줄은 굴라쉬 수프와 비엔나 소시지.


둘째 날과 셋째 날은 카페만 다녔다. 우리가 아는 낭만적인 카페 문화는 파리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카페 문화의 원조는 오스트리아 빈이었던 모양이다. 빈의 카페에는 차와 커피는 물론 간단한 음식과 다양한 신문이 구비되어 있다. 그보다 오스트리아의 카페 문화를 완성한 건 수많은 예술가들, 화가들과 음악가와 작가들의 대화와 존재 자체였겠지만. 둘째 날 점심을 먹은 곳은 빈의 중심지 슈테판 성당에서 가까운 전설의 <카페 하벨카 Cafe Hawelka>. 성당 아래쪽의 골목길을 들어가면 나온다.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진 곳인지 아시아 여행객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거기서 점심을 먹었는데, 내부가 1939년 개점 당시 그대로라서 카페 이름 앞에 '전설'이 붙은 까. 카페 하벨카는 1936년 오픈 이후 3년 만에 지금의 장소로 옮긴 후 하벨카 부부가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아들이 어머니의 생전 레시피대로 빵을 굽고 있다고. 50-70년대에는 문인, 화가, 건축가들의 모임 장소로 명성을 얻었다. 여기서 런치로 먹은 굴라쉬 수프 (8,60유로)와 디저트로 먹은 아펠 슈트루델 (4,60유로) 맛 또한 예술이었다. 한 가지, 아펠 슈트루델을 먹을 땐 바닐라 소스(3유로)를 추가로 주문하는 게 전통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보통은 같이 나오는데 여기선 따로 주문해야 했다. 젊은 남자 웨이터는 안 친절. 음료 포함 3인 런치 값은 51유로.


비엔나커피로 알려진 3대 커피도 먹어봐야 하니 빈에서는 이래저래 마음이 바쁘다. 우리에게 알려진 비엔나커피라메뉴는 따로 없고, 가장 비슷한 건 빈 사람들이 가장 즐긴다는 아인슈패너 Einspänner (4,70유로). 커피에 크림이 올려져 나온다. 카푸치노보다 조금 진한 멜랑게 Melange (4,60유로)도 비엔나커피로 쳐준다. 주의할 건 아이스커피를 주문하면 커피에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을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의 '아아'는 어디에도 없음. 내용물만 보자면 이태리의 아포가토 느낌. 셋째 날은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작은 카페에서 마무리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카페 이름이 진짜로 <작은 카페 Kleines Cafe>다. 카페가 작아서. 기억나시는지? 헝가리를 출발 빈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만난 두 청춘이 저녁에 노천카페에서 차를 마시던 곳. 점성술사 여인이 둘에게 운명 같은 덕담을 건네던 곳. 그들이 밤에 앉았던 예쁜 꽃무늬 소파가 있던 카페는 못 갔다. 둘이 노래를 듣던 레코드샵 <알테 운트 노이 Alte und Neu>도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비가 오고 날씨가 스산해서 테이블이 대여 섯개 밖에 없는 작은 카페의 아늑한 실내에 들어간  신의 한 수였다. 작은 카페에서 감동받은 그날의 수프는 가정식 감자 수프 (4,50유로). 빵이 딸려 나오는 비엔나 소시지 (6,30유로)도 기대 이상. 말씨가 조용조용하던 남자 웨이터의 과하지 않은 친절도 다시 오고 싶은 빈으로 기억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작은 카페에서 아이와 둘이 먹은 런치는 총 18유로.


빈에도 한국 식당이 있다. 전날 저녁 우리는 구시가지의 작은 카페에서 가까운 한국 식당 <수라>로 갔다. 폰이 깨지는 바람에 기분이 꿀꿀한 저녁이었다. 이름에 걸맞게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가격은 비싼 편. 대신 맛있고 양도 충분해서 불만은 없었다. 각자 메인을 하나씩 시켜서 배부르게 먹었다. 나는 해물 순두부 (17,90유로), 남편은 매운 닭찜(17,90유로), 아이는 떡볶이 (16,50유로). 순두부와 닭찜에는 공깃밥이 딸려 나왔고, 떡볶이에는 공깃밥 (5유로)을 추가했다. 음료와 밥값으로 3인 기준 70,60유로. 양이 충분해서 다른 건 안 시켰다. 아쉬운 건 전혀 친절하지 않더라는 것. 카드가 안 된다고 해서 남은 현금까지 탈탈 털었고. 어떻게 불친절했냐는 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법한데, 포스만 봐도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분께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고 주문을 했는데 인사도 안 받아주시고, 눈도 안 맞춰주시고, 웃지도 않으시고, 딱딱하게 독일어로 우리 남편에게 응대를 하셨다. 그러면 손님이 불편하지 않나. 너무 적게 시켜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공깃밥 추가할 때도 괜히 눈치 보이고. 나만 그런가? 한국 사람들은 왜 잘 웃지를 않을까. 놀라웠던 건 검색하니 빈 시내에 한국 식당이 엄청 많더라는 것.  


빈 여행 후 집에 돌아와 책꽂이에서 빈과 관련 있는 두 권재발견했다. 크리스티안 브란트 슈테터가 쓰고 박수철이 옮긴 <비엔나 1900년: 삶과 예술 그리고 문화>(예경/2013). (책 사이즈도 크고, 두께도 460페이지에 달하고, 가격마저 어마 무시했다. 페이지를 열면 화려한 화보에 압도당한다. 다녀 와서 클림트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책을 왜, 어떻게 독일까지 들고 왔는지 나도 궁금하다..) 다음은 합스부르크 왕조가 지배했던 빈 포함 동유럽 4개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의 수도 비엔나/부다페스트/프라하/브라티슬라바를 소개한 정태남의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21세기 북스 /2015).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알게 된 세 권의 책도 기억해 두려 한다. 정신과 의사이자 클래식 음악과 유럽 여행에 탁월한 안목을 가진 박종호의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김영사/2011). 이민희의 <비엔나는 천재다>(글누림/2019). 조성관의 <빈이 사랑한 천재들>(열대림/2007). 다시 빈에 올 기회가 다면 참고하고 다.


비포 선라이즈의 <작은 카페>에서 먹은 감자 수프와 비엔나 소시지와 카페 앞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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