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Aug 16. 2020

올 여름 최고의 독서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바르가스 요사


동양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안달루시아의 독일인 휴양지에서 남들의 시선을 잊는 데는 독서가 최고였다. 그것도 재미있을 것. 진지하고 심각한 책은 순위에서 밀렸다.



안달루시아의 휴양지



아이와 나는 휴양지에서 각각 세 권의 책을 읽고 돌아왔다. 나는 두 권의 남미 작가 소설과 글쓰기 책 한 권을 독파했다. 두어 권의 시집을 포함 열 권의 책을 들고 갔지만 다 읽을 라 기대하지않았다. 장소에 따라 현지 분위기나 동행인들의 기분에 따라 언제라도 읽고 싶은 책이 달라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두툼한 영어 원서를 들고 오셨다. 미셸 오바마의 전기였다. 어머니다웠다. 휴가에까지 골치 아픈 영어 문장과 독대하려 하시다니. 담대하신 어머니!


어머니가 여행과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이번에 알았다. 뉴욕에서 시아버지와 양아들인 내 남편과 살 때 그분의 꿈은 놀랍게도 공부였다. 호텔과 크루즈선, 여름이면 바닷가 휴양지, 겨울이면 스키 리조트나 여행사에서 일해보싶으셨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깃발을 들고 여행객들을 인솔하고,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삶을 꿈꾸었지만 인생은 어머니의 대로 흘러가 주지 않았다. 내겐 아직도 어머니가 사교적인 분이라 생각하긴 어렵지만 휴양지에서 타인들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즐긴 사람은 뜻밖에도 어머니였다.


나 역시 어머니와는 다른 방향으로 담대한 휴가를 즐겼다. 그곳은 독일인 휴양지로 예나 지금이나 동양인은 찾기 힘들었다. 휴양지 직원들 중에도 동양인은 두 명뿐이었다. 사진을 찍고 현상해 주는 젊은 동양 여자와 레스토랑의 아시아 요리사인 중년의 베트남 여인. 난이라는 이름의 그녀를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보았노라고 하셨다.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독일 사회에는 외국인이 다. 유럽 사람뿐 아니라 동양인과 무슬림계와 흑인까지 다양한 국적과 인종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곳은 아니었다. 모두가 독일인이었다. 검은 머리인 나와 아이만 눈에 띄었다. 4년 전에도 그것이 스트레스였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더할  같았다. 곱지 않은 눈빛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남들의 시선을 잊는 데도 독서가 최고였다. 재미있는 책일 것. 진지하고 심각한 책은 순위에서 밀렸다.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이 추억>과 요사의 <나쁜 소녀의 짓궂음>.



뮌헨 공항과 비행기에서 손에 든 책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슬픈 창녀들의 추억>이었다.  작품에 큰 영향을 준 작품은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스나리의 <잠자는 미녀의 집>.  작품은 각각 67세와 90세 노인의 성과 고독에 대해 다루었다. 마르케스는 콜롬비아 작가였지만 2004년 10월에는 라틴 아메리카 전체가 이 작품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였다. 출간 직전에는 해적판이 나돌았고 출간 두 달 만에 100만 부가 팔렸다. 대중 소설에서 흔한 사창가라는 소재가 '시적인 무게'를 지닌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비결과 대중 소설과 순수 소설의 경계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작품. 마르케스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백미인 <백 년의 고독>으로 198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2014년 사망.


이번 휴가에서 읽은 최고의 소설은 페루 작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나쁜 소녀의 짓궂음>이었다. 문학 수업을 듣던 시절부터 나를 매혹시켰던 요사의 소설들. 현란한 이야기꾼의 면모와 대중 소설 뺨치는 재미와 순수 소설의 틀을 견고하게 지키는 품위까지 삼박자를 갖춘 글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성에 대해 저토록 밝은 톤과 색채를 지니기도 드물다. 칙칙하고 끈끈하고 느끼하다 도착적으로 흐르기 쉬운 테마 아닌가. 저 가벼움과 경쾌함을 단단하게 끌고 나가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여기 나쁜 소녀가 있다. 이기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소녀. 신분 상승이라는 인생 최대의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은 물론 사랑마저 가볍게 배신하는 소녀. 그 소녀를 평생 기다리는 착한 소년. 그 소녀와 파리에서 살고 싶은 소년의 꿈은 이루어졌을까. 둘 중 하나는 이루어졌다! 


201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요사의 작품 중 내가 읽은 것은 <판탈레옹과 특별봉사대><새엄마 찬양>이었다. 뮌헨으로 돌아오자마자 손에 든 그의 소설은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염소의 축제> 같은 문학동네판 요사의 소설휴가에 챙겨가지 않은 건 실수였다. 그 공백을 메워준 건 휴양지의 다양한 음식과 또 한 권의 글쓰기 책 <최고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책 속에 줄을 보니 예전에 읽은 책이 분명했다. 아무렴 어떤가. 다시 펼친 책 속에서 은빛 물결처럼 반짝이 말들.  말들에 기대어 메모를 시작했다. 휴양지에서 시간은 넘치는데 글은 써지지 않을  무더운 여름날 청량한 물 한 잔처럼 도움이 되었다. 글쓰기에도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은 정확한 지적이었다. 당장 성실한 글쓰기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다시 글쓰기에 익숙해지려면 오래 걸리므로 매일, 혹은 적어도 1주일에 5일은 계속 글을 쓰면서 감을 유지해야 한다.'


'시작 부분이 형편없어도 노력과 끝없는 수정으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야말로 작가로서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


'글쓰기는 여타의 예술이나 기술과 똑같다.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하며 새로운 시작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최고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루이즈 디살보/정지현 옮김/예문)에서 인용함.



휴양지의 음식들과 글쓰기 책!
이전 07화 바다를 걸으며 당신의 이야기를 들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