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이야기

더블린 이야기도 덧붙임

by 뮌헨의 마리
리버풀 항구(위). 비틀스 스토리(가운데). 비틀스 스토리 가는 길인 앨버트 도크 전경(아래).



리버풀 이야기를 해야겠다. 알다시피 리버풀은 잉글랜드에 속한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거쳐 드디어 잉글랜드. 그사이 여권 검사도 몇 번 했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그리고 잉글랜드까지. 잉글랜드로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른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는 유로화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도 기회가 없었다. 다른 도시에서는 가이드 투어를 한 후 1~2시간의 자유 시간이 있어서 선물도 사고 쇼핑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구시가지의 뒷골목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더블린에서는 그게 없었다. 가이드 투어의 단점. 구시가지를 꼼꼼하게 돌아본 것까진 좋았지만 말이다. 더블린까지 와서 제임스 조이스를 못 보고 가다니. 사무엘 베케트도. 버스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재빨리 오스카 와일드의 동상 사진을 찍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그의 동상이 있는 시내 공원은 꼭 갈 거라 생각하고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오스카 와일드가 더블린 출신이란 것은 이번에 알았다. 여행의 장점.


말이 나왔으니 더블린 이야기를 가지 해야겠다. 더블린에서 투어 마무리는 펍 방문이었는데, 더불어 더블린 시내 투어에서 기억에 남는 건 구시가지 안의 마켓이었다. 서울의 재래시장 같은 분위기랄까. 그런 곳에서 자유시간을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관광객들이 쇼핑을 해야 도시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나. 시장 입구의 테이크아웃 포차에서 남편이 커피를 한 잔 산 게 다였다. 시장 끝 카페는 분위기가 남달랐는데. 토요일 오전이라 시내의 모든 가게가 문을 열기 전이었다. 한 가지 더 좋았던 건 파리의 센 강만큼 예뻤던 더블린의 리피강. 하페니 다리는 순백의 레이스처럼 예뻤고, 팔월 말의 마지막 여름 햇살과 푸른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종합 선물 세트처럼 보태졌다. 하페니 다리를 건너 옆의 다리까지 걸어가며 문학의 향기 가득한 카페를 발견, 두 번째 다리를 건넜을 때는 길바닥에 새겨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프린팅도 만났다. 내친김에 조이스의 동상까지 만났으면 좋았으련만. <율리시스>? 물론 안 읽었다. 조이스는 어려울 거 같아서. 의식의 흐름이란 게 원래 그렇지 않나. 조심해야 한다. 내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남의 의식까지 따라가다 정신줄 놓기 십상. 문학 수업을 들을 때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를 읽다 실제로 경험한 적 있음.



더블린의 리피강과 하페니 다리.


무슨 바 Bar 가 저리 멋진지(위). 조이스 제임스의 <율리시스> 프린팅과 시나 공원의 오스카 와일드 동상(가운데). 템플 바와 더블린 투어 버스(아래).



다시 리버풀로 돌아가자. 죄송한데, 축구팬이 아니라서 축구 얘기는 못하겠다. 대신 <비틀스 스토리 하우스>에 들른 이야기. 비틀스에 관심이 있었던 건 나뿐이었다. 우리가 살면서 리버풀에 올 일이 몇 번이나 있을라고. 온 김에 들르는 게 정답이겠다. 비틀스 스토리 하우스를 찾아가는 길도 좋았다. 큰 도로가 아니라 항만을 낀 뒷 건물 앨버트 도크 쪽으로 걸어갔는데 카페와 레스토랑과 볼거리 가득한 가게들을 보는 즐거움이 컸다. 앨버트 도크는 옛 조선소를 현재 예술가촌으로 개조한 곳이라고. 결론만 말하자면 비틀스 스토리 하우스는 딱 2%가 부족했다. 비틀스 노래를 실컷 감상하게 될 거라는 기대는 채워지지 않고 침묵 속에 오디오 설명만 들었다. 한국어 설명이 있는 건 반가웠지만 반 시간 이상 오디오만 듣는 건 지루했다. 비틀스 하우스에 왔으니 비틀스 노래를 듣고 싶다고! 마지막에 존 레넌과 오노 요코가 살았던 뉴욕의 화이트 룸에 와서야 비로소 <이매진 Imagine> 한 곡을 온전히 들을 수 있었던 게 위로라면 위로가 되었다. 비틀스 노래를 듣는 부스가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진짜 팬들은 비틀스 스토리를 듣고 리버풀 시내의 캐번 클럽과 캐번 바로 달려간다고.)


