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다. 언제였지. 내 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 꼭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 제일 편안했던 순간, 마음이 고요했던 순간이 언제였더라. 시간이 멈춘 것처럼 사물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담던 순간이. 브런치에서 어떤 글*을 읽다가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뜻하는 화양연화'라는 한 구절이 날아와 내 가슴에 꽂혔다.
중국 길림성 장춘에 있을 때였다. 상해로 오기 전 1월부터 3월까지 석 달을 그곳에서 살았다. 길 장 봄 춘. 봄이 오기를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했다. 한겨울 기온이 영하 25도까지 내려갔다. 도시 한가운데 있던 바다 같은 호수가 사정없이 얼어붙던 겨울날. 두 눈만 빼고 온 몸과 얼굴을 꽁꽁 싸맨 사람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거대한 얼음 왕국 안으로 들어와 연을 날렸다. 가오리연, 문어연, 낙지연, 상어연, 고래연, 장어연, 갈치, 참치, 거북이까지 이름도 다 못 헤아릴 숱한 바다 왕국의 신하들이 가장무도회에 참가하듯 총출동해서 바닷속을 헤엄치듯 사방이 온통 흰 눈 밖에 없는 고요 속을 위엄 있게 느릿느릿 떠다녔다.
장춘의 자동차 단지 안의 독일인 거주 지역인 '독일 마을'을 걸어나와 시내로 친구를 만나러 갈 때면 얼어붙은 호수를 걸어서 갔다. 30분 남짓 홀로 걷는 그 순간을 나는 언제나 좋아했다. 단단한 얼음 위 겹겹으로 쌓인 눈 위로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멀리서 휘몰아쳐 오는 눈보라 소리를 들었다. 한 발 또 한 발.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면 내 몸을 단숨에 휘감아 버릴 듯 질풍처럼 달려 오던 눈보라, 눈보라. 그런날은추위마저잊었다. 나는 자주 발걸음을 멈추고 흰색뿐인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디쯤 오고 있는 것일까, 나의 눈보라는. 만주 벌판의 그 회오리 속으로 온몸을 날리고 싶은 때가 있었다.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어느 볕 좋은 날엔 혼자 집에서 한글 붓글씨를 연습했다. 독일에서 배우던 한글 붓글씨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겨울 햇살이 거실 중앙으로 길게 들어와 테이블 위에 오래머물러 주었다. 그런 날은 음악도 필요 없었다. 사방이 고요했다. 몸은 편했고, 마음에 불편하게 드리운 그림자도 없었다. 먹을 갈고 붓끝을 손질하고 깔개를 놓고 그 위에 흰 종이를 펼쳤다. 위아래로 문진을 단단하게 놓아 종이를 붙잡고두고 생각나는 시 한 줄을 옮겼다. 그런 때는 글씨도 생각보다 잘 써졌다.
그런 순간만은 그리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바로 그때 시내에 살던 친구로부터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날 친구와의 만남을 거절하지 않고 나간 것이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 중 하나다. 친구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내 친구를 예나 지금이나 무척 아꼈다. 돌아보니 그런 순간이 인생을 통틀어 몇 번 찾아오지 않기에. 나 자신을 잊고온전한 충만 속에머물 수 있는 순간이. 사람이 아닌 겨울 햇살 한 줌과 붓과 종이가 주던 그 완벽한 몰입과 위로가.
봄에 상해로 와서 여름에 인도에 있던 언니를 방문했다. 아쉬람 안에는 부겐베리아 꽃이 가득했다. 아쉬람 담 위로 빼곡하게 출렁이던 빨강, 진분홍, 다홍, 그리고 흰색의 부겐베리아 꽃나무들. 마그놀리아 목련 나무는 어찌나 크고 무성하던지, 꽃들은 또 얼마나 무지막지하고 거대하던지. 무덥고 나른한 오후가 되면 사람들은 아쉬람 옆의 카페 바리스타로 갔다. 카페 앞엔 넓은 잔디밭. 카페에 출입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쉴 수 있어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창가에 앉아 라떼나 카푸치노를 마시며 창 밖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지만 잔디 위에 앉거나 누워 해가 질 때까지 책을 읽고 노트에 글을 쓰는 것도 즐거웠다. 혼자여도 괜찮았다. 마그놀리아 나무에 기대면 외로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언니가 머무는 아쉬람에서 본 사람을 카페 잔디밭에서 만날 때도 있었다. 스웨덴에서 온 친구였다.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다. 아버지와 오래 불화하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만든 노래라고. 기타 줄을 뜯으며 조용히 들려주던 그의 노래. 그건 그냥 노래가 아니라 비가였다. 북유럽 남자답게 키도 크고 덩치도 컸던그의 목소리는 의외로 부드러웠다. 얼굴도 모르는 내 아버지를 처음으로 생각했다.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원망도 못해봤다. 기억이 없으면 미움도 없다. 나는 바람에 흔들리던 풀들의 머릿결만 자꾸 쓰다듬었다. 눈물방울 하나가 볼 위로 흘러내리려 해서 혼났던 기억이 난다. 모기에 물렸는지 빨갛게 부어오른 그의 두툼한 양쪽 발목이 안쓰럽던 기억도. 다음날 인도의 아루나찰라로 성지 순례를 떠난다는 그의 현관문 앞에 한국에서 들고 온 물파스를 두고 돌아오던 이른 아침의 맑디 맑던 공기도.
오늘 같은 저녁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팔월이 다 가는 저녁. 팔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저녁은 일찌감치 먹었다. 아이는 파파를 졸라 거실에서 해리 포터 여섯 번째 영화를 보았다. 최근에 파파가 여섯 권째 책 읽어 주기를 끝냈기 때문이다. 저녁에 내가 머무는 공간인 부엌과는 긴 복도를 사이에 두고 끝에서 끝이라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비는 이틀째 계속 내리고. 발코니 옆에 큰 등을 켰더니 깊고 서늘한 가을이 불쑥 찾아온 느낌마저 들었다. 뜨거운 물을 끓여 철주전자에 붓고 차가 우려 나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했다. 다들 잘 있겠지. 잠시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기도 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팔월의 마지막 밤을 수놓은 기억의 산책. 내 인생의 화양연화.