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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n 18. 2022

빈에 왔으면 뮤지엄이지

레오폴드 뮤지엄

클림트 <죽음과 삶> (레오폴드 뮤지엄, 빈)



빈에 오기 전부터 고민은 시작되었다. 기차로 빈에 도착하고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고 서랍장에 몇 안 되는 옷가지들을 차곡차곡 정리할 때도. 짐가방은 핸디캐리 사이즈인 아이의 여행가방 하나로 해결했다. 코로나 이후의 여행은 이전과는 다르게 시작하고 싶었다. 어떻게 다시 찾은 일상인가. 최소한의 짐으로 다니기. 지금까지 실천해보지 못한 영역이었다. 남편도 나도 아이도 각자 백팩이 있어 가능했다. 남편은 업무용 노트북을, 나는 여행 책자와 우산과 물병 그리고 아이는 책과 한국 과자. 문제는 남편과 아이가 뮤지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이해는 한다. 사람 많지, 그림도 많지, 미로 같은 전시실은 무지막지하게 크지. 발을 들이면 최소 30분에서 한두 시간. 아이와 남편은 앞쪽, 나는 뒤쪽에 해당했다. 나 역시도 더 오래 있으면 멀미가 난다. 그림의 바다에 난파당한 기분.


의 상징인 쇤브룬 궁전을 두고도 오래 고민했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짧은 일정을 고려할 때 제대로 된 관람은 둘째 날 하루뿐. 가는 날은 피곤하니 호텔에서 쉬어야지. 저녁도 먹어야지. 저녁 무렵 구시가지도 걸어봐야지. 쇤브룬 궁전에 반나절을 투자하려면 첫날 저녁 뮤지엄 일정을 넣어야 하는데, 다음날 대망의 클림트와 에곤 실레와 만나기도 전에 동반자들이 파업을 할 우려가 있었다. 무리는 말자. 날씨도 안 따라주는데. 이틀 동안 바람이 불고 비가 흩뿌렸다. 카타리나 어머니가 추천하신 구시가지 입구 국립 오페라와 칼스 플라츠에서 가까운 알베르티나 뮤지엄 Albertina 은 뺐다. 토끼가 상징이고, 알베르티나 플라츠에 있다. 훈데르트 바서 뮤지엄 Museum Hundertwasser 도 제외. 구시가지에서 벗어나 있다. 구시가지 남쪽에 위치한 유명한 나쉬 시장 Naschmarkt 도 다음 기회로 미뤘다. 뮌헨의 빅투알리엔 마켓과 비교해보는 즐거움이 쏠쏠할 듯했지만. 다음에 오면 토요일마다 거기서 열린다는 벼룩시장도 구경하고 싶다.



에곤 실레 <자화상> (레오폴드 뮤지엄, 빈)



포기한 곳이 더 있냐고? 당연하지! 구시가지의 노른자인 슈테판 플라츠 근처에 있는 모차르트 하우스와 슈테판 플라츠 아래쪽에 있는 리터라투어 뮤지엄. 일명 문학 하우스인데 여기서 슈테판 츠바이크를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패스. 슈테판 플라츠의 서쪽 구시가지 끝에는 베토벤 하우스도 있다. 구시가지를 벗어나 베토벤 하우스 위쪽으로 프로이트 하우스. 더 위로는 슈베르트가 태어난 하우스도 있고. 참고로 슈베르트가 운명한 곳은 나쉬 시장 아래쪽. 거기서 더 서쪽으로 가면 하이든 하우스. 아이들과 가시는 분들은 구시가지에서 북쪽으로 도나우 강변 지나 프라터 슈테른 Praterstern 역을 추천한다. 런던 아이 같은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대형 기구가 있다. 우리말로는 대형 대관람차. 때론 번역된 우리말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빈에도 있다. 리젠 라트 Riesenrad. 직역하면 대형 수레바퀴라는 뜻이다. 헤세의 작품에도 있잖나. <수레바퀴 아래서 Unterm Rad>. 지하철 U1/U2로 갈 수 있고, 프라터 한 구역 전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하우스도 있다.          