오디오 설명 중 비틀스가 뉴욕 공연을 갔을 때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난 에피소드도 기억에 남는다. 존 레넌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팬이었는데, 그를 만났을 때 너무 떨리고 긴장해서 아무 말도 못 했다나.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 그들을 보고 엘비스가 그랬단다. 저 보러 와서 얼굴만 보고 계시려면 가겠다고. 모두가 한바탕 웃고 나서야 유쾌하게 대화가 시작되었다고. 유머란 그런 것이다. 유월이었나. 뮌헨에서 엘비스 프레슬리 영화를 본 기억도 났다. 당시엔 마음이 아파서 글을 못 썼는데 엘비스 프레슬리 얘기가 나오니 다시 생각난다. 수줍음 많던 청년이 신들린 듯 부르던 노래와 춤.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많은 혹사를 당하고 스러진 영혼. 매력적이고 매혹적이라 더욱 가슴 아프던 존재. 영화가 끝나고 울었다. 그러자 함께 갔던 남편과 아이가 이렇게 묻는 게 아닌가. 왜 우냐고. 대답도 안 했다. 이럴 때 떠오르는 사자성어는 어이상실.



비틀즈가 살던 화이트 방(둘째줄)과 비틀즈가 300회 가까이 공연한 캐번 클럽(셋째줄 왼쪽). 비틀즈 스토리 앞에서 기뻐하며 사진을 찍던 올드 팬과 미래의 팬(아래).



마음 아픈 얘기를 하니 하나가 더 떠오른다. 그날 우리가 비틀스 스토리 하우스를 다녀와서 크루즈에서 저녁을 먹을 때였다. 리버풀이 항구 도시라 배가 항구에 정박했다. 그 말은 배에서 내려 바로 시내 구경이 가능하다는 뜻. 다른 곳에서는 배가 바다에 떠 있는 상태로 보트를 타고 가거나, 육지에 도착해서도 버스로 오랜 시간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리버풀에서는 그런 불편이 없었다. 그러자 배에서 일하던 아시아 종업원들이 시내 구경을 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스크와 유니폼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그들의 모습은 젊고 경쾌했다. 그들이 일만 하지 않고 구경도 할 수 있다 생각하니 나 역시 좋았다. 힐더가드 어머니가 물으셨다. 음료와 와인을 서빙하는 젊고 밝은 아시아 남자 직원에게. 오늘 시내 투어 다녀왔나요? 비틀스 하우스도 보고요? 앗, 비틀스 하우스는 입장료가 비싼데. 그가 말했다. 아뇨, 비틀스 하우스는 못 갔어요. 대신 사진만 찍었죠. 쉬는 시간이 짧거든요. 대답을 듣기도 전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1시간이거든요. 쿵!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의 눈이 촉촉했다. 아이고, 먼 곳의 가족들에게 보여주려고 폰을 들고 시내로 향하던 발걸음이 얼마나 촉박했겠나 생각하니 마음이 참. 그리고 곧바로 일터로 달려왔겠지.


또 생각난다. 아이와 내가 투어가 없던 오후에 자주 가던 3층 도서실 앞 카페. 그곳에서 서빙을 하던 베트남 남자가 있었다. 30대 중반쯤 되려나. 고국의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내가 근무 시간이 길어서 힘들지 않냐 했더니 그의 대답이 그랬다. 아이도 나도 문득 숙연해져 창밖의 바닷물에 마음을 한번 담갔다 나온 심정이었다. 한번 배를 타면 9개월이나 10개월쯤 일하고 고국에 돌아간다고. 자기와 함께 이 크루즈에서 일하는 400명의 아시아인들 모두가 가족들을 위해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긴다고. 그러자 중동에서, 원양어선에서, 독일에서 간호사나 광부로 일하셨던 분들이 떠올랐다. 그가 아이에게 말했다. 너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 한국에 돌아가서 좋은 일을 하거라. 자기의 조국을 잊어서는 안 된단다. 크루즈 여행을 하다 독립투사를 만난 것 같은 감동을 느꼈다면 오버인가. 아이는 더욱 숙연해져 말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5유로를 건네며 진심으로 고맙다 하자 어쩔 줄 모르며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아이에게 보기에도 멋지고 맛도 훌륭하던 주홍빛 음료를 가져다주던 선량함.


아이가 영어책을 읽게 된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항구 도시인 리버풀이 그토록 활기차고 산뜻할 줄은 몰랐다. 리버풀 시내에서 대형 서점을 만났을 때 갑자기 떠오른 생각. 어떻게 하면 아이가 영어에 관심을 가질까. 아이가 좋아하던 책이 시리즈로 영어책을 독일어로 옮긴 거라는 생각이 났다. 오홋! 역시나 아이가 솔깃해했다. 파파와 함께 아이의 최애 책을 사러 보냈다. 총 6권인데 딱 한 권이 있더란다. 이 시리즈는 루비 레드포드라는 여자 아이가 주인공인 탐정 소설이다. 탐정 소설 하면 또 영국 아닌가. 아이는 배로 돌아오자마자 책을 펼쳐 들었다. 독일로 가자마자 저 시리즈들 다 주문하기로 남편과 이야기가 끝남. 다행히 배 안에 아이와 내가 좋아하는 바가 있다. 도서방 앞인데 해도 들어오고 소파도 밝고 안락해서 좋다. 책이 두꺼워서 여행 중에 끝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집에 돌아가서도 독서가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으로 딜을 할지는 고민해 봐야겠다.



리버풀의 대형서점에서 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책을 찾았다(위). 리버풀 시내(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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