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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n 15. 2022

빈으로 가는 기차, 전차, 마차

독일의 9유로 티켓도



빈의 명물 마차. 마차로 시내 투어도 한다.



빈에 다녀왔다. 1박 2일보다는 길지만 3박도 못하고 돌아온.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아서, 그 시간들이 터무니없이 짧아서 화가 나는. 뮌헨에서 빈까지는 갈 때도 올 때도 다섯 시간쯤 걸렸다. 원래는 4시간 반이 걸리지만 기차에는 연착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따른다. 그래도 괜찮다. 빈으로 가는 길인데 연착 좀 하면 어떤가. 뮌헨을 출발한 기차는 두 시간 후 잘츠부르크를 지나 다시 빈으로 향했다. 내가 참고한 빈 소개 책자에서는 분명히 빈에 도착하기 30분 전부터 창밖의 빈 숲을 꼭 구경하라 했건만. 어디 가서 뭐하지, 궁리하느라 놓쳤다. 그 시간에 빈의 찬미자이신 카타리나 어머니 집에서 들고 온 지도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고독한 베토벤이 그곳에서 산책을 즐기셨다던데. 사교적인 슈베르트는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자주 찾았고.


그럼 뮌헨으로 돌아올 땐 봤냐고? 아니, 그때도 못 봤다. 우리가 예약한 이등석 4인석에 큰 개와 함께 두 좌석을 예약하신 독일 여인 때문에. 고고하신 태도로만 보자면 19세기 오스트리아 궁정의 무도회에서 막 뛰쳐나오셨다고 우겨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본인 개 시중을 드는 사람보다 못한 취급을 할 것 같은 말투와 태도에 책 읽느라 바쁜 척하며 빈 숲을 또 놓쳤네. 개는 괜찮더라. 사냥개라는 설명에 걸맞게 입마개 때문인지는 몰라도 좀 사나워 보였는데 얼마나 점잖던지. 여인의 좌석 옆 바닥에 입도 벙긋 않고 가만히 눕더라. 개 앞쪽에 앉은 우리 아이는 좋아서 숨도 못 쉬고. 나중에 그 여인이 앉은 좌석을 예약했다는 사람들이 나타난 후에 아이가 귀엣말로 개가 자기 발등에 살포시 입을 올리더라나 머리를 누이더라나.


기차의 종착지는 부다페스트. 오호라, 이 기차로 부다페스트까지 갈 수 있구나. 기다려라, 부다여 페스트여. 뮌헨에서 부다페스트까지는 일곱 시간쯤 걸린다. 물론 빠른 기차인 ICE/IC/EC를 타야 한다. 빈에 가 본 지도 부다페스트에 가 본지도 얼마나 오래인지. 안 그래도 짧은 기억력에 기억나는 게 없다. 동반자가 남편이었다는 사실 외에는. 지금은 아이가 하나 더 딸렸다. 말 끝마다 열받기 십상인 사춘기 소녀인. 기차는 만석이었다. 뮌헨 중앙역에서는 기차를 타기 직전 안내 방송이 나왔다. 우리가 기다리던 플랫폼에 갑자기 베니스행 기차가 들어온다는 것. 아니 그럼 우리 기차는 어디로 들어온다는 말인가. 안내 방송은 없었다. 사람들은 소리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도 그 행렬에 보조를 같이했다. 같이 서 있던 독일 여자가 행렬의 다른 이에게 어디로 가냐고 묻자 빈, 이라 답했다. 역사로 나오자 옆 플랫폼 전광판에 빈 경유 부다페스트행 안내가 떴다.


이런 일이 흔하다. 기차에 오르기 전 안내 방송과 전광판과 기차 몸통에 새겨진 기차 편명과 종착지를 잘 확인해야 한다. 모르겠으면 묻자. 우리 남편도 예약된 플랫폼에 무심코 서 있다가 다른 기차를 타고 다른 곳에 내린 적이 있다. 독일 사람인데도. 플랫폼은 수시로 바뀔 수 있다. 또 하나. 전에도 썼듯이 잘 달리던 기차가 어느 역에서 두 개로 분리되기도 한다.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독일에서는 보통이다. 빈에서 돌아올 때가 그랬다. 분명히 뮌헨행 기차인데 뮌헨행 승객은 기차의 A와 B 칸에만 탑승해야 한다. C칸 이후는 중간에 다른 곳으로 간단다. 기차가 출발한 후 승무원이 와서 큰소리로 물었다. 다들 뮌헨으로 가시는 거 맞죠? 그리하여 기차표 검사도 두 번. 요즘은 거의 폰의 바코드로 검사한다. 독일은 2등 칸으로 여행할 때 미리 좌석을 예약하는 게 낫다. 이번에도 기차가 붐벼서 좌석을 예약 안 했더라면 서서 갈 뻔했다.



저녁 무렵 빈 시내를 다니는 마차.



