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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n 08. 2022

빈으로 떠나는 여행

<기나긴 이별> 후에


뭘 해도 쓸쓸한 사람이 있다. 필립 말로.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이 사내가 이렇게 말할 때는 더더욱. '이별을 할 때마다 조금씩 죽어 가네'. 다시 무지개를 보았다. 갑자기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무지개. 작별의 말은 없었다.


2022.6.6 비가 온 줄도 몰랐는데 히늘에 나타난 무지개.



돌아보면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추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슴이 두근거려 견디기 때문이다. 긴장을 오래 버티지 못해서 공포물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는.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하고, 좀비물 같은 것도 못 본다. 어릴 때 제일 무서웠던 것 중 하나가 해마다 TV에 나오던 납량 특집이었다. 압권은 시골집 마당에서 보았던 <전설의 고향-구미호 편>(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전설의 그 장면!) 청소년기였던가. 영화관에서 단체 관람으로 본 <13일의 금요일>도 트라우마가 된 영화 중 하나다. 왜 그런 영화를 만들고 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 중 하나다.


얼마 전 넷플릭스를 가입하고 아이와 함께 공유가 주연이 <고요의 바다> 두세 번 보다가 포기했다. 장안의 화제였던 학교 좀비물 <지금 우리 학교는>은 첫 회를 보다가 철수. 조선의 좀비물 <킹덤>에는 아예 덤빌 생각조차  한다. 그뿐인가. 유월과 칠월 사이에 열리뮌헨 영화제에  이창동 감독의 <버닝>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아직 보류 중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오징어 게임>은 말해 무엇하랴. 자랑이라는 말이 아니다. 정서적 결함이 크다는 뜻이다. 희로애락 등 일반적인 삶의 충격을 견디고 받아들이는 시스템에 오류가 생길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


주말 동안 쉬지도 않고 <기나긴 이별>을 끝냈다. 600 페이지에 육박하는데도 지루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도대체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분간이 안 는 사립탐정 필립 말로라는 사내는 어떻게 되는 지. 저러다 진짜로 크게 다치는 건 아닌지. 설마 죽기 하려고, 주인공인데? 믿음 하나로 끝까지 다. 사람 간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이 말로라는 주인공 남자와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작가 둘 다. 그 사내가 아름다운 여인 앞에서 정신없이 흔들릴 때. 그때조차 사립탐정다운 면모를 보일 때(그래서 소설이긴 하지만). 마지막의 빛나는 반전까지. 더는 말할 수 없고, 말하지 않으려 한. 직접 읽어보시길. 후회는 없으실 듯. 렇게 생생한 캐릭터와 마음에 착착 감기 심리 묘사라면.



빅투알리엔 마켓의 <카페 이탈리> 에서 발견한 멋진 여행 가이드북. <Wien for Women only>. 뮌헨/함부르크/베를린/취리히 편도 있다. 카푸치노와 크루아상은 덤.



다시 무지개를 보았다. 무지개를 본 게 얼마 만인지. 봤는데 기억을 못 하는 건가.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무지개는 2020년도다. 알바도 열심히 하고 건강도 을 때였다. 대신 일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무지막지했. 그해 여름. 새벽 일터를 오가다 얼마나 자주 무지개를 던가. 그것도 쌍무지개를! 그 무지개의 끝이 암이었다니 허탈하다  수도 있다. 그럼에 그 시간들을 무사히 지나왔으니 무지개 덕이라 우겨말이 되겠고. 수술과 전이와 항암을 지나 2022년 여름을 앞두고 다시 무지개를 보았다. 아이의 핑스턴 방학이 시작되던 날이었다. 2주 동안 뭘 하지? 고민 끝에 남편이 낼 수 있는 최대치 사흘을 이용해 빈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로 다.


책꽂이에서  관련 여행 책자를 찾아보니 마침 노시내의 <빈을 소개합니다>(출판사 마티) 눈에 들어왔. 이 책을 쓸 때 저자에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여행자가 알기 힘든 빈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려 애쓴 노력이 보인다. 빈의 어제와 오늘도. 빈이 초행길인 경우에는 내용이 좀 심오한 편이다. 나의 여행법은 소박하다. 여행에 소질이 없어 일단 책부터 다. 호텔은 남편이 고른 곳으로 예약.  역시 호텔을 검색해 봤는데 거기서 거기고 피곤하기만 했다. 아이와 둘이 여행을 갈 때는 조금 비싸더라도 시내 중심의 호텔을 고집할 생각다. 번화가를 걸어서 다니다가 언제라도 돌아와 쉴 수 있도록. 이번 목표는 클림트나 에곤 쉴레나 훈데르트 바서그림  개 보고  생각이. 집을 떠나 남편 나도 잠시 머리를 식히고 아이에게도 다른 도시를 보여주는 의미에서 떠나 가벼운 여행이라서.



같은 날 부엌 발코니에서 바라본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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