레오폴드 뮤지엄은 구시가지 칼스 플라츠 근처에 있었다. 첫 뮤지엄 방문은 아이와 둘만 갔다. 남편은 호텔방에서 전화 콘퍼런스가 있으시다고. 아내의 상심을 고려해서 당일 아침까지 언급도 안 하시다가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기분 좋게 호텔방으로 올라와 외출 준비를 하는데 통보를 하시네. 맞긴 하다. 출발도 하기 전에 미리 기분 나쁠 이유야 없지. 대망의 하이라이트는 셋째 날. 오후 출발인데 본인은 새벽에 뮌헨으로 가셔야 한다고. 이건 미리 알려주었다. 체크인 때 셋째 날 조식을 두 명만 예약해야 하니까. 아쉽지만 바쁜데 따라와 주신 게 어딘가. 대신 구시가지에서 점심을 먹고 벨베데레 궁전과 클림트 입체 그림전을 같이 보는 걸로 합의를 했다. 우반을 한번 갈아타고 칼스 플라츠로 가는 대신 트람을 타고 조금 걷기로 했다. 이번 여행에서 길 찾기로 가장 편했던 건 호텔 체크인 카운터에 비치된 1장짜리 비엔나 시티맵 Vienna City Map과 구글 지도였다. 비엔나 시티맵은 앞면은 구시가지, 뒷면은 비엔나 시 전체와 대중교통 지도를 한눈에 볼 수 있어 늘 들고 다녔다.   



클림트 <피아노 앞의 슈베르트>, 에른스트 슈퇴르 Ernst Stöhr <호숫가의 연인>



레오폴드 뮤지엄에는 에곤 실레의 그림이 있다. 표를 사고 백팩과 얇은 겉옷과 우산을 락커에 넣고 입구에 선 가드에게 어떻게 관람할지 문의하니 4층에서 아래로 내려오란다. 4층과 3층에 있을 건 다 있다. 에곤 실레도 클림트도. 에곤 실레의 자화상들. 젊은 나이에 전쟁으로 요절하지만 않았더라면 엄청난 작품을 남겼을 것 같은 화가. 그 이른 나이에도 저토록 많은 작품을 남기고 간 걸 보면. 가장 아쉬운 두 화가 중 한 명인데, 다른 한 명은 독일의 청기사파 화가 아우구스트 막케다. 레오폴드 뮤지엄에서 보고 싶은 작품은 단 하나였다. 클림트의 <죽음과 삶 Tod und Leben(Death and Life)>. 죽음과 삶이라니. 삶과 죽음도 아니고. 빈 지도의 뮤지엄 광고란에서 처음 보고 반했다. 아기를 안고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의 평온함. 아기는 소녀로 여인으로 노파로 변해 가겠지. 가운데를 장식하는 건 근육질의 남성과 여인의 건강하고 눈부신 육체. 그 삶을 둘러싼 화려하고 영롱한 빛깔들. 또다른 세 여인의 얼굴도 보인다. 기대와 고통과 고요한 기다림 혹은 체념의 베일이 드리워진. 왼편에 비켜 있는 죽음의 모습도 생각보다 살벌하지 않다. 죽음의 사자의 양손에 든 빨간 방망이마저 위협적이지 않을 정도. 레오폴드 뮤지엄의 팸플릿을 장식하는 것도 클림트의 이 그림과 에곤 실레의 자화상이었다.


클림트는 대관절 어떤 사람이기에 저토록 풍요로운 상상력과 표현력을 갖추게 됐을까. 저 색채감은 또 어떻고. 예술이 어디까지 위대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단 한 편의 그림 속에 꽉 찬 무한한 영감과 서사.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고 들뜨게 하고 환희를 느끼게 만드는. 저승사지의 외투에 셀 수 없이 많은 십자가는 또 어떤가. 무심한 듯 그러나 꼼꼼하고 정교하기까지. 어떻게 그림 하나에 진지함과 엄숙함과 여유로움을 완벽하게 하나로 구현해낼 수 있는 건지.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잘 차려진 식탁을 보는 것 같다. 이번 생이라는 선물은 저 깊이 모를 진록색의 심연 속에서도 영원히 빛을 잃지 않을 보석 상자와도 같은 게 아닐런지. 두어 개 기억에 남는 그림들이 있다. 이런 건 직접 와서 보지 않고는 발견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클림트가 그린 피아노 앞의 슈베르트. 저들은 저렇게 같은 도시를 살다 갔구나. 처음 보는 화가 에른스트 슈퇴르의 호숫가의 연인도. 높고 깊은 알프스를 비추는 호수들이야말로 오스트리아다운 정서가 아닐까. 그림 한 점이 책 한 권과 맞먹는 감동을 줄 때 드는 생각. 역시 빈이다. 빈의 화가들, 빈의 뮤지엄들.

    


클림트와 레오폴드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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