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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ug 27. 2022

제인 오스틴과 크루즈 여행

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아일랜드

오스틴 책 위엔 아이의 손.



여름휴가에 들고 갈 단 한 권의 책을 고른다면? 올여름 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골랐다. 실수라면 <이성과 감성>을 같이 챙겼다가 마지막에 뺀 것. 두 권을 합하면 1000페이지가 넘길래 그럴 시간이 있을까, 짐이 무겁지 않을까 고민이 됐기 때문이다. 그게 실수라는 건 배를 탄 순간에 알았다. 배에서 할 일이란 게 별 게 없었다. 삼시 세끼를 먹고, 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고, 보드 게임을 하고, 저녁 9시 라이브 쇼를 보고, 오전이나 오후에 관광도 하고. 그게 다였다. 그러니 책 읽을 짬이 없을라고. 마음만 먹으면 말이다.



오른쪽 큰 배가 크루즈(위). 선실 모습(아래).



뮌헨을 출발한 것크루즈 여행 전날이었다. 아침 8시 뮌헨 중앙역을 출발, 하노버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북독일의 항구 도시 브레머하펜 Bremerhaven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경이었다. 뮌헨에서 하노버까지는 힐더가드 어머니 덕분에 가장 빠른 기차인 ICE의 1등석을  타고 가는 호사도 누렸다. 여행가방 두 개는 전날 크루즈 픽업 서비스 (2개/90유로)로 보냈기에 짐도 많지 않았다. 그날 저녁 브레머하펜의 코로나 센터에서 테스트도 했다. 코로나 음성 확인서가 있어야 배를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원 음성. 호텔에서는 이상하게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여행에 대한 설렘 때문은 아니었다. 나의 여행 철칙은 철저하게 기대 없음이. 실제도 그랬다. 기대가 크셨던 힐더가드 어머니는 여행이 시작되자 시큰둥하셨고, 기대가 없던 우리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렸다.


독일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크루즈는 아이다 Aida이다. 우리가 탄 크루즈 회사명은 푀닉스 Phoenix이고, 배 이름은 아르타니아 Artania. 아이다만큼은 아니지만 작은 배는 아니었다. 승객을 1400명까지 태울 수 있고, 배 안에는 9층까지 있다. 힐더가드 어머니는 이 배로 크루즈만 다섯 번째. 물론 우리는 처음이었다. 우리 가족은 셋 다 배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할머니와 같은 룸을 쓰는 아이는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시는 할머니의 이른 기상을 제일 걱정했다. 선실은 호텔의 소형 룸 사이즈 정도. 발코니가 딸린 직사각형 룸으로 출입문을 열면 왼쪽에 화장실/욕실과 책상, 오른쪽으로는 옷장이 두 개, 발코니와 가까운 양쪽 벽에는 1인용 침대가 각각 하나씩. 방만 보면 기숙사 느낌이 났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To go 카페의 출입문이 저렇게 예뻐도 되나?(위/오른쪽).



힐더가드 어머니가 초대하신 이번 크루즈 여행은 북독일 항구를 출발해서 도버 해협을 영국을 한 바퀴 도는 일정이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북쪽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 운 좋게도 에든버러는 여름 축제가 한창이었다. 도시 중심에 있는 에든버러 성을 먼저 본 후 걸어서 내려와 시내 구경을 했다. 성을 좋아하지 않은 우리는 곧장 시내로 걸어 내려왔다.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고 해까지 나와 완벽했다. 올드 타운의 중심지로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흄의 동상이 있던 보행자 거리 로열 마일 Royal Mile은 축제 분위기로 생동감이 넘쳤고, 눈길이 닿는 곳마다 공연 포스터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다시 오고 싶은 곳! 아이는 에든버러만 보고도 스코틀랜드가 좋아졌다고. 이런 게 여행의 순기능이 아닐까. (아일랜드의 첫 도시 벨파스트를 보더니 영어도 좋아졌다며 크면 영국에서 1년 정도 살고 싶단다! 이러다 런던까지 보게 되면?)


