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에서 삼 시 세끼

매일이 즐겁다!

by 뮌헨의 마리
아침의 오트밀/요구르트/삶은 계란/과일. 마지막 사진은 남편의 아침(아이는 주구장창 초콜릿 콘플레이크만..).



크루즈의 음식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겠다. 사실 기대는 없었다. 뷔페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나. 처음엔 맛있는 것 같아도 며칠만 지나면 질리겠지. 뷔페 음식이란 게 원래 그렇다. 그런데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한마디로 대만족!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맛있다. 남이 차려주는 음식이니 당연히 맛있겠지. 그것도 전문 셰프가 영양까지 고려해서. 크루즈의 셰프는 인도네시아 사람이다. 인도네시아 음식이 맛있다는 건 아는 사람은 안다. 주방 인력도 거의 아시아 직원들이다. 레스토랑은 총 4군데. 우리는 8층 뷔페에서 아침과 점심을, 2층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다. 3층에도 레스토랑이 있는데 힐더가드 어머니가 싫어하셔서 가 본 적이 없다.


내가 즐겨먹는 아침 메뉴는 오트밀과 플레인 요구르트, 깍둑으로 잘라놓은 과일과 삶은 계란 하나. 때로 남편이 들고 오는 계란 프라이도 하나. 작은 병 속에 우유와 함께 얌전하게 담긴 오트밀은 보는 것만으로 행복이다. 양은 적당하고 맛은 부드럽다. 휴가지의 아침 식사로 그만한 게 없다. 집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분위기나 모양새가 안 나온다. 그래서 노력 안 함. 왜냐고? 내가 차려야 하니까. 귀한 호두도 듬뿍 넣어 먹는다. 달콤한 디저트는 생략. 후식으로는 가지런히 썰어놓은 과일 한 접시. 주로 수박, 멜론도 두 가지, 흰색과 살구색. 파인애플과 파파야도 있다. 집에서 매일 신선한 과일을 먹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먹을 때마다 이런 호사가 있나 생각한다. 여행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 이런 내가 캠핑이나 콘도나 민박을 싫어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어머니 코 앞에서 눈치보며 건진 점심 사진들.



점심 때는 큰 접시에 샐러드와 익힌 야채, 생선과 고기 때로는 누들과 밥을 골고루 한 접시에 담아먹는다. 거기에 수프 추가. 후식은 이유 있는 생략. 생채소가 절반 이상이라 부피만 크지, 생각보다 양은 많지 않은데 힐더가드 어머니가 보실 때마다 놀라서 물으신다. 그걸 다 먹을 거냐고. 이럴 땐 어깨를 으쓱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걸 말씀이라고요.. 조심스럽게 관찰한 결과 어머니는 큰 접시에 조금 들고 두 번 가져와서 드심. 그래서 조금 드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번이나 한 번이나 총량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임. 그래서 약간 억울한 나. 남편 말대로 뜻은 없으신 듯하나 기분이 좋지는 않다. 말을 생각나는 대로 하시는 스타일이라 어쩔 수도 없다. 독일어로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은 없는 모양이다.


할머니 눈치 때문에 나 양껏 못 먹고 있어, 잉잉. 어머니가 디저트를 가지러 가신 사이에 슬쩍 속마음을 흘렸더니 아이 왈, 그런 걸 왜 눈치를 봐? 그리고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곁들였다. 그래도 다이어트도 되고 좋은 거 아니야? 그, 그렇지! 말은 맞다. 애들은 어쩌면 저리 바른 소리만 해대는지. 눈치 있는 남편은 옆자리에서 말없이 미소만. 이럴 땐 무슨 말을 해도 와이프한테 좋은 점수받기 어렵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거지. 참, 이럴 때 스트레스를 이기는 나름의 비법도 터득했다. 샐러드 위에 고춧가루, 파슬리, 구운 마늘, 양파, 올리브 오일에 절인 마늘 소스를 듬뿍 끼얹는다. 배 안에서는 마스크가 필수라 마늘 냄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마스크는 레스토랑이나 카페 테이블에 앉을 때만 벗을 수 다.



아침과 점심 뷔페 테이블(위). 저녁 테이블(아래).



저녁도 할 말이 있는 편. 2층 레스토랑에서 먹는데 코스 요리이고 뷔페식 아님(여기를 혼자 찾아가다가 길을 잃고 헤맨 적 있음. 남편과 아이가 걱정하며 찾으러 나와 계단에서 극적으로 만남). 전채, 샐러드와 수프, 메인은 소고기나 생선 요리, 누들 중 하나를, 후식으로는 가지 중 택 1. 아이스크림/쿠헨/과일/조각 치즈. 나는 주로 과일을 먹는다. 전채 요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한다. 스시 한두 점이나 얇은 소고기 편육이 나올 때가 좋다. 차가운 메뉴로 양은 소량이다. 당연하다. 앞으로 나올 메뉴들이 많으니까. 샐러드도 양은 적다. 신선한 야채는 언제나 옳으니 꼬박꼬박 챙겨 먹는 편. 수프?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한다. 주 고객이 독일 사람들이라 맛은 짠 편이다. 뜨겁게 나온다는 게 장점. 제일 맛있었던 건 단호박 수프. 카레 수프는 너무 짜서 물을 타서 먹었고, 기대했던 양파 수프는 맛이 없었다.


