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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ug 17. 2020

100% 아름다운 관계는 없다

독일 시어머니와 나


나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맹목적인 핑크빛으로 착각하지 않는다. 고부 사이인 우리는 예전보다 나은 관계를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는 말만 할 수 있다.  


휴양지 전경



100% 아름다운 관계란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런 이상적인 관계는 신들의 세계에서도 찾기 힘들 것이다. 함부로 남의 여자를 넘보거나, 못생겼다는 이유로 자기 아이를 버리거나, 형제가 서로를 죽이고, 질투로 남의 목소리를 뺏거나 자기 자신을 활활 불태우는 신들을 우리는 신화에서 얼마나 많이 보았나. 실제 신들의 세계는 다르지 않겠느냐고? 그건 모르는 일. 누구도 신의 존재 여부에 답할  없다. 나와 남편의 새어머니 사이도 그렇다. 나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맹목적인 핑크빛으로 착각하지 않는다. 독일과 한국 고부 사이인 우리는 예전보다 나은 관계를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부단히 노력할 거라는 정도만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어머니는 내게 까다롭고, 같은 말도 좋게 표현하지 않으시는 뾰족함의 대명사였다. 어머니에게 잘못 답한 말은 끝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말에 박힌 가시가 독사과보다 덜 치명적일 거란 예측은 순진한 생각이다. 세월이 흘러도 무뎌지지 않고, 억지로 빼낸 자리는 아물지 않는다. 내게는 독일어로 상황에 맞고 재치 있는 답을 기가 수학 정석만큼이나 어려웠다. 어머니 앞에서는 긴장을 했고, 갈수록 입을 다물게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답답한 며느리였다. 그런 내가 요즘 어머니께 자주 듣는 칭찬이 독일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나는 일을 시작한 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겸손하게 대답하지만, 사실은 어머니 앞에서 더 이상 긴장을 하지 않아서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머니가 눈치를 못 채신 게 다행이라면 다행.



해변의 카페



어머니의 까칠함은 4년 전 이곳 휴양지에서도 확인되었다. 내가 아니라 내 아이와의 관계에서. 그때 아이는 만 여섯 살. 엄마 말을 잘 듣는 나이는 아니었고, 어머니의 자존심 또한 만만치 않았다. 휴가 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충격과 상심이 합쳐 때였다. 그 무렵의 나는 어머니와 지금처럼 편한 사이도 아니었다. 머니레스토랑에서 식사가 끝날 때마다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셨다. 고작 디저트나 아이스크림 때문에. 할머니가 골라오신 디저트를 아이는 입도 대지 않았고, 아이스크림은 파파하고 가지 갔다. 그게 서운하셨던 것이다. 아이가 고집을 피울 때마다 분위기는 아슬아슬해졌다. 한 번도 남에게 수그려 본 적 없는 판은 무승부로 끝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들의 관계에 끼어들지 않는다. 휴가의 끝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되었다. 당시 개막한 유럽 축구 리그에서 아이가 축구 팬이신 할머니와 일심동체로 독일 국기를 흔들며 응원한 덕분에. 올해 만 열 살인 아이는 키도 눈치도 동시에 자라 할머니의 룸메이트가 되었다!


올여름 휴가 때는 어머니의 까칠함이 딱 한 번 빛을 발했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어머니와 나의 공통점은 수영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 그런 어머니가 수영복을 사 가지고 오셨다. 우리와 함께 딱 한 번 바다에도 들어가시고, 남편과 아이와 풀장에도 가셨다. 나는 휴가를 떠나기 전 뮌헨의 이자르 강가에서 이상한 모기에 손을 물렸는데 물린 곳이 좀처럼 낫지 않아 수영장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어머니가 수영복을 입고 수영하시는 걸 이번에 처음 보았다. 어머니의 흡족해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문제는 바다로 가기 전이었다. 어머니는 손가방을 내게 맡기셨는데 룸에 다녀온 내가 손가방을 두고 오않았다고 언짢아하셨다. 서둘러 다시 돌아가  왔으나 동선이 멀어서 시간이 걸린 것도 한 몫했던 것 같다. 무더운 한낮이었다. 그게 다였다.



해변의 독서



독일에 온 이후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년부터 어머니의 기억력이 떨어지신 이후로, 나는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덕분에 올해 휴양지에서 식사를 하시면서 내가 음식을 순서대로 지 않는다고 한 말씀 하신 것도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었. 수프와 샐러드가 먼저고, 고기나 생선이나 면 요리는 나중인데 나는 내키는 대로 마음대로 가져와서 먹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지적 기분이 나쁘거나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았다. 듣고 보면 옳으신 말씀이라서. 그런  자신에게 가장 놀란 것은 나였다. 넌 어떻게 수프와 샐러드를 나중에 먹니? 그러게요, 어머니! 저걸 맞장구라고 치나. 거기다 미소까지 보탰으니. 옛날과 똑같은 어머니의 저 멘트가 그때는 상처가 되었. 어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신데 그때의 나는 고슴도치처럼 예민했구나.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


올해 생신 때 친구분에게 혈압 측정기를 선물 받고 어머니가 역정을 내신 에피소드도 말해야겠다. 어머니가 화를 내신 이유. 그런 몰지각한 선물이 어디 있냐. 나이 일흔다섯이면 그딴 선물을 맘대로 줘도 되냐. 어머니 건강을 염려하셔서 언젠가 필요할 때 쓰시라고 주신 거겠죠. 그러니까 말이다. 난 그런 필요 없단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다시 돌려보내련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어머니의 손을 들어드렸다. 어쩌나, 죽어도 받기 싫다 하시니.  마당에 차라리 저 주세요, 할 수도 없고. 어머니는 절친에게 혈압계를 돌려주셨고, 본인이 써보니 좋아서 선물로 고르셨다는 절친은 이후로 연락이 없으시다. 어머니를 흉보자는 게 아니다. 옛날 같으면 어머니를 괴팍한 분이라 여겼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양보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지 않나. 남들 눈에는 유치하든 말든. 마지노선을 지켜드리고 싶다는 이다. 비난하지 않고, 따지지도 말고, 두 말없이 어머니 줄에 서 드리기. 그것이 내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노선이다.



휴양지에 핀 꽃, 부겐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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