에든버러를 포함 5일 동안 돌아본 스코틀랜드의 작은 항구 도시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가게들은 당연히 스코틀랜드 체크무늬 모직 숍들. 색상도 고급스럽고 우아하고 따스해 보였다. 팔월 중순을 지났을 뿐인데 가을 날씨라 바람이 불거나 비라도 내리면 추웠다. 아이가 처음으로 산 반바지는 입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힐더가드 어머니가 쇼핑을 즐기시지 않는 게 아쉬울 뿐. 아이와 나는 구시가지를 걸으며 예쁜 숍들을 구경하는 게 취미인데 자주 성공하지는 못함. 만회할 방법은 다시 오는 수밖에. 그리하여 아이와 나의 여행 리스트 1번지는 에든버러가 되었다. 조금 놀란 것은 축제 시작과 함께 도시에 쓰레기가 넘쳤다는 것. 쓰레기 업체가 데모를 해서 그렇다고. 그럼에도 신기하게도 도시 이미지는 손상되지 않았다.



섬머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에딘버러(위). 시내에 있는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흄의 동상(아래).



스코틀랜드 마지막 날은 윌리엄 항구라는 이름의 조그만 도시였다. 그곳에서는 위스키 제조 공장을 견학하고 위스키 시음회를 했다. 솔직히 끝도 없는 설명에 지루했다. 위스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할 일이 있어야지. 시음을 하는 홀에서는 입만 댔는데도 목 안이 화끈거려 물을 반 병이나 들이켜야 했다. 진정한 위스키 애호가가 아니고서야 환호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우리의 안동 소주나 막걸리 제조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좋은 여행 상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에든버러부터 시작해서 작은 항구 도시까지 위스키 바가 많았던 이유를 알겠다. 스코틀랜드는 위스키를 사랑하는 동네였구나. 이번 스코틀랜드 여행에서 아쉬웠던 건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맥베스 Macbeth>의 배경이 된 코더 Cawdor 성이 코스에서 빠졌다는 것. 아쉽고도 아쉬웠다.


스코틀랜드 여행 중 인상에 남는 건 꽃들. 거리마다 집집 창문마다 꽃들이 얼마나 풍성한지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환해지고 즐거웠다. 이 꽃들의 향연은 아일랜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예쁜 문들. 가게든 집이든 문들의 색깔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독일처럼 건물 자체의 색깔이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출입문들은 얼마나 세련되게 칠해놨는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것 역시 아일랜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어로 스코틀랜드는 쇼틀란드라고 불린.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바람에 유로화를 못 쓰는 건 아쉬웠다. 북아일랜드를 뺀 아일랜드에서만 유로화를 쓸 수 있다. 대신 독일에서 쓰던 체크카드는 쓸 수 있음(영국의 1파운드는 1.20유로).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의 예쁜 문들과 꽃들.



이번 여행에서 놀란 건 크루즈 안 레스토랑과 바에서  일하는 서비스 담당 직원들이 대부분 필리핀(80%), 베트남과 인도네시아(10%) 사람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보인 친절함이었다.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알고는 자주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나와 아이는 900명이 넘는 승객 중 유일한 아시아 사람이었다). 크루즈의 직원들은 총 500명. 이중 400명이 아시아 사람이었는데 1년 중 평균 9개월~10개월을 일한다고. 1일 근무 시간이 너무 길어서 같은 아시아 사람으로 미안할 정도. 그런데도 대부분 친절하고 표정도 밝았다. 이상한 건 배에 와이파이가 안 되었다는 것(이게 가능한가? 육지에 도착하면 독일 로밍을 썼는데 연결이 왔다 갔다 했음).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의 펍에서 마신 기네스(아래/왼쪽)와 에일 맥주(아래/오른쪽).



스코틀랜드가 위스키라면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 펍에서는 맥주를 마셨다. 기네스와 에일 맥주. 본토에서 마신다는 것과 위스키보다야 백 배 나을 거라는 기대감마저 살짝 더해서 맛은 환상적! 힐더가드 어머니는 위스키도 맥주도 안 드셨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건 샴페인과 와인. 맥주는 쳐다도 안 보심. 며칠 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도 펍에 들러 맥주를 맛보았다. 기네스와 페일 맥주. 맛은 벨파스트의 에일이 나았다. 이번에 알게 된 건 북아일랜드(벨파스트)는 아일랜드가 아닌 잉글랜드에 속한다는 것. 당연히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사이가 안 좋겠지. 또 하나. 벨파스트는 타이타닉호가 만들어진 곳으로 타이타닉 박물관도 있다. 우린 못 갔다. 제인 오스틴은 어떻게 됐냐고? 5일 만에 다 읽었고, 지금은 다시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를 지나 지금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길고 긴 여행도 절반을 넘고 있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펍의 맥주. 기네스(위/왼쪽)와 페일(위/오른쪽). 가운데는 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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