이제는 메인이 나올 차례. 주로 소고기 메뉴를 고른다. 단백질은 중요하니까. 드물게 오리 고기가 나온 적도 있다. 물론 먹었다. 맛있었다. 메인 요리도 양은 적당하다. 양이 많다고 느낀 건 한 번 돈가스가 나왔을 때. 남편과 나는 각각 돈가스와 생선 요리를 시켰는데 반반씩 먹은 후 접시를 바꿔 먹었다. 아이는 혼자서 해치우고 배가 불러서 디저트로 주문한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했다. 메인 요리 하나만 시켰는데도. 어머니도 샐러드와 메인, 후식으로 과일을 드실 뿐. 남편과 나만 코스대로 다 시킨다. 난 궁금해서. 어머니가 싫어하시는 게 또 있는데 음식 사진을 찍는 것. 한 번은 이러셨다. 너, 그 사진 다 찍어서 누구한테 보내니? 아무한테도 안 보내는데요. 글에 쓸 사진을 고르려고요. 이 멘트는 우리가 자주 반복하는데도 자주 잊으신다. 음식 앞에서 사진 찍는 게 못마땅하신 거다. 그분들의 정서가 아닌 건 안다. 점잖은 디너 테이블에서 사진은 좀 그렇지. 그래도 어쩌나. 난 찍어야 는데. 이건 어머니가 익숙해지실 수밖에.



전채/샐러드/수프.


메인 요리와 과일. 아이스크림은 아이의 디저트.



드레스 코드에 대해서도 한 마디. 화이트 앤 블랙의 엘레간트한 복장을 요구한 건 지금까지 한 번밖에 없었다. 아침과 점심은 캐주얼한 차림이 적당하다. 아무도 차려입고 아침을 먹으러 오진 않기 때문. 저녁엔 당연히 깔끔하게 입어주는 게 낫다. 남자들도 셔츠 차림이 많다. 살펴보니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격식을 차린 드레스를 입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저녁에 청바지는 절대 안 된다고 디너 복장을 강조하셔서 좀 챙겨 오긴 했는데. 내가 보기에 신경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반반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반바지나 쇼트 팬츠는 곤란하다. 신발도 구두가 낫다. 디너 복장은 너무 지나치지도 너무 무시하지도 않는 게 최선이겠다. 그게 어느 선이냐고? 슬리퍼나 조리 샌들이나 운동화나 등산화에 운동복, 등산복, 점퍼, 야구 모자, 등산 모자를 쓰고 등장하면 당연히 눈에 튀겠지. 그 정도 상식만 기억해도 큰 실수는 면할 수 있다. 독일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조금 덜 격식을 갖추는 것 같다. 데이 트립 때는 거의 방풍 방수 점버 차림이니까.


힐더가드 어머니의 당부 중 또 한 가지는 배 안에 세탁기와 건조기 서비스실이 있어 동전을 넣고 세탁할 수 있으니 옷을 2주 치를 챙겨 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 실제로 3유로를 넣고 세탁기를 사용해봤다. 건조기는 무료로 무한 사용 가능하고, 다리미도 무료였다. 건조기를 사용하니 아이와 남편의 티셔츠는 다림질이 필요 없을 정도. 남편의 셔츠는 살짝만 다려줘도 되었다. 다만 세탁기에 선택 사항이 많아서 골치 아픈 건 남편과 같이 가서 해결함. 손빨래를 해서 발코니 의자에 너는 것은 권장하지 않음. 보기에도 안 좋고 바람에 날려갈 수도 있고, 날씨가 안 좋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급한 건 배 안의 상점에서 살 수도 있다. 옷가게도 있음. 식사 시 커피, 차, 와인은 무료. 다만 병에 든 미네랄 워터는 룸 번호를 말하고 체크 아웃 때 정산함. 식사 때를 제외한 카페나 바 이용 시 음료/차/커피는 개인이 지불함.



배에서 본 바다 1



삼시 세 끼만큼 좋은 건 밤에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일. 오후 6시에 저녁을 먹고, 7시 30분에 보드 게임을 하고, 저녁 9시 쇼를 보고 10시 전에 룸으로 돌아온다. 밤늦게 주무시고 새벽에 일어나시는 어머니의 루틴 때문에 별로 즐기진 않지만 쇼 타임까지 동행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이후 바에서 와인까지 한 잔 하시고 싶어 하시지만 남편도 나도 그때쯤이면 지칠 대로 지친 상태. 아침은 새벽에 일어나시는 어머니가 7시쯤 먼저 식사를 하시고, 우리는 8시쯤 먹으러 간다. 어머니 시간에는 맞추기 어려워서. 밤 10시부터 12시까지가 가장 편안한 시간이다. 배에서는 남편이 잠을 잘 못 자길래 발마사지를 해준다. 그러면 금방 잠이 든다. 발코니의 창문을 조금 열고 듣는 바람소리, 파도소리, 밤바다 소리도 도움이 된다. 남편이 잠들면 나는 책을 읽는다. 이럴 땐 침대가 양쪽 벽으로 떨어져 있는 게 신의 한 수. 제인 오스틴을 읽기 좋은 크루즈의 밤이다. 한번 읽은 책을 지루한 줄 모르고 다시 읽고 있다.



배에서 본 바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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