기차 얘기가 나와서 또 하는 말인데, 독일은 지금 9유로 티켓으로 난리다. 전쟁으로 기름값이 치솟고 물가가 오르고 가스비도 오르자 독일 정부가 통 큰 정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일명 9유로 티켓이 6월부터 드디어 시행되었다. 대중교통인 버스와 지하철 U반과 도심 외곽을 연결하는 S반 그리고 기차 중에서는 저렴한 레기오날 반 Regional Bahn을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교통카드 월정액이 55유로인데,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 매월 9유로로 이용할 수 있다(독일 전역). 티켓은 앱이나 지하철 역 단말기에서 살 수 있다. 우리는 1년짜리 교통 카드를 사용하는데 3개월 연장을 해 준다고. 참고로 1년짜리 교통 카드는 메리트가 많다. 목돈이 좀 들지만 1년 중 두 달이 공짜. 월정 카드에는 신분 내역이 없어 분실하면 끝. 남이 사용할 수도 있다. 1회용 표나 월정 카드 없이 탔다가 불심 검문에 걸리면 이유 불문 60유로 벌금을 내야 한다. 연중 카드에는 이름이 있어서 분실해도 남이 사용할 수 없고, 카드를 잊고 타더라도 검표원에게 확인서를 받아 서비스 센터에서 5유로 벌금을 내면 된다. 연중 카드 분실 시 재발급 수수료는 6유로. (독일 기차나 지하철 역은 표를 넣어야 통과할 수 있는 검표소가 없다. 아무나 자유롭게 탄다. 검사는 말 그대로 불시에 한다. 검사원은 사복을 입고 2인 1조.)


빈으로 가는 기차는 당연히 빠르고 비싼 기차를 타야 한다. 요즘 핫한 9유로 티켓은 쓰지 못한다. 빈을 오갈 때 기차 안에서도 자주 안내 방송이 나왔다. 9유로 티켓으로는 이 열차를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9유로 티켓이 없을 때도 사람들은 싼 레기오날 반을 여러 번 갈아타며 여행을 많이 해왔다. 바이에른에서는 바이에른 티켓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 Day 티켓 개념으로 당일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사용 가능. 무한 갈아타기가 가능. 그래 봐야 하루지만. 25유로가 기본이고 1인 추가 시 각 7유로. 5명까지 추가 가능. 표에는 반드시 여행자 전원의 이름을 기재해야 한다. (어린이는 만 5세까지 무료. 6-14세는 친부모나 친조부모와 동행일 때만 무료.) 한 가지 신기한 건 뮌헨에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까지 9유로 티켓이나 바이에른 티켓으로 갈 수 있다는 것. 같은 나라도 아닌데 이게 가능하다니. 대신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이동할 때는 따로 승차권을 사야 한다. 당연한 말 아니냐고? 아니다. 늘 강조하지만 독일에서는 비싼 기차 티켓이든 싼 바이에른 티켓이든 9유로 티켓이든 내가 가는 행선지 도시의 시내 교통까지 다 커버한다.


빈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였다. 오전 11시 11분에 뮌헨을 출발한 후였다. 트람을 타고 빈의 구시가지에서 조금 벗어난 호텔로 갔다. 트람을 본 첫인상은 리스본의 트람이 생각났다는 것. 물론 도시는 리스본보다 평지였지만. 시내버스는 없었다. 보이는 거라고는 빨간 전차뿐. 버스는 단체 관광버스나 2층 시내 관광 버스 정도. 호텔에서 체크인을 한 후 다시 트람을 타고 구시가지로 나갔다. 오래된 도시 구경의 하이라이트는 구시가지를 걷는 일 아닌가. 차가 없는 보행자 천국의 보도 말이다. 서울에 이런 곳이 없는 게 아쉽다. 인사동도 차가 완전 없지는 않던데. 인구도 많고 차도 많고 건물도 많으니 쉽지야 않겠지. 빈의 저녁거리를 유유히 달리는 마차도 보았다. 말들도 화려했던 옛 시대를 반영하듯 기품을 잃지는 않았으나 조금은 피로해 보였다. 도시는 품격과 품위를 간직하고 있었다. 구시가지의 한가운데인 슈테판 성당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더 그랬다. 1800년대의 카페도 있었다. 그러다 뮌헨에 돌아오니 뮌헨의 노른자인 구시가지 마리엔 플라츠조차 소박해 보이더라는.   


돌아오기 전날 저녁 빈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다. 그 이후의 불편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기분도 좋지 않았다. 핸드폰이 이 정도일 줄이야.. 빈에 다녀오자마자 주말에 글을 쓰려했던 일정에도 차질이 생겼다. 우울하려던 마음은 남편이 주문한 삼성 새 핸드폰이 7.1일에 도착하고, 그때까지 어찌어찌 카카오톡과 브런치를 노트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준 덕분에 나아졌다. 남편이 없으면 생존불가. 이것이 진짜 문제다. 이 정도면 남편을 떠받들고 살아도 뭐 할 판인데. 이 성질머리를 어떻게 좀 해봐야겠다, 고 잠시 반성해보는 빈 여행 후 하루.          



빈 시내를 가득 채운 전차 트람과 빈 중앙역. 빈에는 버스는 거의 안 보이고 지상엔 트람, 지하엔 지하철 우반(U B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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